또다른 동반자-우울증
수요일 오전에 방문했는데 사람이 많았다.
왠지 사람들 종류?도 더 다양해진 느낌.
아니 원래 다양했나?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약에 거부감이 별로 없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서 의사한테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이번엔 내가 아니라 의사가 여유가 없어 보였다.
사람이 많아서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줄 상태가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바라던 약만 처방해 주는 그런 진료를 드디어 봤다.
막상 그런 진료를 봤더니 김이 빠져버렸다.
그런 간사한 마음에 실망했다.
2주간 어떻게 지냈냐는 물음에 회사에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있어서 상사들에게 가서 서운하다고 대놓고 감정을 쏟아냈다고 했다.
평소에도 자신의 의견을 잘 표출하냐고 묻길래, 잘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은 의견 표출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힘들어하기도 하는데 그런 거랑은 다르다면서 원래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내 자신의 모습은 맞는데, 나는 내가 회사에서 그런 감정을 표출하는 게 싫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렇게 감정 표출을 하고 나면 자책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지 못해서 불편해하는 거겠다고 하면서, 자책을 많이 하냐고 재차 확인했다.
자책 많이 한다고 했더니, 약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항우울제가 세로토닌을 조절하는 약이라서 감정 조절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증량을 권했다.
증량이라는 말에 나는 머뭇거렸다.
지금도 잘 지내고 있는데 굳이 약을 더 먹어야 하는지 거부감이 들었다.
안 그래도 요즘은 집에서는 안 먹고 회사에 갈 때만 먹고 있어서 약이 남아돌고 있는데...
그런데 의사가 이 약이 독한 약도 아니고 증량해 보고 아니면 다시 감량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재차 권유하기에 결국 받아들였다.
내가 원하는 건 회사에서 감정 표출을 하지 않고 그냥 참고 지나가는 거니까.
안 그래도 부당한 대우에 화가 나서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 일에 대한 대처를 더 차분하고 현명하게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된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한 번 먹어보지. 뭐.
어쨌든 이 정도만으로도 감사하다.
감정이 올라왔다 금방 금방 가라앉는 것.
생각이 떠올랐다가 금방 다른 걸로 잊히는 것.
이런 것만으로도 삶이 훨씬 편하다.
그렇게 약 증량에 동의를 했고, 의사는 일상적 확인 절차로 집에서는 어떠냐고 물었다.
당연히 "좋아요."하고 대답했고, 의사는 거기서 더 질문을 하지 않고 그만 끝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중 가장 빨리 끝난 진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