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고는 대형 유조선과 대형 벌크선의 충돌 사고였다. 내가 다음 관제사님께 인계를 하고 10분 만에 벌어진 사고였다. 사고 당시 상황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직도 어벙벙하다. 이 일로 중앙해양심판원에 증인으로 불려 갔다. 관제를 제대로 하라고 주의를 주고 싶어 불렀다고 심판원장님이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항만에 정통한 도선사님들이 승선해 있는 배에 뭘 어떻게 관제를 하란 말인가.
당시만 해도 관제사가 배를 아냐고 항해도 모르면서 왜 자꾸 호출하냐며 도선사님들부터 선장님들까지 무시하기 일쑤였고 대놓고 면박을 줬다. 정말로 VHF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했다. 그래서 초반에 근무할 땐 선박을 부르기 전에 심호흡을 하고 부르기도 했다.
교대를 하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었나 사무실 분위기가 싸했다. 다른 관제사님께서 사고가 났다고 조용히 하라고 눈짓 손짓으로 알려주어 눈치껏 상황파악을 해보니 여수광양항 항로 한가운데에서 대형 상선 두 척이 충돌한 거였다. 두 척 모두 도선사님이 승선해 있었다. 관행적으로 도선사님들이 승선한 선박은 관제사들이 신경을 좀 덜 썼다. 도선사님들이 관제사가 참견하는 걸 싫어하시기도 했고, 관제사들도 완전 베테랑님들이 승선한 거니 안심해서 그런 거였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고가 터진 거였다.
한 척은 석탄을 가득 싣고 입항하던 42,665톤짜리인 221미터의 석탄 운반 벌크선이었고, 다른 한 척은 출항하려고 회두 중이던 160,160톤짜리인 324미터의 공선 상태인 유조선이었다. 벌크선은 석탄을 가득 실은 상태라 무거워서 배가 잘 안 돌아가지만 한 번 탄력이 붙으면 획 돌아가는 성질이 있어 주의를 해서 조종을 해야 했다. 유조선도 화물을 실었다면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공선상태라 가볍기 때문에 비교적 조종이 잘 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출항하려고 회두 중이었기에 터그보트를 붙여놓고 360도 돌리던 중이라 정상 항해를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배를 적은 선회권을 그리며 돌리는데 집중해야지 다른 항행하는 선박들을 신경 쓸 상황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관제사가 인근을 항행하는 선박들에게 그 회두하는 선박을 피하여 항해하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항로상에 선박이 한꺼번에 많이 몰리지 않도록 사전에 선박 일정이나 속력 등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여기서 입항하던 벌크선이 급격하게 변침이 되었다. 변침이 잘 안 되니 더 좌현으로 타를 틀었는데 한번 좌현으로 돌기 시작하니 속도가 붙어버렸다. 그래서 유조선 쪽으로 벌크선이 향하게 되었다. 급하게 우현변침을 시도했지만 타력이 붙은 상태라 더디게 잡혔다.
이를 눈으로 발견한 유조선 측은 너무 놀랐다. 입항하는 벌크선이 평소와 다르게 너무 가깝게 붙은 게 보이니 당황한 듯했다. 우현 변침을 하며 거의 출항자세를 잡은 상태였는데 벌크선에서 계속 좌현으로 오는 것 같으니 자신들이라도 터그보트를 이용해 좌현 쪽으로 가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꼬이다가 충돌을 하게 되었다.
당시 다급해하던 도선사님들 목소리가 생생하다. 심판재결서에는 급격한 변침 원인에는 강한 조류와 강풍의 영향도 있다고 했다. 또한 관제사들이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은 것도 원인이라며 적극적인 관제를 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왜 뜬금없이 관제사 탓을 하나 싶어 기분이 나빴는데 뭐 솔직히 내가 도선사님 호출하면 뭐라 들을 까봐 알아서 잘하시겠거니 하고 정보를 주지 않은 건 사실이어서 할 말은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보를 주지 않았다고 해서 도선사 스케줄이 나와있는 선박 정보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에 입항하던 벌크선 도선사님은 1년간 업무정지, 출항하던 유조선 도선사님은 3개월간 업무정지 처분을 받으셨다.
그래도 이 사건 이후로 도선사 승선 선박에 대한 관제가 좀 좋아지긴 했다. 도선사님들도 관제사들에게 불평을 전보다 하지 못했다. 특히나 부두에 접근하는 선박 속력이 빠르다고 굉장히 공손하게 언급하는 것도 불문율에 가까웠는데 가능하게 되었다. 전엔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기 밖에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한마디라도 해서 나중에 법원 가서 그런 수모는 안 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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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ㅜㅜ. 도저히 못 쓰겠어요. 계속 썼다 지웠다가 하고 있기만 합니다. 현직에 있으면서 현직 이야기를 하는게 참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선박교통관제사이야기는 현재의 제가 쓰고 싶지 않은 이야기인가 봅니다. 날카롭게 비판하는 글을 쓸 자신도, 그렇다고 좋다고 쓸 자신도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