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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Sep 23. 2023

10.알 거 다 아는 돌싱들의 첫날밤은 어떻게?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라면 먹고 갈래?"의 원조 영화 보면 결국 못했다. 이게 맞다. ㅋㅋㅋ

교대근무 때문에 만날 수 없는 날만 빼고 거의 매일 만나면서 순조롭게 사랑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렇게 재밌는지 신기했다.

쉬는 날에 잠도 못 자고 데이트를 했는데도 아드레날린이 치솟아서 그랬는지 아프지도 않고 잘도 만났다.


키스도 갈수록 무르익었고,

무릇 성인이라면 응당 행해야 할 그 일도 이제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외모도 보다 보니 점점 익숙해지고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신비다.

불가능은 없다.


외국계를 다니는 오빠가 영어로 회의하는 모습에 더 반했던 것 같기도 하고,

영어 뉴스나 영어 소설 읽는 것도 멋있었다.

(나 좀 영어 콤플렉스 있다. ㅋㅋㅋ)

근데 공대생이라 컴퓨터도 잘하고 운전도 잘하고 어쩜 못하는 게 없어 >. <

흐흐 제대로 콩깍지가 씌기 시작했다.


어플로 프로필을 봤을 때, 완전 취미 부자여서 좀 비호감이었는데 그건 진짜 잘못된 편견이었다.

골프에, 수영에, 테니스에, 버스킹도 하고...

좀 겉멋이 잔뜩 든 남자 같아 보였다.

저런 거 다 하는데 언제 내실을 다지겠나.

저런 거 하느라 돈도 모았구먼 싶었다.

재테크, 경제 이런 것도 하나도 모르겠네 싶었다.


고집은 또 얼마나 세려나.

을 사는데 얼마나 부정적이려나.

자산 1.5억은...

현금인가, 주식인가, 부동산인가.

설마... 코인은 아니겠지?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았더니 정말로 다 내 편견이었다.

알고 보면 볼수록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취미가 많은 건 부지런해서였다.

멍하니 쇼눕티를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보니 온갖 것을 다하는 것이었다.

(쇼눕티=소파에 누워 티브이 보기)

주3회 칼퇴에 주2회 재택을 하는 워라밸이 좋은 직장을 다니다 보니

남는 시간 동안 새벽에 수영 가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거나 주말에는 테니스 치고, 골프 치고, 산보 가고, 영화 보고, 책 읽고, 피아노 치고기타 치면서 9년을 보냈던 것이다.


아... 외로움에 몸부린 친 흔적이었구나...

하긴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

연애가 그래서 어렵지.

혼자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어쨌든 존경스러울 정도로 바른생활태도에 더 반하게 됐다.

너무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신체였다.

기립성 저혈압이 흠이라면 흠이랄까... 너무 길어서 그런가 보다.


그에 비해 나는...

틈만 나면 척추 건강에 좌식과 입식은 큰 적이라며 와식을 주장했으니...

할 말이 없다.


맥주를 좋아하는 나를 이해하며 받아주는 남편이 신기했는데,

그건 나중에 시어머니를 만나고서 이해할 수 있었다.ㅋ

남편은 맥주 먹어봤자 한두 모금이고,

담배는 피웠다가 5년 전부터 금연 중이다.

무슨 금연이 안 피워야겠다! 결심한다고 끊어지냐고...

자기는 뭐 서울에서 부산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담배를 안 피는 나'를 정의 내리고 지키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만큼 황당한 말이 또 있을까 ㅡㅡ;;;

툭하면 의지의 문제라며 의지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고 염불을 외는데...


아무튼 성실함과 꾸준함, 노력의 힘을 믿고 살아가는 이 남자에게 어찌 안 반할 수 있으랴.


외모의 벽도 어느 정도 넘겼고,

나머지 부분도 모두 기대 이상이고,

이제 그 관문을 넘어야 할 수순이 된 거 같긴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고민이 됐다.

도대체 이게 이렇게 고민이 될 일이라는 게 신기했는데,

자연스러운 상황이란 게 도저히 생기지가 않았고 뭔가 날짜를 정해서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무슨 20대 첫날밤 보내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남자들이랑은 그냥 자연스럽게 암묵적으로 했던 것 같은데, 이 남자는 눈치도 없나...

자꾸 나보고 뭘 어쩌라고 하는데 하아... 답답하다.

눈치도 없이 집도 9시 통금시간까지 꼬박꼬박 잘 들여보내준다.


아니... 하루쯤은 그냥 오늘 집에 안 가면 안 되냐고 붙잡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꼭 오늘 하자! 해서 만나야만 하나?

근데 이 남자는 그래야 할 것 같다.

설마 그때 첫 키스 트라우마 때문에 그랬던 건가?


아무튼 공대남 사귀는 게 이렇게 힘들다.

돌싱남이 아니라 꼭 모솔 사귀는 거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이 연애경험을 나한테 부풀린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연애에 서툴 수가 있나...


설마... 내가 눈치가 없었던 건가?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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