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몰아 쓰는 이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화해시키기

by 이혜아

일기를 쓰기로 결심 했다. 그런데 처음은 아니다. 매해 첫날마다 비슷한 결심을 했기 때문에 일기장의 첫장에는 1월 1일 혹은 2일의 일기가 남아있다. 작심삼일로 쉽지 않은 것이기에 3일까지 쓴 일기장은 거의 없다. 일기를 써야겠다는 결심의 이유는 매년 달랐으나 결과는 일관되게 실패였다. 지금까지 꾸준히 일기를 쓰지 않았다. 일기를 쓰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면 완벽한 성공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의 계획을 세웠다. 매일 일기를 쓰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일기 쓰기일까. 마흔이 되었는데도 위기 그 자체인 절박한 상황에서 말이다. 일단 일기 쓰기에는 돈이 들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돈이 되는 일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가능했다. 언제 어디서나 시작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다.


무엇보다도 일기 쓰기를 통해 마흔이라는 인생의 한 가운데에 낙오자처럼 서 있는 나를 이해시키고 싶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발자국이 남듯이 나의 결정에도 그 당시에 최선이라고 믿었던 이유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나를 이렇게 원망하고 미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흔이 되었을 때, 순간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지나온 경로대로 되돌아가면 될 일이지만 나는 길을 찾지 못한 미아처럼 불안에 떨었다. 돌아갈 수 있는 시도가 어제의 기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마흔이 돼서가 아니라 인생의 잘못된 결정과 실수의 청구서가 한번에 몰려온 것이다)


이미 나는 나의 과거를 후회한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과 불성실 때문에 과거와 불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갈등이 계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제는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가 서로 만나 화해해야하지 않을까.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가상 대화를 상상해본다.

미래 : (한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야.

현재 : (한숨을 쉬면서 ) 어쩔 수 없었어. 누구나 후회하고 살아.

미래 : 누구나? 너답게 살았어야지.

현재 : 나다운게 뭔데?

현재는 내일부터, 다음부터는 약속하며 할 일을 미루고, 미래는 진작에 했어야할 일에 대해 후회와 원망을 이어가는 것이다. 미래가 현재에게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리기보다는 서로 멱살을 잡는 것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나는 이들을 화해시키고 싶다. 과거에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그리고 그런 만큼 미래를 기대하다가 벌어진 간극이었음을 서로에게 말하고 싶다. 그래서 첫 번째 시도로서 두 시점의 나를 하나의 글에 소환하는 것이다. 오늘의 일기를 쓰면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 두 시점의 나를 나란히 두게 되고 화해나 화합 이전에 일단 이해를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나를 촘촘히 떠올려 나라는 사람이 어느 시간대에서든 일관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이라도 일기를 몰아 쓰고 싶은 이유, 과거의 나를 소환하는 것이다. 얼굴 없이 지나가는 너무 많은 내가 몰려온다 해도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해 보려고 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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