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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산송이 Jun 15. 2022

'우리'의 뻔뻔함 2

힘든 건 '너', 좋은 건 '우리'

뭔가라도 해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던 당시가 2019년 9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코로나 이전'의 시절이었습니다. 코 박고 집에만 머물러야했던 코로나 이후의 생활과 달리 그 땐 퇴근 후 일정들이 굉장히 많던 때였죠. 그러나보니 생긴 문제점이 뭐였냐, 바로 머리를 맞대고 '탄원서'에 관한 이야기를 할 타이밍이 늘 어그러졌었다는 겁니다.


요양원에서 대놓고 탄원서 모임을 작당하기엔 주변 눈치가 너무 보여 마땅치가 않았고, 그렇다고 일 끝나고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자니 동기부여나 원동력이 너무 떨어졌어요. 당장 마감 기한 있는 의무사항이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물론 그럴 생각이 있었지만, 형들이 그렇게 협조적이지 않았습니다. 한 형은 맨날 친구들이랑 논다고 퇴근하자마자 가버리고, 다른 형은 그래도 이렇게든 저렇게든 해보자라고 말은 해줬지만 정작 뭔가를 실천하려는 움직임은 제로였습니다. 귀찮음이 많은 형이었거든요. 



 '이대로 가다간 말만 뭐 해보자 해놓고 흐지부지 될 게 뻔한데...'


형들은 불만은 많았으나, 조금은 단순무식한데다 몸이 아프거나 힘든 게 없으니 뭔가를 직접 행동에 옮기진 않았습니다. 대학교 시절 PTSD가 막 솟구치기 시작했어요. 하, 결국 또 내가 다 해야되는구나. 국가의 의무를 하러 와서까지 팀플 버스를 태워야 한다니. 


 "형, 원장님께 편지 형식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억울함이나 불만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적어보면 어때요?"

 

 "오, 괜찮네. 안 그래도 요즘 우리 요양원이랑 관련없는 일들 너무 시켜서 진짜 너무 짜증나."


 "그쵸? 그래서 편지에다가 '그런 요양원 이외의 일들로 우리를 부려먹을 경우' 그에 해당하는 공가나 어떤 어드밴티지를 보상으로 주면 좋겠다는 내용 써 보면 어떨까요?"

 

 "오, 좋네. 그러면 정말 이득이지."


 "혹시 더 첨가하거나 말하고 싶은 내용은 없나요 형?"


 "딱히? 너가 말한 거 괜찮은 거 같아."


 "편지로 쓰지 말고 그냥 면담 신청하고 말씀 드리는 게 더 나으려나요?"


 "흠, 너가 편한대로 조심스럽게 해봐, 형은 다 괜찮은 거 같은데?"


어찌 저찌 겨우 형들을 모아 이야기해보면, 형들은 제가 어떤 의견을 내든 간에 다들 좋다고만 하지 본인들 의견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같이 하겠다는 말을 한 마디도 안 꺼내더라구요. 요양원의 무분별한 요구에 화를 맨날 잔뜩 내길래, 그리고 저 역시도 그런 부분에 공감이 갔기에 편지를 써보자는 이야기를 꺼냈던 거였고, 이 일을 진행하는 게 '모두'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음에도 "어 그래, 형도 같이 써볼게" 라던지, 아님 최소한 "어 너가 일단 써보고 나면 형이 읽어보고 피드백 해줄게. 너가 한 번 써볼래?" 라는 말 한 마디가 없더군요. 


속으로는 열불이 났지만,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던 시나리오이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제가 원하는 수준의 내용으로 글을 써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많이 안 했구요. 한 번 이야기 해보고 도저히 하모니가 나지 않으면 나 혼자서라도 써서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긴 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제일 어린, 그리고 몸도 안 좋은 동생이 형들 생활 펴주겠다고 나서서 이야기하는데, 어쩜 그리 수동적일 수가 있나요. 


오히려 형 한 명은 약간 날라리 기질이 있어서, 맨날 숙취로 병가 휴가 남용하고 무단으로 결근한 적도 있는 '요양원 골칫거리'였습니다. (매일 놀고 술 먹고 하고 싶은 거 다하고, 몸무게로 운 좋게 공익으로 빠져서 남들에 비하면 훨씬 편한 군생활 하고 있음에도 제일 불만이 많고 태도도 좋지 않은 형이었습니다.) 형이다보니 그런 거 가지고 제가 화를 내거나 훈수를 둘 수도 없었죠. 그런 형의 행동을 원장님께서 특히 싫어하셨는데, 그런 점들이 제가 내는 탄원서에 좋은 작용을 할 리가 있었겠습니까.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에 틀린 게 하나 없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혼자 원장님께 드릴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편지를 쓸 때 당시에 심리적 신체적으로 너무 지치고 힘들때라 그랬었는진 몰라도, 쓰고 나서 읽어볼 때마다 흠칫흠칫 놀랐습니다. 제가 읽어봐도 너무 공격적이고 거칠었었거든요. 게다가 요양원에서 맨날 힘들게 일하고 와서 쓰려고 하니까 좋은 감정으로 쓰기가 힘들었었죠. 그래도 꾸역 꾸역 공손함과 진심을 담아 글을 수정해나가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적었습니다.


 요양원에 발을 디딘 후, 밝은 면만 봐오며 사회를 살아왔던 내 뒷편의 어두운 사각지대를 접하게 됐고, 많은 걸 깨닫고 배웠다. 힘들 걸 알고도 빠른 제대를 위해 선택했던 근무지였지만, 막연한 각오만으로는 내가 감당해야 하는 요양원 업무들이 버거운 게 사실이다. '공익'에게 씌워지는 부정적인 프레임이 평소 밖에서도 날 괴롭히지만, 요양원 내부에서도 공익을 '수단'처럼 이용하는 특유의 태도에 치여 힘들 때가 많다. 거기다 인력부족으로 힘쓰는 일에 많이 투입이 돼 몸이 많이 망가졌는데, 요즘 들어서는 요양원 필수 업무 이외에도 무분별하게 공익을 이용하는 상황이 많아진 거 같아 굉장히 지친다. 무엇보다도 나는 겉보기완 다르게 몸이 굉장히 힘든 상태다. 항진증이 심할 땐 몸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컨디션이 저하되지만, 겉보기엔 아무렇지 않아보이니 사람들이 요령을 피우는 걸로 오해하곤 한다. 
 
 일을 앞으로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 다양한 업무들을 보조하지 않을 시 요양원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인지하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동기부여'다. 요즘처럼 고생을 굉장히 많이 하는 시점에서는, 우리가 그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게끔 주어지는 '보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부분을 원장님과 잘 이야기 나누고 중재안을 찾아가보고 싶다. 조금 무례해보일 순 있겠으나, 정말 고민을 많이하고 심사숙고 한 끝에 드리는 편지인만큼 너무 나쁘게는 안 봐주셨음 한다.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간단해보여도 무려 일주일동안 고치고 줄이면서 마음을 눌러담은 편지였어요. 하지만 쓰고 나서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이걸 드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혹여 선을 넘는 건 아닐까. 오히려 예전만 못한 더 최악의 요양원 생활을 보내게 되는 건 아닌가 정말 고민이 많았었어요. 


아무래도 저 혼자의 입장만 쓴 편지다보니, 이제는 정말 형들의 도움이 필요하겠다 싶어 형들에게 편지파일을 핸드폰으로 보내줬습니다. 내가 편지를 써보긴 했는데, 어떤 점이 부족하고 또 어떤 점을 고쳤으면 좋겠는지를 읽어보고 간단하게 피드백해줬으면 좋겠다는 메세지를 보내면서 말이죠.


하지만 두 형 중 단 한 명도 끝까지 제 편지를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놀기 좋아하는 형은 매번 제가 읽었냐고 물어볼 때마다 '아 맞다. 형이 그 때 술 마시느라 깜박했어, 미안하다.' 라고 대답했고, 그나마 절 도와주겠다던 형도 '아 맞다, 깜박했다.' 며 집 가면 읽어보겠다고 차일피일 미루기 바빴죠. 이미 견적이 다 보였습니다. 둘 다 4페이지에 달하는 제 탄원서를 읽을 생각이 없어보였어요.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편지를 내야하는 제 결심에 대한 확신이라도 얻고 싶어 형들에게 반복적으로 물었습니다.


 "형들, 저 이 편지를 진짜 드리는 게 맞는건지, 그냥 힘들더라도 참고 일하는 게 맞는 건지 도저히 결정을 못 내리겠어요. 냈다가 이전만 못한, 더 나쁜 상황이 찾아올까봐 걱정되고, 안 내면 굉장히 후회할 거 같읕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만약 걱정 한 가득이었던 동생에게 형들이 '걱정 말고 내. 같이 하는 일이니까 어떤 일 생기면 형들도 같이 나서서 적극 해결해볼게.' 라는 뉘앙스의 말만 해줬어도 확신을 가지고 편지를 드렸을 겁니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의 힘이 필요했고, 함께 헤쳐나가자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형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미온적이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며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했어요.


 "너가 알아서 잘 생각해서 결정해, 형은 어떻게든 상관없어."


같이 편해지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었음에도 마지막까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려는 형들에게 화가 많이 났었던 기억이 납니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당시 속으로 정말 욕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부모님께도 여쭤보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조언을 구하며 고민을 거듭하다 추석 직전 마지막 근무날에 원장님께 조심스럽게 편지를 드리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편지를 드린 후 거진 3주가 됐을까요, 생각보다 원장님께서는 오랫동안 답장을 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평소 원장님과 자주 대화를 하거나 소통하지는 않다보니, 원체 원장님 속을 알 수가 없었죠. 내 편지 때문에 화가 나신건지, 아니면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계신건지, 아님 읽던 중간에 읽을 가치도 없다 판단되어 갖다 버린건지 도통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 역시 다시 고되지기 시작했어요. 에어컨 전면공사가 시작돼서 쉬는시간도 갖지 못한 채 매번 에어컨 공사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먼지 뒤집어쓰고, 다시 저희 3명의 스트레스가 극한으로 차올랐었죠. 형들도 제가 편지를 드렸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제가 같이 쓰자고 할 때는 그렇게 수동적이고 관심도 없더니 막상 편지를 줬다고 하니까 내심 기대를 한 모양이었나 봅니다. 근데 계속 빡센 일이 물밀듯이 밀려오니 화가 많이 났었나 봐요. 제가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던 해프닝이 바로 이 다음에 펼쳐졌습니다. 복무요원들끼리 같이 밥을 먹고 있을 때였어요.


 "아 요즘 일 또 겁나 많이 시키네. 내 친구는 똑같이 요양원에서 일하는 데 할 일이 없어서 나오지 말라 그러고 쉬라고 한다는데 여기는 왜 이 모양인 거야."


 "그러니까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몸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일하고 이걸 다 참아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추가로 일 더 시킨다고 보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라는대로 묵묵히 다 하니까 당연한 건 줄 아는 거 같다니까요. 그리고 원장님이 편지 읽어보셨을텐데도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고... 참 답답하네요.."


 "아니 그니까 말이야. 우리가 그렇게 정성들여서 편지 써 드리고 했으면 어떤 식으로든 좀 조치를 취해주셔야 되는 거 아니냐? 진짜 짜증나서 더 못해먹겠다."


그 때 그 순간의 감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형 입에서부터 '우리'라는 말이 튀어나왔을 때, 그 자리에서 숟가락을 그 형 면전에 던질 뻔한 걸 겨우 참았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우리?? 우리???? 편지 쓸 생각도 안하고, 불평만 하고 뭔가를 고쳐볼 생각도 안하고, 기껏 편지 다 써서 읽어보라고 보내줘도 맨날 쳐 노느라 안 읽고, 매번 술병나서 병가 남발하고, 요양원 내 공익 이미지만 작살내고, 편지 드릴지 말지 확신 안 서서 물어볼 때마다 꼬리 빼면서 모르쇠로 일관한, 내가 편지에다가 뭔 말을 썼는지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우리'?????? 


진짜 가당치도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원장님이 제 이야기를 적극 수용해 뭔가의 보상 조치를 취해주신다면, 그 보상을 마치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인 거 마냥 뿌듯해할 걸 생각하니 역겹기까지 했어요. 더 짜증이 났던 건, 그래도 형들 배려한다고 편지에다간 '나'라고 안 하고 전부 '우리'로 표현했다는 겁니다. 저만 이득보려는 게 아니라 모두가 편해지기 위했던 것이니만큼 주어를 '우리'로 했었는데, 이렇게 '우리'라는 말한테 어퍼컷을 맞을 줄이야. 지금 이렇게 적고 보니 저는 요양원에서 제가 기대고 의지할 사람이 전무했던 거 같아요. 어떻게 버티고 살아남은 건지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합니다. 


약 한 달 뒤 쯤에 원장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그간 생각해오셨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편지를 받고 화가 정말 많이 났지만, 그래도 편지를 내기까지 고민했을 노력과 정성을 생각해서 제가 드렸던 제안을 열심히 고민해보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원장님께서 타협안을 제안해주셨고, 덕분에 저희는 그 이후로 힘든 일을 할 때마다 조기퇴근이나 공가 형태의 보상을 적절히 받을 수 있었습니다.


누가 제일 그 혜택을 많이 누렸냐구요? 이미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형들이죠. 특히 술병으로 병가, 연가를 죄다 날렸던 형한테 조기퇴근은 거의 구세주 급의 보상이었습니다. 저한테 단 한 마디도 '고맙다' 라는 말을 안 하고 따박따박 그 보상 누려가는 형 보면서 '이게 진짜 인생의 참맛인건가' 싶은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그 형은 제가 편지에다가 무슨 말을 적었는지 단 한 마디도 모릅니다. 다른 형 한 명은 그래도 저한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은 하더군요. 


팀플을 하는 대학생, 창업을 하는 취준생, 단체 프로젝트나 협업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한 번쯤 이런 상황을 겪어보셨을 겁니다. 참, 씁쓸하면서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거 같습니다. 기분 나쁘다고 때려치우면 나 역시 피해를 보게 되니까요. 특히나 저처럼 관계를 확 끊어버리거나 단호하게 문제점을 잘라내버릴 수 있는 상황이 못 되는 경우엔 더욱 더 이런 일련의 해프닝들이 힘들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 때 그 형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뱉었던 '우리'라는 말의 이중성, 그게 생각이 나서 이렇게 길고 조잡하게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그 형은 지금 뭐 하고 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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