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채 되기 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었습니다. 당시 저는 죽음이라는 것을 자각하기엔 너무나도 어린 나이었고, 주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어두운 표정, 무엇보다도 슬펐던 어머니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에 외할아버지는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셨고, 좋은 분이셨던 만큼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어르신을 배웅하는 거라고 하셨죠.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종일 서 있는 게 피곤해 엄마 아빠께 징징댔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 이후 거의 처음 맞이한 누군가의 '죽음'은 가히 공포스럽고 무서웠습니다. 두 달 넘게 식사수발을 해드린 할머니께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본 그날 이후로, 까무러칠정도로 요양원에 출근하기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할머니께서 계셨던 방에 기웃거리는 것조차 싫었고, 할머니의 죽음을 마치 코 파는 것마냥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보호사 선생님에 대한 제 시선도 그 이후로는 예전처럼 좋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참 신기합니다. 제가 초반 요양원에 다닐 때만 해도 건강한 분들만 가득했던 요양원이었는데, 기가막히게제가 식사수발했던 어르신께서 돌아가신 그 날 이후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시는 어르신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분은 낙상으로 인한 고관절 골절로 수술을 받으시다 돌아가셨고, 또 한 분은 제가 집에서 잠을 자고 출근한 다음날 요양원에 찾아와보니 침대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어제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셨던 치매 어르신이 계셨던 자리가 하루 지난 다음 날 텅 비어있는 광경. 일방향으로밖에 흐르지 않는 시간이라는 존재가 너무 소름끼쳤고, 그분들이 정말 돌아가셨다는 것에 대한 현실감이 하나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더욱 기분이 찝찝하고 이상했던 것은 주변 모든 종사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나는 이 말도 안되는 죽음의 상황들이 충격적이고 무서운 데 반해, 그 누구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였죠. 어제만 해도 같이 생활했던 동료의 죽음을 알았음에도 너무나도 태연한 어르신들, 당신께서 케어하시던 어르신이 돌아가셨음에도 다음 날 깔깔거리면서 타 보호사분들과 농담을 나누는 보호사선생님, 어르신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자꾸 돌아가시는 어르신들로 인한 요양원의 이미지 실추를 걱정하는 요양원 직원들, 아무 생각 없이 저녁에 또 누구랑 술을 마실까 고민하고 있는 형. 어르신들이 돌아가실 때마다 저는 트루먼쇼 속 주인공 마냥 요양원 안에 앉아있는 제 스스로가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요양원에서 근무한 시간만 10개월이 넘었더군요. 그 거북했던 요양원 생활도 어느덧 짬이 찼는지, 이제 누가 뭘 시키지 않아도 저는 시간에 맞춰 요양원에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는 나름의 베테랑 사회복무요원이 되어있었습니다. 평소대로 어르신들 프로그램 준비를 하기 위해 복도 책상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마련하고, 수업을 들으시는 어르신들을 모시기 위해 이방 저방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을 휠체어에 옮겨드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복무요원 형들과 함께 어르신 방을 돌아다니던 중, 늘 계시던 어르신 한 분이 자리에 안 계시는 걸 발견했습니다. 병원을 가셨나 싶어서 데스크에 계신 복지사 선생님을 찾아가 여쭤봤죠.
"선생님, XXX 어르신이 자리에 안 계시네요. 병원 가셨어요?"
"아, 내가 말 안해줬나? XXX 어르신 어제 돌아가셨어. 나 좀 있다가 그 어르신 장례식장 가야 돼."
"아, 돌아가셨구나. 다음에 오시는 어르신은 좀 가벼우신 분이셨으면 좋겠네요. 그 어르신 너무 몸무게 많이 나가서 좀 힘들었었거든요."
"야, 팔 허리 힘을 길러. 여자인 나도 혼자서 드는데, 너는 1년 다 돼가면 이제 기술적으로 들 수 있어야지."
가벼운 말을 복지사 선생님과 주고받고 다시 어르신을 모시기 위해 돌아서는데, 방금 했던 말이 머리 속에 오마주 되면서 그 짧은 찰나 흠칫 놀라고 말았습니다.
'방금 내가 뭐라고 했지?'
스스로에게 순간 역함을 느끼는 와중에 예전과는 또 다른 의미의 공포감이 제 주변을 엄습했습니다. 마침 옆에 거울이 있더군요. 거울 속에 보이는 한 복무요원은 어느새 본인이 이질적으로 바라보고 늘 이해하지 못했던 요양원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박고 있었습니다. 방금 저는 가벼운 농담조의 멘트를 날리면서 한 어르신의 죽음을 너무도 당연히, 그리고 가벼이 생각하고 넘겨버렸습니다. 그 소름돋고 무섭다고 생각한 타인의 죽음에 나도 모르는 순간 익숙해져버린 겁니다. 늘 왜 저럴까 의아해하며 바라봤던 보호사분들, 종사자분들의 무덤덤한 태도를 어느새 저도 모르는 사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습니다.
익숙해져가는 것의 무서움을 사무치게 깨달은 그 짧은 순간 이후, 놀랍게도 한 가지를 바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예전의 나로 다신 돌아갈 수 없겠구나.' 하나 둘 사라져가는 어르신들의 죽음에 이미 나도 모르게 무뎌지고 익숙해져버렸기에, 아무리 어르신의 죽음을 의식적으로 슬퍼한다 한들 나는 첫 어르신의 죽음을 마주했던 그 순간의 나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겠구나.
누구보다도 봉사정신을 가지고 그 누구도 발 벗고 나서지 않으려 하는 일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 비록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동기가 '순수한 봉사정신'에서 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하더라도, 요양원에서 근무한 2년의 시간동안 복지 사각지대를 위해 일하는 분들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2년동안 핵심업무도 아닌 부차적인 일을 하는 나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이를 생업으로 삼고 하시는 분들은 너무너무 멋지시고 대단하신 분들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옆에서 지켜보며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 찬란한 아름다움 이면에 도사리는, 그 어떤 사회보다도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면들 또한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 접할 수 있었고, '죽음'에 무서우리만큼 초연해지고 무뎌지는 것 또한 분명 그 중 하나였습니다. 현재 터지는 코로나 사건을 예로 들어볼까요. 우리는 처음에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들을 보며 경악했고 슬픔을 금치 못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백신 부작용으로만 천 명이 넘게 사망하고,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사망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조차 없이 어마무시합니다만, 그 누구도 코로나로 인한 죽음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당장 내 주변 소중한 사람들이 죽은 게 아니거든요. 어느덧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죽음'에 너무나도 무뎌졌습니다.
저의 요양원 생활 역시 그랬습니다. 제가 너무너무 좋아했고 아꼈던 어르신이 돌아가신 날 구석진 방에서 펑펑 울었던 걸 제외하면, 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수많은 어르신들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태연한 '남'이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르신들의 죽음은 마치 요양원 속 업무 중 하나인 양 익숙해지고 무뎌져갔고, 나도 모르게 익숙해졌다가도 일순간 그런 저를 돌아보며 스스로가 무서웠던 적도 참 많았습니다.
'익숙함'이라는 건 우리에게 참 소중하죠. 집, 친구, 연인, 공원, 놀이터, 나무. 나에게 익숙하기에 편안하고 나에게 익숙하기에 참 행복한 것들입니다. 낯선 것밖에 없는 세상이라면 그 얼마나 끔찍한 곳인가요.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익숙한 '익숙함'이 때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낯선 존재가 되어 우리를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을 겁니다. 요양원에서 겪었던 이 일련의 경험들은 '익숙함'이라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무섭고 공포스러울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 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마치며, 여러분께도 질문해보고 싶어요.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이 모르는 사이에 익숙함에 둔해져 있는 건 아닌지. 그 둔함이 무서움으로 번져 본인을 덮칠 수 있다는 걸 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