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by 김선

생각 좀 그만하라고 내 몸에서 신호를 보낼 때가 있다.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띵한 편두통이 사라지지 않고, 서늘한 기운과 함께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고, 한나절 내내 무기력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 그런 날 말이다.


이런 통증은 대개 마음에서부터 나온 거라 그런지 두통약도 잘 듣지 않는다.

부당함에 대해 화를 내야 할 때 제대로 내지 못하고, 무례함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억누르고만 살았다. 그때마다 몸속에서 흘러나온 ‘분노’의 기운들이 쌓이고 쌓여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이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다른 감정들은 오버액션해가며 표현하면서, 짜증이나 화에 있어선 왜 이렇게 표현 장애를 겪는 것일까.




“사람이 어쩜 저래?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런 짓을 하지?”

뉴스에서 터져 나오는 사건사고의 가해자들을 두고 사람들이 맹렬히 비난할 때도 난 다른 생각을 했다.

'저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저 사람만의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가 모르는 그들만의 상황들이 내 머릿속에 말풍선처럼 떠올라 연민의 감정으로 미화되기도 했다.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사람에게는 억울함을 표명하기는커녕,

'나중에 오해가 있었던 걸 알면 저 사람은 얼마나 무안해할까.'라는, 아주 쓸데없는 오지랖에다,

고장 난 역지사지 정신까지 펼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진짜 마음속의 화는 몸속으로 스멀스멀 번지고 쌓여 병으로 자라났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판단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예민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솔직한 감정은 회피하고 화를 낼 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갔다.

그것도 자기 건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진짜 바보.


마흔을 넘기면서 몸 곳곳에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4년 전엔 요로결석 시술을 받았고, 2년 전부터는 오른쪽 가슴 아래 부분에 극심한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그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어 병원에 가지 못하고 방치했더니 나중에는 이것 때문에 간 수치가 무려 1000을 넘기게 되었다. 결국 병원에선 당장 수술받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협박?으로 입원을 해야 했다. 간 수치가 1000 정도를 넘기려면 암이나 b형 간염이 예상된다며 무섭게 얘기하면서 입원 후 며칠 동안 MRI며 각종 검사를 해 댔다. 다행히 담낭에 생긴 큰 결석 때문에 나타난 문제 같다고 하며 일단은 담낭 제거 수술을 한 후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진행되었다.

(요즘 담낭 수술은 수술도 아닐 정도로 쉽게 할 수 있다. 나처럼 방치하면 결석이 염증을 일으키게 되고 잘못하다간 간 손상까지 갈 수 있기 때문에 담낭에 2센티 이상인 결석이 발견되면 가급적 바로 수술하는 게 좋다. 수술도 보통은 2박 3일 정도면 퇴원, 하지만 내 경우는 결석도 4센티가량인 데다 염증으로 간수치가 너무 높아서 낮추고 수술하느라 열흘 넘게 입원했다)

수술 후 의사 선생님께서 담낭에서 빼낸 4센티가량의 돌을 보여주셨다. 이런 돌이 몸속에 있는데 그동안 통증을 어떻게 참았냐며 한심하다는 듯 나무라셨다. 그 와중에도 난 웃음까지 지어 보이며 의사 선생님게 농담도 했다. 그런데 병원 침대에 홀로 누워 가만히 그 돌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45년간의 화가 쌓이고 쌓여 네가 만들어졌구나 싶은 생각에 결석마저 애처로웠다. (자기 연민, 병원이란 곳이 그랬다.)

몇 개월간 지속된 시부모님의 간병도 그렇고, 애들 학교는 어떻게 하고 밥은 또 누가 챙겨줄까란 생각 때문에

1년 넘게 극심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병원에 제대로 된 검사를 받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몸을 이 지경으로 방치한 데 대한 내 미련함에 화가 나서 슬펐다.

자조 섞인 연민 때문이었을까. 그날 이후 이 화란 녀석이 더 이상 몸에 들어앉아 있지 않고 입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정인이 사건’이 오르내릴 때 양부모 입장이 웬 말.

"저 인간들 그냥 감옥에 보낼게 아니라 정인이가 받은 고통처럼 똑같이 갈비뼈를 으스러뜨려야 해.”라며 어느새 주먹을 힘껏 쥐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더 심한 욕도 했지만, '브런치'란 곳이 그렇다.)

이후, 뉴스에 나오는 흉악범들은 한동안 귀 꽤나 따가웠을 것이다.

한 쓸개 빠진 아줌마의 놈, 놈, 놈으로 끝나는 욕랩을 멀리서나마 들어야 했을 테니까.


‘화를 내지 않고 말하는 법’

‘화내지 않고 감정 조절하기’

라고 모두가 이야기할 때 난 이제야 화를 표출하는 중이다.

내 몸속에 나온 결석들이 말한다.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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