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허달림과 박남준
보람찬 하루일을 마치고 퇴근하려고 시동을 거는데, 켜놓은 라디오에서 강허달림의 노래가 나온다. 귀보다 먼저 마음에 와 박히는 노래.
난 그저 나였을 뿐이고
넌 그저 너였을 뿐인
너도 나도 나도 너도
너나 할 것 없는 세상에
생각에 시선에 말들에 웃음에
이미 별볼일없는 것들이진 않아
노래를 들으며 학교 밖으로 나서는데, 이미 마음은 쿵하고 내려앉은 상태. 아직도 노래 하나에 이렇게 쉽게 마음이 오르내리는 걸 보면, 그 많은 나이를 도대체 어디로 먹었나 싶다. 잠깐 신호에 걸린 틈을 타 라디오를 끄고, 아예 강허달림의 〈기다림, 설레임〉을 반복재생한다. 그래, 한 시간 동안 각잡고 청승을 떨어주겠어!
추억을 돋게 하는, 묻어둔 상처를 호출하는, 달관한 듯 끈을 놓아 버린, 슬픔을 후벼파는 목소리. 무심해서 아픈 목소리. 오늘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애썼다고 보람차게 길을 나섰는데, 갈수록 마음이 싱숭생숭.... 요상하다.
내 차 안엔 우울의 비가 내리는데, 우쒸! 거리엔 꽃천지. 난데없이 박남준의 시 〈봄날은 갔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저렇게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그러고 보니 오늘이 4월 30일. 봄이 가고 있나. 아니면 봄의 한복판인가. 뭐 어찌 됐든 난 오늘 강허달림과 박남준, 둘에게 머리를 쥐어뜯긴 채 산발이 되어 귀가했다. 바보같으니, 바보같으니, 바보같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