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퀸(Queen). 이제는 그 어떤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록밴드다. 1973년에 데뷔, 1991년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하며 서서히 사라져간 밴드. 그러나 프레디도, 퀸의 노래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곁에 있다.
오늘은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자전적 스토리를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내가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들은 건 대학 다닐 때였던 것 같다. 노래를 듣고 처음 든 느낌은 난해하다, 그런데 뭔가 가슴이 두근거린다. 도도하면서도 매혹적이다. 반항적인데 슬프고 우울하다.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기도 하고, 구석에 숨고 싶기도 한 모호하고 이중적인 느낌. 두려운데 아름답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가사를 찾아본 난 더 놀랐었다.
엄마,
방금 사람을 죽였어요.
총구를 그사람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더니 죽고 말았어요.
엄마, 제 인생은 막 시작됐는데
제가 막 모든 걸 내팽겨치고 만 거예요.
엄마.
울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만약 내일 이 시간에 제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계속 살아가세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Bohemian Rhapsody〉 중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는, 문청이었던 난 이 음울하고 비장한 가사가 썩 마음에 들었다. 마치 내 마음속에 산재한 여러 감정들을 모두 쏟아 내고 있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와, 알 수 없는 인생의 미스테리를 한꺼번에 접한 느낌. 그 느낌들은 시간이 지나고 노래를 자꾸 들을수록 희미해지긴 했으나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 바탕에 깔려 있다.
2018년 미국 유니버셜 뮤직 그룹(Universal Music Group)은 퀸이 1975년 발매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오리지널 송과 공식 비디오가 전 세계적으로 16억 스트리밍을 기록했고, 이 노래가 공식적으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20세기 최고의 노래이자 클래식 록 음악이 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은 브라이언 싱어가 감독하고 라미 말렉이 연기한 미국 영화다. 우리나라에서 2018년 10월 31일에 개봉, 총 누적관객 수 9,948,386명(Daum 영화 정보)을 기록했다. 와우! 거의 천만 관객이다. (물론 나도 그 관객 중 하나였다.)
1970년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수하물을 나르던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 파록 버사라. 그는 작은 펍에서 노래부르던 밴드에 보컬로 들어가며 프레디 머큐리라고 개명한 후 밴드 ‘퀸’을 이끈다. 영화는 이때부터 ‘라이브 에이드’ 공연까지 약 15년 간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와 인생 이야기를 다뤘다. 그렇다면 퀸은 어떤 밴드인가. 영화 앞부분에 나오는 존과 프레디의 대화는 ‘퀸’의 정체성을 설명해 준다.
존 : 말해봐. 다른 록스타 지망생과 다른 점이 뭐지?
프레디 : 우린 부적응자들(Misfits)을 위해 연주하는 부적응자들이에요.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마음 쉴 곳 없는 사람들, 우린 그들의 밴드예요.
퀸의 모든 노래가 아직도 사랑받지만, 영화의 제목으로 선택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단연 압도적이다. 6분이라는 파격적인 길이에 오페라, 록, 팝을 완벽하게 혼합하여 전세계인의 공감과 환호를 이끌어낸 노래다.
오페라 스케일로
그리스 비극의 페이소스와 세익스피어의 위트와
뮤지컬의 날것 같은 즐거움이 담긴 음악적인 경험이죠.
평범한 앨범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무언가
내 것이란 느낌을 주는 음악요.
우릴 음악적 울타리에 가둘 순 없어요
퀸이 신비로운 건
한 가지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보헤미안 랩소디〉 가사를 두고 표면적으로는 사형수의 심경을 표현했지만, 사실 프레디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된 후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그건 평론가들의 말이고, 이 노래를 듣는 사람은 모두 자기서사로 받아들여 해석한다. “모두를 위한 무언가, 내 것이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대를 초월하여 이토록 긴 생명성을 갖게 된 것이리라.
이건 현실일까? 아니면 그냥 환상일까?
산사태에 파묻힌 듯,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어.
눈을 떠, 고개를 들고 하늘을 봐
난 불쌍한 아이일 뿐, 동정은 필요없어.
왜냐하면 쉽게 얻은 건 쉽게 잃는 것이고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으니까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몰라도 나에겐, 나에겐 정말 상관없어.
-〈Bohemian Rhapsody〉 중에서
영화 속 프레디 머큐리를 보고 내가 느낀 건 불쌍하고 안쓰럽고 짠하고 외로운 ‘소년’ 같은 이미지였다. 미치광이 복장도착자, 별종, 게이 등등 수많은 부정적인 단어로 불렸지만, 그는 그저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작고 왜소한 아이 같았다. 가슴에 활화산을 품고 있는, 불쌍한 아이. 그 아이는 결국 ‘스타’가 아니라 ‘전설’이 된다.
친구여, 넌 소년이야.
큰 소란을 피우고 거리에서 뛰놀면
언젠가 크게 될 거야.
얼굴엔 진흙을 묻히고
수치를 무릅써 깡통을 차며 노래를
우린 널 뒤흔들겠어
우린 널 뒤흔들겠어
-〈We will rock you〉 중에서
마지막 20여분에 걸친 “라이브 에이드 Live Aid” 공연 씬은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짜릿한 임장감을 준다. 전율. 여기서부터는 영화가 아니다. 그는 더 이상 라미 말렉이 아니다. 그냥 프레디 머큐리가 환생해 내가 그의 콘서트를 직관하는 듯한 느낌. 환호와 열광 속에 내던져진 채 발바닥부터 차고 올라오는 뜨거운 ‘무엇’을 어쩌지 못해 몸이 붕붕 뜬다. 눈과 귀를 비롯, 온몸이 바싹 곤두서 오로지 록의 전설만을 쫓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좀처럼 자리를 뜰 수 없는, 화면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는 무아의 지경.
우리는 챔피언이야, 친구들이여
우리는 끝까지 싸울 거야
우리는 챔피언
우리는 챔피언
패배자를 위한 시간은 없어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의 챔피언이니까
-〈We are the champions〉 중에서
이 영화는 어느 한 뮤지션의 생애를 다룬 자전적 얘기가 아니다. 그저 프레디 머큐리라는 록의 전설에게 바치는 헌정앨범 같은 것이 아닐까. 스토리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그냥 ‘음악’ 영화다. 이 글 역시 이 영화에 대한 에세이가 아니다. 프레디에게 바치는 연서 같은 것. 당신을 추앙한다는 고백 같은 것이다.
아침저녁 시원한 바람부는 초가을, 매혹적인 노래들을 들으며 젊은 날을 반추하고 싶다면 볼륨 크게 올리고 이 영화를 보시라! 젊음의 에너지로 온몸이 후끈 끓어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