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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와강 Aug 23. 2024

나는 나대로 혼자서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요즘 좀 바빴다. 방학인데 뭐가 그리 바쁘냐, 하면 뭐 이것저것 이래저래 늘어놓은 것들이 많아서라고 답한다. 바쁘니 몸이 곤하다. 오늘도 해야 할 일이 세 가지. 아침 7시, 알람이 울린다. 어제 지방 강의를 다녀와서인지 알람소리 요란해도 몸은 꼼짝하지 않는다. 알람을 10분 후로 다시 맞췄다. 10분 후. 여전히 몸이 깨어나질 않는다. 아아.....      


오늘은 안 되겠다. 캘리 수업 제끼자. 사람이 먼저지, 이러다 큰일나겠어.

네가 한 약속이잖아. 이거 배우고 싶어서 알람 맞춰놓고 광클해서 신청하지 않았어? 어제 지방에서 올라오며 고터 한가람문구에서 캘리 재료까지 샀잖아. 근데 안 간다고?

아니아니. 오늘은 너무 피곤해. 이번주 일이 정말 많았잖아. 게다가 오후에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아직 브런치 글도 마무리 못했는데, 캘리 갔다오면 시간이 부족하단 말야.

야! 너, 지금까지 책임감 하나로, 약속 지키면서 살아오지 않았어? 그게 네 인생 신조잖아?

여기서 인생신조가 왜 나와! 아악~~! 일어난다, 일어나. 가면 되잖아~~     


누구나 그럴 것이다. 순간순간 내 속에서 울리는 수많은 마음의 소리들. 가혹한 원칙주의자와 관대한 수정주의자가 나름의 근거를 내세워 패싸움, 아니 개싸움하는 풍경. 때로는 규칙을, 때로는 일탈을 선택하며 살아온 나날들. 그래도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든 건 가혹한 원칙주의자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먹고 산다는 건 결국 당위, ‘해야만 하는 일’ 위주니까.      


그 마음의 소리들에게 형체를 부여하면 어떻게 될까.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수많은 ‘나’들. 내 속에서 솟아나는 모든 생각들을 가감없이 떠드는 수다쟁이들. 온갖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으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약삭빠른 ‘나’들. 털끝만큼의 일탈도 허용치 않는 네모난 ‘나’들. 그 많은 ‘나’의 형체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2021)는 《남극의 셰프》(2009), 《모리의 정원》(2017) 등을 감독한 오키타 슈이치 작품이다. 다나카 유코가 75세의 모모코 역을 맡았고, 모모코의 20대는 아오이 유우가 연기했다. 영화는 남편과 사별 후 63세에 소설가로 데뷔한 와카타케 치사코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동명의 소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를 바탕으로 했다. 데뷔작으로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이 책은 수상 24일 만에 50만 부를 돌파, 아마존 재팬 랭킹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영화는 남편이 죽고 자식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진 75세 모모코의 심심하고 고독한 일상을 138분 동안 다루고 있다. 지루할 정도로 느릿느릿한 템포. 75세의 모모코는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약을 먹고, 나 혼자 파스를 붙이고, 나 혼자 병원 갔다가 귀가한다. 다시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차를 마신다. 가끔 도서관에 들러 고대 생물학 책을 빌려오기도 한다. 불쑥불쑥 젊은 시절의 어느 한순간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하고, 돌아가신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정신차려 보면 모두 연기처럼 사라진다.       


나만 이런 게 아니야.

어떻게든 될 거야.      


모모코 옆에는 모모코와 똑같은 옷을 입은 세 명의 ‘마음의 소리들’이 늘 따라다닌다. 모모코가 혼잣말을 하면 ‘케케묵은 말들을 하고 또’ 한다고 비웃고, 밥을 먹으면서 ‘어라, 좀전에 점심 먹지 않았던가’하는 생각이 스치면 내 마음의 소리들이 또 떠들어댄다. 마치 《유미의 세포들》의 세포들처럼.      


아이고, 망신스러워라

머리가 이상해지면 혼자서 어떻게 산대?

아이고, 망신스러워. 아이고, 큰일이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마음의 소리 중 한 명이 딱 붙어 앉아 속삭인다.      


더 자.

일어나봤자 좋은 일도 없어.

어차피 어제랑 똑같을 거, 더 자.

어차피 외톨이야, 어차피.     


아주 옛날, 시골에 살던 모모코는 “나는 새 시대의 사람이야. 미래를 살아갈 여자야.”라고 선언하며, 정략결혼을 뿌리치고 당차게 도쿄에 올라왔었다. 도쿄에 오자마자 남편을 만나고 결혼해, 아이 둘을 키우며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차려 보니 다 떠나고 지금 이렇게 혼자 앉아 있다.      


남편은 일찍 죽었지

자식들하고는 소원해졌지

이렇게 쓸쓸한 가을을 맞게 될 줄 몰랐는데

어떤 열매를 맺은 걸까     



남편의 묘에 찾아가며 모모코는 숲속에서 온갖 상념에 빠진다. 그때 젊은 모습 그대로의 남편 환영이 모모코 옆에 선다.     


내가 가장 빛났던 건 언제야?

당신하고 만났을 때?

아니면 어린애 둘을 안고 열심히 살던 무렵?

음, 글쎄...

아니야. 당신이 죽고 나서 요 몇 년 동안이 내가 가장 빛나고 있던 때가 아닌가 싶어.      


그곳에서 모모코는 20대 젊은 시절의 자신과 조우한다. 75세의 모모코는 20대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분명 나는 슈조를 사랑했어. 진심으로 반했었지. 하지만 슈조가 죽었을 때 한 점의 기쁨이 있었어. 나는 혼자 살아보고 싶었던 거야. 내가 원하는 대로 내 힘으로 살고 싶었어. 그게 나야.     



이제 모모코는 그 누구보다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다. 늘 외롭고 가끔 자유로울 것이다. 수시로 지난날이 생각나 추억에 젖을 테지만, 완벽하게 내가 통제하는 내 일상에 만족할 것이다. 혼자 파스를 붙이는 일에 익숙해진 것처럼, 종일 모모코를 따라다니며 사사건건 투덜대는 마음의 소리들과도 그럭저럭 잘 지낼 것이다. 지루하고 느릿한 스토리 전개에 일본식 판타지가 가미된 독특한 영화다. 숏폼에 익숙한 젊은 사람들은 끝까지 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나는 혼자

오늘도 혼자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지

왜냐면 이 집은 외로움으로 떠들썩하니까

수많은 나로 떠들썩하니까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OST 가사다. 맞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거다. 독거의 고독과 자유! 이것들은 세트라, 좋은 것 하나만 취할 순 없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말이란다. 그저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가면 될 일이다. 아싸, 혼자! 오늘도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잉~~! ♣





* 사진 출처 : Daum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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