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리시안셔스〉를 읽고
연여름의 단편집 《리시안셔스》(황금가지, 2022) 중 표제작인 〈리시안셔스〉를 읽었다. 2021년 SF어워드 우수상 수상작. SF 소설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읽기를 잘한 것 같다. 〈시금치 소테〉라는 작품으로 작가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번 기회에 '연여름'이라는 이름을 좀더 선명히 기억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현재 시점으로부터 400여 년 후다. 지구 대오염으로 동물은 멸종, 전염병으로 인간의 3분의 2가 사망하고 살아남은 이들 중 다수가 후유증으로 신체기관이 손상되거나 병약해진 상태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재빠르게 인공장기와 면역체계를 심고 지구를 대신할 행성으로 이주하기 위한 계획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주계획이 두 번이나 실패하자 지구 곳곳에는 지도층을 위한 요새가 생겨났다. 이후 인간을 분류하는 기준에도 변화가 생겼다. 인간, 공생인, 반려인, 미등록.
우선 ‘인간’. ‘인간’은 배양센터의 도움으로 태어나 인공장기와 면역체계를 주입하는 등 신체를 기계화한 사람으로 인류의 화성이주 프로젝트에 봉사를 서약한, 건강하고 쓸모있는 사람이다. 일종의 반인반기(半人半機)인 셈이다. 이들은 지도층을 위한 안전구역인 요새에 거주한다. 요새는 오염정화장치가 있고 질서가 있는 공간으로 안정적인 인구 쿼터를 유지하기 위해 이곳에 사는 ‘인간’은 대개 150세에 생명을 종료한다. 그들은 평균수명 22세의 미등록에 비해 7배나 오래 사는 셈이다. 씁쓸하다. 언제나 어디나 그렇다. 시공간이 어디든 소설이든 현실이든 돈있고 빽있고 가진자들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몇 년 전 코로나가 전세계를 휩쓸 때도 없는 자들에겐 백신도 마스크도 좀처럼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었다.
다음으로 인간을 보조하도록 선별된 일부 미등록들인 ‘공생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존재만으로 주인을 기쁘게 하는 ‘반려인’, 요새 밖에서 배양센터의 도움 없이 태어나고 태어난 그대로의 몸으로 병약하게 살아가는 ‘미등록’이 있다. 미등록은 인간이 주는 캡슐과 영양바 등의 배급에 의존하는 자들로 흙먼지와 산성비에 찌든 예비무덤에 거주하고 있다. 인간과 미등록의 유일한 공통점은 자가종료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등록들이 요새에 들어갈 기회는 딱 한번, 자가종료약물을 받을 때다.
작품의 설정은 SF영화 〈가타카〉(앤드류 니콜 감독, 1997)를 떠올린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태어난 형 빈센트와 유전자 선택으로 태어난 동생 안톤. 우성 유전자들만을 골라 가진 이들이 미래 사회를 책임지는 임무를 수행하는 반면,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난, 즉 자연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는 열성 유전자로 인해 자신의 꿈조차 제대로 이룰 수 없고 우성 유전자들의 삶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유전자로 인해 태어나면서부터 계층이 나뉘어지는, 즉 인공이 자연을 압도하는 미래 사회 속 형제로 대표되는 계층 간의 갈등과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이 소설은 최근에 읽은 김효인의 SF소설 〈우주인, 조안〉(2020)을 생각나게 한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근미래, 인간은 C(Clean)와 N(No clean)으로 나뉘어 살아간다. C는 5억짜리 청정복을 입고 평균수명 100세 정도로 교육받은 사람들이고, N은 청정복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로 평균수명 30세다. 이 역시 자본에 의해 계층과 수명이 결정되는 미래사회를 그린 소설로,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 (이 소설은 웹툰, 단편영화로 제작되었다.)
〈리시안셔스〉라는 소설이 내게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점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반려인’이라는 설정이다. 반려인은 인간도 공생인도 아닌 존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존재만으로 주인을 기쁘게’ 하면 된다. 지구 대오염으로 동물이 멸종된 상태에서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대신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 원래 미등록인 ‘나’는 21세에 자가종료약물을 받으러 요새에 들어갔고, 거기서 ‘진’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인간 ‘규희’(121세)를 만나 처음으로 꽃 ‘리시안셔스’를 선물받은 후 그의 반려인으로 입양된다.
규희는 인공 배양 센터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18세에 성년을 맞이하고 ‘인간’이 되기 전까지 머무는 학교의 교사다. ‘진’은 규희의 네 번째 반려인이다. 그 전에 입양되었던 세 명의 반려인은 아파서 죽었거나 지겨워졌거나 대들어서 파양되었다. ‘진’은 이제 새로운 삶에 만족한다. 면역체계강화 주사를 맞고 백신을 접종한 후 규희 집에서 생활한다.
“나의 목적지는 이제 죽음 대신 규희였다.”(30쪽)
작품 후반부는 살짝 신파적이다. 규희의 세 번째 반려인인 A11과 규희의 갈등, 그 와중에 ‘진’ 역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고 이것들이 충돌하면서 결국 스토리는 파국을 맞는다.
작품 제목인 ‘리시안셔스’는 꽃 이름이다. 사실 난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리시안셔스’가 꽃 이름인지도 몰랐다.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 작중 ‘진’이 태어나 처음으로 본 꽃, 규희에게 받은 첫 번째 꽃이 바로 ‘리시안셔스’다. 그 꽃을 준 규희는 ‘진’의 주인이 되고, 죽음을 대체한 ‘나의 목적지’가 된다. 철저하게 계층으로 나뉜 미래사회를 다루면서 ‘인간’을 향한 반려인의 사랑을 ‘리시안셔스’ 꽃말로 표현해 낸 것이 재밌다.
두 번째는 SF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리시안셔스의 꽃말인 변치 않는 사랑과 ‘인간성’을 접목시키면서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작품의 서두, 소설의 현재 시점에서 400년 전에 쓰여진 소설 〈4세대〉에 관한 언급이 있다. 반려인 ‘진’은 이 소설의 “우린 인간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어”라는 대목을 읽고 ‘인간성’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인간이 아닌 ‘진’이 생각하는 인간성이란 ‘향상된 신체와 높은 지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높은 비용과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인간’ 양육자가 인공 배양 센터에서 탄생한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본격적인 시술을 시행해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는 존재란 아주 소수다.(15쪽)
그러나 규희가 설명해주는 과거의 ‘인간성’ 개념은 진이 생각한 것과 사뭇 달랐다.
“그때의 인간성은 뭐랄까, 내가 갖춘 조건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태도였을 거야.”(중략)
“태도요?”
“응, 타인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이지. 그래서 정의가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유연해.”
내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는지 규희가 이어서 설명했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의견이나 생각에 공감하거나, 처지를 연민하거나, 그래서 도움을 주거나, 함께 있어 주고 싶거나 하는 마음가짐. 심지어 아무런 대가가 없어도 말이야.”(17쪽)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과거의 ‘인간성’이란 누군가의 의견에 공감하고 타인의 처지를 연민하고 도움을 주거나 함께 하고 싶어하는 마음, 이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분류된 규희는 전혀 인간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필요에 따라 반려인을 바꾸고 파양하면서도 책임이나 미안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연민도 없다. 하긴 반려인이란 애초에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이 그들에게 공감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작중에서 ‘인간’이란 인공심장과 주요 혈관, 폐를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계로 교체하고, 필요에 따라 뇌의 일부, 근육, 안구, 피부까지 추가로 교체한 상태라 온전한 인간으로 보기 어렵다. 반인반기(半人半機)가 아닐까. 따라서 이들에게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성에 대해 운운하는 것조차 미련한 짓일지도 모르겠다. 또 그 인간성의 개념이 이제는 폐기된 오래 전 것이기에 새삼 호출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곧 파양될 처지에 놓였으면서도 주인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진은 미등록, 반려인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기꺼이 도움을 준다. 미등록으로 태어나 자가종료 직전에 자신을 구원해 준 규희, 한번 마음을 준 규희에게 끝까지 변치 않는 사랑을 유지한 진의 짧은 생이 안타깝다. 돈이 없고 추천인도 없어 태어난 그대로의 몸, 즉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온 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성’의 의미가 달라지고 폐기된 미래 사회에서도 인간성이라는 과거의 고전적 의미를 여전히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리시안셔스〉에서 반려인 ‘진’이 보여준 것은 ‘리시안셔스’ 꽃말처럼 규희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이다.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새롭게 포맷된 까마득한 미래 세상에서도 여전히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 점이 의미심장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진’이 기계를 이식하지 않은, 즉 반인반기(半人半機)가 아니라 온전한 인간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본과 쓸모로 사람을 나누고, 사람을 사람의 반려동물화하고, 반인반기가 ‘인간’ 행세를 하는 미래 세상에서 다시 한번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묵직한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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