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기로 결심함과 동시에 쉼을 선택했다.
부담스러운 걸 애써 부담스럽지 않다고 속이며 지난 시간들을 보내왔다.
결국 내 몸이 파업 선언을 했다.
지난주 목요일, 6교시 수업을 듣던 중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속이 미친 듯이 울렁거렸다. 어떤 전조 증상도 없었으니 더 당황스러웠다. 비틀거리며 겨우 고시반으로 돌아왔다. 호흡은 한동안 이상한 엇박자를 탔다. 이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할까봐 섣불리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의자에 축 늘어져서 몸이 나아지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엎드려 있다가 겨우 집에 돌아갔다. 느닷없이 시작된 어지럼증은 일주일 가까이 이어졌다.
토요일은 중요한 학회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행사를 위해서 아프지 않은 척했다. 남들 앞에서뿐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괜찮은 척했다.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니 다시 피로가 확 몰려왔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난 이 많은 걸 다 감당할 수 없다. 물론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지금과 같은 삶이 한 달 후면 끝나니까 다행이지, 이 짓을 한 3개월만 더 하라고 했으면 난 뭐라도 그만뒀을 것이다. 사실 이 얘기를 듣고 싶었던 건지, 취준을 당분간 쉴까 라고 주위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녔다. 누군가는 조금 천천히 가도 되지 않냐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취준을 쉬면 분명 후회할 거라고 말했다. 난 분명 전자의 답을 원하는 답정너 마인드였는데, 전자의 말을 듣자마자 즉각 반박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후자를 들었을 땐 수긍했다. 결국 내가 나를 힘들게 만드는 하나의 답을 정해놓고 있는 거였다. 그 답은 나를 옭아매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취준생이라는 본연의 신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확실한 느낌을 부여해준다. 그래서 나는 쉼을 또 한 번 유보하기로 했다.
직전 문단까지 아프다고 고래고래 휘갈겨놓고 그치만 쉬지는 않을 거야~ 라고 결론 지으면 그것만큼 고구마가 또 없겠지. 그래서 몇 마디 덧붙여본다. 취준을 내려놓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할 것이다. 최선을 다하되, 내 몸을 희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집에 일찍 귀가해서 충분히 자고, 가족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밥도 잘 챙겨먹고,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마련할 것이다.
어제 오랜만에 집에 일찍 갔다. 6교시 끝나고 바로 갔으니 7시 좀 넘어 집에 도착했을 거다. 집밥 먹고, 동생이랑 음악 틀어놓고 청소하고 그 담엔 나란히 앉아서 과제했다. 동생이 러시아 문학의 이해인가 뭔가 하는 교양수업을 듣는데 꿀교양이라 신청했더니만 너무 재미없어서 고통스러워했다. 난 그런 동생을 킬킬대며 놀려줬다. 자정까지 마감인 레포트를 1시간 정도 걸려 다 썼다. 레포트 내고 나선 학회 자료조사 좀 했다. 동생은 잠온다고 먼저 잠들었다. 이렇게까지 소상하게 적어보는 평범하디 평범한 어제의 저녁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했다. 보통 내가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밤11시반, 늦으면 12시 정도. 가족들이 다 자고 있을 시간이다. 그래서 작정하고 일찍 귀가해야만 가족과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고, 난 동생과 함께 충분히 충전했다.
오아시스는 발견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다. 별거 아니다. 집 일찍 가기. 밥 먹고 산책 한 바퀴 하기. 불필요한 일정은 가능한 선에서 미루거나 취소하기. 내가 선택하고 만들기 나름이다.
오늘은 11월 22일. 학기가 정확히 한 달 남았다. 한 달 동안 여태 내가 가져온 4트랙(취준 - 학교수업 - 학회 - 고시반)을 병행하되, 나에게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몸을 혹사시킬 만한 부담은 과감하게 컷해야지.
한 달 후에 돌아봤을 때, 숨가쁘게 달려온 기억만 남지 않고 웃으며 즐겼던 순간들이 진하게 남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