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의 마음으로 살기
수험생이 올림픽을 보며 배운 것들
스포츠 자체에 큰 흥미가 없던 터라 도쿄올림픽이 시작한 줄도 몰랐다. 학교 커뮤니티 메인에 올림픽 글이 도배된 것을 보고 알게 됐다. 심지어 내가 고3이던 해 리우올림픽이 있었다는데, 그땐 올림픽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갔다. 올림픽 시즌 때마다 내가 수험생 신분이구나. 다음 올림픽 땐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있겠지? 제발
그래도 외교관이 되겠다는 애가 이런 스포츠외교(?)에 관심가져야지 라는 주변의 장난어린 질타 +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관심은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올림픽 소식에 늘 귀기울이고 있었다. 어쩌다가 여자 배구 경기를 두어번 정도 봤다. 그중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6일 저녁에 있었던 여자배구 준결승전이다. 나는 치킨 뜯으면서 아주 평온하게 끝까지 봤는데, 같이 보던 엄마는 답답했는지 채널 돌릴까? 하고 몇번이고 물어보셨다 ㅋㅋ.
이기거나 지거나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우리 선수들의 표정, 자세, 분위기에서 묻어나오는 그들의 치열함에 주목하여 봤다. 엄청난 노력을 해서 저자리에 있게 된 분들을 보면서 수험생인 내가 뭘 배울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도 올림픽 관전자로서 가장 노잼인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길가의 개미한테서도 교훈을 찾는 내 성격상 올림픽은 수험생인 내게 큰 자극제이자 교본이 되었다. 아마 올림픽을 본 모든 수험생들은 어느 정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우선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은 국가대표들이다. 사실 내가 되고 싶어하는 외교관은 외교정치 분야에서 "찐"국가대표라고 할 수 있다. 혹 내가 외교부가 아닌 다른 기업에서 해외보직을 맡는다고 하면, 적어도 나의 파트너에게 있어 나는 한국의 대표격이다. '국가대표'라는 말의 의미를 확장하면 누구나 국가대표가 될 수 있고, 특히 해외 근무를 희망하는 나에게 더더욱 해당되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올림픽 선수들에 더욱 이입할 수 있었다.
여자배구 준결승전은 한국 0승, 브라질 3승으로 마무리됐다. 비록 한 세트도 이기지 못했고 매 세트마다 점수 차도 큰 편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진 경기가 나에겐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온 국민의 기대를 받는 상황이니 이기고 있어도 부담스러운데, 심지어 지고 있으니 그 부담감이 얼마나 더 심했겠는가. 3세트 후반부에 브라질이 24점, 그러니까 우승까지 단 1점을 남겨놓은 상황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1점이라도 득점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승패와 상관없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으로도 여자배구팀은 박수받기에 충분하다. 비교가 적절할진 모르겠지만 올해 1차시험장에서의 내가 생각났다. 화장실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첫 과목에서 10문제만 풀고 남은 30문제를 모두 찍고 퇴실했다. 그때 스스로를 비관하며 하염없이 울면서 그냥 나머지 과목은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합격은 이미 물건너갔으니까. 그럼에도 불합격이 확실시된 상황에서도 말도 안되는 역전을 노리며 2, 3교시를 꾸역꾸역 본 결과, 컨디션이 최악이었던 것에 비해 점수가 괜찮았다. 끝까지 치고 나온 것만큼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비록 역전에는 실패했지만, 내가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는 끈기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값진 경험이었다.
1점 득점/실점할 때마다 모든 선수들이 서로를 에워싸고 격려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동기부여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저런 거구나 싶었다. 잘했을 땐 "잘했다", 못했을 땐 "괜찮다 잘하자"로 즉각적인 셀프피드백을 주는 것은 다음 플레이에서 더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경기에서 이와 같은 격려가 빠지고 감정없는 경기가 이루어졌다면 선수들의 경기력은 분명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한 문제, 한 세트 풀 때마다 진솔하게 스스로를 북돋아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과도한 칭찬이나 비난은 지양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나 자신을 푸쉬하는 말을 해 주기.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림픽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을 거듭했을까 생각했다. 지루하고 루틴한 훈련을 날마다 반복했을 것이다. 결국 반복과 체화만이 답인데 이는 스포츠와 수험이 공유하는 부분이다. 누구나 알지만 실천이 잘 안될 뿐인데, 국가대표의 위치까지 간 선수들은 이 룰을 철저하게 지켰겠지. 수험생활을 시작한 지 꽤 됐음에도 아직도 반복적인 루틴을 소화하는 데 버거워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아마 선수들은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목표와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성실하게 훈련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일개 학생이지만 이미 국가대표가 되었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 문득 기억을 스치는 국립외교원 표어, "Para nationis futura(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라)". 내 삶의 문제, 내 이익의 문제를 넘어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부터 그런 마음가짐으로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올림픽은 내년 3월에 있을 예정이다. 그때까지 국가대표의 마음으로 하루하루 성실하게 준비해야지. 설령 결과가 안 좋다 해도 후회 없이 다음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