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의 패기 (1)
어릴 적에는 주변 어른들과 형들이 하는 나이 이야기에 공감이 되지 않았다. "어휴, 한 살 또 먹었어."라며 넋두리를 하는 이야기를..
하지만, 나도 어느덧 그 넋두리를 하는 형들의 나이가 되고 나니, "나는 저런 이야기 안 해야지." 했던 다짐과는 다르게,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쉽게 생각하면 단순히 나의 숫자가 바뀐다는 것이고, 더 깊게 생각하자면 나의 기대 수명은 1년 단축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되니, 약 9년 전, 아무 연고도 없던 영국으로 유학을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변변치 않은 지방대학에 다니며, 하루하루 무념무상으로 살아가던 그 당시의 나는, 일생일대의 도전을 하기로 다짐하였다. 평소에 영어를 좋아하고, 관심이 있었지만 외국에 가서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만 하였던 일이었고,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당시, 많은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했었던 질문이 있었다.
"넌 농구도 계속했었고, 좋아하면서 왜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 가는 거야?"
그때마다, 나는 아 미국도 좋은데, 영국영어 멋있잖아!라고 대답했다.
실제로는 저 이유가 아니었는데..
난 흔히 내 주변 또래에 있는 KOBE KID였다. 그래서 마음속으론 미국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미국은 총기소지가 허용된 국가가 아닌가.. 그래서 내심 속으로 겁을 지레 먹었던 것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어느 곳이든 위험 한 곳에 가면 위험하고, 안전하게 행동하면 안전한 사실인데 말이지..
어떠한 이유로든, 영국으로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고 준비를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영국에서 학생비자받는 것이 쉽지 않았고, 준비하는 서류도 많았다. 사실상 그때, 제법 힘들었었다. 매번 "아... 귀찮은데 그냥 가지 말까?", "가도 뭐 되겠나?" 싶었다. 그때마다, 가기 전에 세웠던 목표를 다시금 보았고, 그나마 나약한 나의 마음을 잡아주는 지푸라기 같았다.
그 당시 내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1. 영국은 축구 본고장이며, 프리미어리그가 펼쳐진다. 이왕 이렇게 가게 된 거, 프리미어리그나 실컷 보고 오자!
2. 스완지시티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기성용 선수랑 사진 찍고, 사인이나 받아보자!
3. 방학 기간 중 주변 국가 여행을 해보자, 단, 배낭여행객처럼 유명한 곳 가서 사진만 찍는 건 절대 싫다!
4. 영국에서 영어 시험 치고, 점수취득을 하자!
4가지의 큰 목표를 가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3가지는 노는 목표였던 거 같다. 정신을 못 차렸던 게 분명하다.
나만의 부푼 꿈을 가지고, 영국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설렘이 10이었다면, 두려움은 90이었다. 나의 이러한 초조한 마음을 알았을까?
승무원분 께서 음료수를 나눠주시고 있었고, 내 차례가 다가올 때쯤 뭘 마실까 고민했다. 그 당시 내 옆자리 아저씨는 해외 출장 자주 가셨는지, 승무원분께 젠틀하게 와인 또는 맥주 달라고 하시길래, 나도 저도 맥주 주세요라고 했다.
맥주 한잔 마시고 나니, 두려움이고 설렘이고 없어졌다. 그냥 장시간 비행 자체로 피곤함이 몰려왔다.
비행기 안에 있는 영화 몇 편 보고, 밥 먹고, 맥주 또 마시고 했던 기억 밖에 나지 않는다. 영국 하늘에 다 와갈 때쯤, 이미그레이션 카드 작성하라고 나눠주는데, 뭐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몰랐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겁낼 필요는 없다, 나에겐 옆자리 아저씨가 있으니까..
아저씨가 슬쩍 곁눈질로 보고, 작성을 완료한 후, 기분 좋게 앉아있었다. 다 작성을 해서 기분이 좋은 건지, 긴 비행이 끝나서 좋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무척 들떠있었던 거 같다.
공항에 도착을 하여서, 입국심사를 하러 갔다. 참고로, 영국 히드로 공항에 입국심사가 엄청나게 힘들다고 가기 전부터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앞에 사람들이 차례로 퇴짜를 맞고 내 차례가 되었고, 영국 아저씨가 날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와, 영국은 처음이지..?"
입국심사를 약 15분 정도 했는데, 그 15분이 마치 나에게는 1시간 이상의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다행히도, 준비해 갔던 서류를 잘 제출하여 통과하고 짐을 찾은 후, 픽업 택시를 탔다. 내가 공부하기로 한 도시는, 영국의 남부지방에 있는 'Bristol'이라는 도시였다. 런던에서 대략 2시간 남짓 걸렸던 거 같다, 버스로..
택시는 브리스톨 센터에 도착을 했다. 도착을 하고, 이제 지내기로 한 집으로 가기 위해 가던 도중, 영국에 처음 온 사람의 모습과 같이, 이뻐 보이는 곳에서 사진도 찍었다. 사진 찍고 나니, 꽤나 긴 시간 비행 탓에 몸이 힘들었고,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다는 감정이 지배적이었다.
내가 지낼 곳은 어딜까? 그 집에는 누가 있을까? 하는 기대를 조금 부푼 채로 다시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