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

by 배종영

꽃이나 보자고 심었던 초록은

누렇게 황하 빛으로 시들고

대신, 그 자리에 객이 주인인 듯

쪽 한 포기 자잘한 꽃 피운다.

간혹 단명한 부모를 대신하는 억척의 중년을 만날 때

그의 얼굴에서 생전의 아버지가 보이고

또 어머니가 보이기도 하는데

나는 그 누구도,

누구의 단명도 대리하지 않아

이제 이 세상에 닮은 얼굴이라곤 없다

대리한다는 것은 그의 전부를 입는 일

때로는 혼魂까지 받아들이는 빙의,

분홍의 마디풀 쪽,

우려내면 하늘빛 우러나온다는데

여차하면 빈 화분이었을 자리에서

늦여름과 초가을을 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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