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by 배종영

늦가을 정오의 마당엔 겨를이 참 많다.

없다, 라는 의미로 바쁜 겨를. 집안의 먼 촌수 중에는 일생을 겨를로

산 사람도 있다. 늘 시작만 분주했고 마무리가 없던, 겨를 많았던 사

람. 말하자면 그는 겨를이 너무 많아 통 겨를이 없었다.

잠깐 한눈을 팔다 돌아보면 그새

햇살은 바지랑대를 돌아가 버리고 없다

자두나무 그늘은 햇살 간지럼에

수시로 깔깔댄다.

빨랫줄에 앉은 잠자리는

저만치에다 제 그림자를 두고

아이의 손가락사이로, 그 겨를도 날아가 버린다.

천지가 온통

겨를로 바쁘다.

도무지 지체할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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