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부채

by 배종영

삼월,

이맘때 바람은 늘

산필(散筆)풍이다

첫 붓을 잡은 어린 학동처럼

필법(筆法) 밖으로만 좌충우돌한다.

매서운 음지의 바람은 그러다가

느닷없이 절엽(切葉)식으로 날카롭게 휜다.

그건 바람의 의지가 아니라

농염(濃艶)의 눈썰미다

누군가 그려 놓고 간

야생부채에서 보라색 바람이 핀다.

삼월 중순 봄볕은

짱짱한 댓살같이 쫙 펼쳐져 있다

엷게 저민 댓살 위로 한 송이 난이 휜다.

성급히 더워진 양지가

아직은 선선한 음지에게 청한

난초 부채다

지난여름 먹빛 구름을 기억했다가

또는 후덥지근한 날 밤의

마른번개의 필법을 기억해 두었다가

긴 겨울잠 자고 난 봄,

문득 무릎을 친 듯 펼친 줄기마다

어느 맑은 날 밤

유난한 별 몇 송이 모셨다

부채의 계절,

한 계절이 펼쳐졌다가 다시 접힌다.

한 포기 난은 이제 북방 쪽으로

묵직한 괴석 하나를 키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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