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별과 같이
가수 현철이 이승과 작별을 고했다는 부고가 휴대폰 작은 화면에 떠올랐다. 오랜 무명생활에도 기죽지 않고 묵묵히 가던 길을 가던 사람이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한다. 장례는 대한민국 가수장으로 치러진다고도 한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꼭꼭 싸매고 있던 마음의 상처를 풀게 만든다. 털털하고 구수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안도의 쉼을 준다. 잠시 멈추는 여유도 주고 하늘을 쳐다보며 희망을 품게도 한다. “엉엉” 울음을 토해내며 체증 같은 설움을 쪼개고 쪼개 잘게 부수기도 한다. 힘겹게 언덕을 오를 때 그의 장기인 꺾기창법은 어려움을 이기는 에너지가 된다. 그렇게 우리 곁에서 옆집아저씨 같던 그를 보내는 마음이 가을바람처럼 스산하다.
언제부터 인지 내 안에 들어와 흥얼거리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니던 회사 회식자리에서 푸른 꿈을 노래한 것 같은데 애조 띤 음색은 앞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되었다. 하루일과를 마치면 시장 안에 있는 순댓국집으로 향한다. 풍채와 인심이 잘 어울리는 주인할머니의 모둠 한 접시는 언제나 푸짐하다. 두툼 두툼 썬 당면순대에 오소리감투, 내장과 허파와 간이 올라간 접시는 어깨를 으쓱하고 앉아있다. 맥주잔에 소주를 부어 빈속에 털어 넣으면 칼날이 되어 찌릿찌릿 감전을 일으키며 내려간다. 홍시의 향취가 코에 들러붙으면 저절로 “캬” 하고 숨을 내뱉는다. 그렇게 몇 잔으로 흥이 돋으면 스탠드바로 불리는 술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넥타이를 이마에 두르고 손수건을 펼쳐 한바탕 흐드러지게 춤을 추고 나면 전국노래자랑에서 우수상을 받았다는 사장이 무대에 올라 마치 현철이 현현한 듯 노래를 불렀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부르면 된장찌개를 가스불에서 올렸다 내렸다하는 모습이 떠올라 자리를 파한다. 걱정과 한숨이 합쳐져 째려보는 아내의 눈빛을 술김으로 가득한 호기로 물리치고 깔아 놓은 이불에 고꾸라지듯 쓰러진다. 옷을 벗기려 낑낑대는 아내의 모습이 봄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린다.
파산과 퇴직이라는 암초에 걸려 얻어터진 모습으로 도망치듯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에도 길을 잃은 구름처럼 현철의 노래가 옹알이처럼 나왔다. 가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가 뒤통수에 왱왱거릴 때도 부평초처럼 떠도는 미운 내가 슬금 슬금 콧속에서 기어 나왔다. 요금을 내지 못해 끊겨버린 무서운 전기 앞에서 밤을 새우며 싹싹 빌 때도 떠도는 유랑별처럼 이 노래가 어두운 방안에 함께하였다. 퍼렇게 녹슨 일전짜리 동전까지 긁어모아 라면 한 봉지를 울먹이며 먹을 때도 한송이 구름꽃을 피우기 위함이라고 자위하였다. 한겨울 여름 이불 하나에 몸을 감싸면 시퍼렇게 날이 선 검같은 냉기가 살을 파고들어 바들바들 떨 때도 발 박자를 맞추며 토닥여 주었다. 네 식구 목숨줄이 달린 불타는 식당을 동동거리며 지켜볼 때도 찬란한 젊은 꿈이 불길을 잡아주었다. 두 번째 파산의 뇌우가 칠 때에는 빛나는 별로 치환하는 신묘한 노래, “내 마음 별과 같이”이다.
수요일마다 열리는 노래교실에서는 신청곡을 받는다. 난 주저 없이 “내 마음 별과 같이를 신청하였다. 노래강사가 특별히 현철을 추모하며 신청하라고 하니 너도나도 신청이 쏟아진다. “봉선화 연정”부터 “아미새” “사랑의 이름표” “사랑은 나비인가 봐”등 여기저기에서 손을 든다. 평생을 노래 부르며 슬픔과 아픔을 보듬고 달래주던 그를 보내는 마음들이 떼창으로 강당 천장을 뚫을 듯 우렁차다.
이제 한송이 구름꽃이 된 그는 산너울에 두둥실 떠서 홀로 긴 여행을 떠났다. 추적이며 내리던 비는 장대 같은 빗줄기로 변하여 아스팔트에 기름이 튀듯 요란하다. 한참을 내리던 비가 멈추면 방장산 중턱에 비안개가 피어오른다. 가물가물 멀어지는 환한 미소의 그는 저 하늘 어디쯤에 별이 되어 반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