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길고 긴 겨울바람에 하얗게 세어버려 흰 머리를 가지마다 매달고 있는 벚나무. 무슨 설움에 송이송이 울음을 토해낼까? 새벽길은 늘 외롭다. 이따금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가는 고라니가 조반을 다 비우지 못한 원망이 다다 닥 뛰어가며 화풀이를 하는가 보다. 공설운동장을 오른쪽에 두고 걷다 보면 수탉의 홰치는 소리가 호기롭다. 이른 산보객에 새벽잠을 빼앗긴 동네 개들이 짜증이 났는지 울울하며 짖어댄다. 꽃샘추위에 멈칫 놀랐던 진달래, 목련, 개나리가 봄비를 새신랑처럼 반기며 마술사처럼 오방색을 뽑아내고 있다. 한숨 돌리며 가져간 옥수수 수염차로 목을 적시고, 걷다 보면 벚꽃 터널로 접어든다.
지난주에 있었던 고창 벚꽃축제에 미쳐 못 피운 벚나무가 얼굴을 맞대고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다. “좋아해 사랑해 ”란 글자로 조형되어 길 양쪽에 누워있고 보랏빛 색등이 하늘을 보며 비추이는데, 하얀 꽃잎이 색조화장을 마친 듯 산뜻하다. 외정공원을 왼편에 두고 되짚어 가파른 길을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탁~ 탁~ 등산 스틱 소리가 게으른 새벽의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나무 뒤에 숨어 노려보는 어둠이 미소사 입구를 안간힘을 다해 막고 있다. 멀찍이 차 한 대가 서있는데 가끔 이른 아침에 보는 풍경이라 대수롭지 않게 차를 비껴 걷는데 왼편 전신주에 인형이 매달린 것처럼 보이는 물체가 실루엣처럼 보였다. 옆에는 의자가 놓여있고 다리 하나는 그 위에 걸쳐 있는 게 순간적으로 어떤 녀석이 고약한 장난을 하였는가 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걸었다. 전신주에 인형을 매단 모습에 기분이 헝클어졌다. 사진이라도 찍어 신고를 해야 하나 하다가 장갑을 벗는 것이 귀찮아 자리를 떴다. 늘 하던 대로 면역 산책로를 걸으며 일찍 산보를 마친 노부부를 배웅하고 오던 길을 되짚어가는데 경광 등을 켠 119 구급차 세대가 올라오고 육중한 구조차량이 헐떡이며 그 뒤를 따른다. 무슨 일인가 궁금했는데 구급차 들어간 방향에서 나오는 아주머니가 부르르 떨며 입을 뗐다. 사람이 죽었다며 아저씨 두 사람이 길을 막아 뒤돌아 온 단다. 가슴에 손을 얹고 어떡하냐며 발을 구른다. 아니 그러면 내가 좀 전에 본 것이 인형이 아니고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니 오싹 소름이 돋았다. 가끔씩 만나는 산책 동무인 아주머니도 더는 가지 말라며 길을 막는다. 아주머니는 산책 길에 이상하게 여겨 다가 갔단다. 아침이 부옇게 올라오는 중이라 사물을 식별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시간대여서 가까이 가서 보았단다. “사람이었고요 흔들어보니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니었어요.” 곧바로119에 신고를 하였더니 내려서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서 그럴 상태가 아니라고 답하였다. 뒤따라오던 산보객도 혼비백산하여 똑같이 신고하였다. 신고자께서는 그곳에 있으라 하여 대기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우리에게 다가와 신고 당시 상태를 묻고 나 또한 본 대로 말해주었다. 연락처를 남기고 갔던 길을 돌아오는데 다리가 풀렸다. 왜 아니랴 어떤 녀석의 고약한 장난으로 여겼던 것이 인생을 마감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것이었다. 스치며 지나가던 경찰이 통화하면서 “몇 동 몇 호?”하는데 가슴이 덜컹하였다. 우리 동네 아닌가 서둘러 내려오는데 경찰차 하나가 경비실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게 보였다. 분명 타운식구 하나가 이별을 고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마지못해 전화를 받는 듯한 본부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라고 일렀다.
집으로 들어오는데 맥이 탁 풀렸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들어오는 남편을 보고 아내가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산책 중에 보고들은 거를 설명하는데, 싱싱하게 올라오는 아침햇살이 창문을 두드린다.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예순 아홉 무엇이 그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새벽이슬 내린 그곳으로 이끌었는지 생각하니 설움이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황혼의 언덕에서 멋진 풍광을 내려다보며 흡족했을 보금자리였을 텐데 그렇게 둥지를 튼 지 얼마 안 된 그가 전신주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의자를 차에 싣고 가던 길은 또 얼마나 멀었을까? 생각이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처럼 떠다니는데 며칠 전 세차게 불던 바람에 떨어진 목련 꽃잎이 저 멀리서 뒹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내일 아침 만개한 벚꽃 몇 가지를 꺾어 그가 깄던 길섶에 어둠을 밀쳐내고 놓아야겠다. 새벽이 외로웠을 그에게 장사익이 부른 “봄날은 간다” 노래를 애도하며 불러 보련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고 청 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을 연분홍 꽃잎이 휘날리는 봄날에 떠난 그를 배웅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