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37

올림픽 블러바드 1

by 시애틀타쟌


신의 한 수를 배우겠다고 달려온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그로서리(식료품) 하는 안수집사,


덩치 큰 교회에 가냘픈 심방 전도사,

티베트 선교가 꿈이란 화가도 있었다.

뒷머리에 허연 페인트를 묻히고 오는 사람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다는 늙은 새댁,


커다란 눈망울을 데굴데굴 굴리는 이민 초보자,

땅끝 어디라도 가리라 선교 지망생,

얼굴이 시뻘건 철공소 사장,

개량한복만 입는 이불가게 사장,


손톱 밑에 기름때가 새카맣게 낀 자동차 정비공,

깡통 밴에 그로서리 물건을 싣고 가게에 납품하는 사람,

줄자를 허리춤에 달고 오는 건축하는 사람,

향수 같은 기름냄새를 풍기는 주유소 직원,


나 같은 마켓 직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그런지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 장작불처럼 이글거렸다.

몇몇은 성직자란 타이틀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이도 있었고,


늙으막에 고상한 취미로 여기는 이도 있었다.

중남미 가난한 나라로 원주민 선교의 사명을 가진이도 있었다.

제각각 다양한 이유로 형설지공 꿈꾸며 만학의 장에 뛰어들었다.

열정은 대단해서 간혹 지각은 해도 결석은 없었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당시엔 올림픽 블러바드를 중심으로

남쪽에서 봤을 때 오른쪽에 버몬트 에브뉴

왼쪽으로는 크렌샤워 블러바드로

아래는 피코 블러바드 위로는 윌셔 블러바드를 두고


코리아 타운이 도장 찍히듯 박혀있었다.

일주일에 네 번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은 야간

토요일은 아침부터 샅바를 움켜쥔 씨름선수처럼 비지땀을 흘렸다.

학벌도 각각이요 태생도 각각이라


누구는 재빠르게 이해하고

누구는 황소처럼 눈만 껌벅껌벅

젊은이와 늙은이를 모아놓으니

질문을 한번 하면 강의 시간보다 길 때도 있었다.


박성근 목사는 허허 웃으며 다 받아주고

황땡땡 목사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젊은 여교수는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그렇게 한바탕 왁자하게 떠들다 보면 밖은 어느새 칠흑으로 변하고


밤하늘의 별들은 눈가에 어린 이슬처럼 촉촉하게 빛을 내어

한참이나 가야 하는 하교 길을 안내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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