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 군락에 둘러 쌓인 산골마을엔 참나무 꽃가루가 비닐하우스를 덮고 하우스 안으로 들어와 포도 잎에도 가루칠을 했다. 별 반갑지 않은 노란 가루는 일하는 손에 옷자락에 번져 밉상이었다. 자연은 공평하게도 밉상에게 예쁜비를 처방했다. 그 덱에 꽃가루는 길가 웅덩이에 모여들어 노란 물감을 풀어 놓았다.
민우는 며칠 전에 사 두었던 람막이를 걸치고 아빠 트럭을 탔다. 도식은 농협 앞에 있는 초등학교에 아들을 등교시키고 농협 앞 그 다방에 출근했다. 그시간이면 항상 지각인 셈이다. 농협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그 다방 단골 무리에 끼었다. 싸한 분위기에 커피 뜨거운 줄 몰랐다. 왜냐고 옆 사람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뭐야?”
“한영인이 당했다 카네”
“우짜다가?”
“ 몰라 짜아식 일이 복잡하게 됐어.”
“포도나무도 못 건지겠대?”
“나무는 괜찮은가 봐. 순 잘라 내고 지금이라도 순이 나오면 다행이고 아니면 나무 다시 심아야지 뭐 뾰족한 수 있나.”
기계 잘 만지는 정영갑이 포도 하우스를 삶았다는 말은 쉬쉬해도 쉬쉬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온도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자동시설이 되어있어도 하우스에 온도가 올라갈 때쯤이면 순찰차가 도로를 순찰하듯이 이 밭 저 밭 확인하고 밭에 설치된 모니터로 혹은 폰으로 하우스 개폐 상태를 철저히 확인했다.
그럼에도 며칠 상간으로 일어난 일에 사람들은 뒤통수를 얻어맞기라도 한 듯 멍했다. 이번에는 어이없이 당했다. 도식은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영인이었기에 더 안타까웠다.
8년 전 영인은 이곳으로 혼자 내려왔다. 마침 빈집이 있어 혼자 생활하며 남의 일도 하고 남의 밭도 빌려 농사지었다. 아이들이 대학 졸업 마칠 때까지 아내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주말에만 시골을 다녀갔다. 면사무소에서 나오는 귀촌 친화자금을 받아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식사도 함께 했었다. 영인은 서울 사람답게 삭삭 하고 예의 발라 주민들의 신임을 얻었다. 농사가 힘에 부친 어르신들이 서로 밭을 빌려주었다. 영인은 처음엔 노지 포도밭을 얻었고 그다음엔 대형 포도 하우스도 얻게 되었다.
4 년 후엔 아내도 내려와 건실한 마을 주민의 면모를 갖추었다. 동민 회의를 거쳐 새마을 지도자까지 맡게 되었다. 새마을 협회에서도 몸 사리지 않고 봉사를 해 총무를 맡았다. 총무도 어찌나 야무지게 보던지 급기야는 부회장까지 꿰어 찼다. 서울 사람이어서 그런지 말씨부터 마음 씀씀이까지 남달라 어디에서나 적을 두지 않았다. 마을회관에서 행사가 있을 때에는 지도자의 직무를 다함은 물론이고 여자들이 힘들어하는 일을 선뜻 도와주기도 했다.
겨울에도 일거리가 있는 한 남의 일을 다녀 살림에 보탰다. 이런 영인이 귀촌 8년 차가 되니 몸이 한계에 왔는지 2월 중순 어느 날 어깨에 힘줄이 터졌다. 영인의 어깨도 주인을 잘못 만나 욕 본거지. 계절을 모르고 일을 하니 무슨 수로 배겨 냈겠는가.
영인은 꼼짝없이 수술을 하게 되었다. 멀지 않은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오롯이 어깨를 위하여 휴식을 취했다. 실로 오래간만에 미안했던 어깨를 편안하게 뉘었다. 좋은 일로 오지 못해서 미안은 했지만 두 다리와 한쪽 팔은 멀쩡 했기에 며칠 동안은 영인 자신과 어깨만을 위한 시간이 되었다.
퇴원을 하고는 밭에 다니면서 서서히 회복했다. 대형 하우스 포도 순도 벌써 넌들넌들 잎이 크고 꽃이 피었다. 별 탈 없이 농사짓는다면 대풍은 못 되어도 밥 먹고는 살겠다 싶었다. 따뜻한 봄빛에 포도순은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포도순도 역시나 비싼 기름을 알아보았다. 입가가 절로 실룩였다.
어깨 검진차 병원 갈 날이 되었다. 같이 일 다니는 형에게 하우스 창을 시간에 맞추어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열어 주기만 하면 영인이 병원 갔다 와서 닫을 것이라고 일러두었다.
영인은 며칠 전부터 해 놓은 부탁을 당일 아침에 한 번 더 부탁하고 병원을 다녀왔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시내고 접어들자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 왔다. 차에 가속이 붙었다. 집에도 안 들리고 곧바로 밭으로 향했다. 포도 하우스 밭 머리에 들어섰다. 하우스 창이 닫혀 있었다. 그 형이 벌써 창을 닫았나 하면서 문을 열었는데 뜨거운 기운이 얼굴에 느껴졌다. 이중문을 열어보니 영인의 싸 한 느낌이 맞아떨어졌다. 컨트롤 박스의 수동 버튼이 ‘닫힘’으로 내려져 있었다. 1초도 지체 않고 버튼을 올렸다. 하우스 천장 열 개가 감겨 올라가고 팽창할 대로 팽창한 뜨거운 공기가 이글이글 빠져나갔다. 영인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무 생각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포도 순 삶은 냄새만 남겨 놓고 하우스 안에는 냉기가 돌았다. 4월 초순의 바깥 날씨는 비닐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사람의 생사를 갈라놓을 수도 있었다. 영인은 머리를 무릎 사이에 처박았다.
울음도 아닌 것이 괴성도 아닌 것이 가슴을 빠져나왔다. 뜨뜻한 액체가 딸려 나왔다. 신은 왜 항상 내편이 아닌지, 왜 항상 머피의 법칙은 비켜 가지 않는지.
농사짓으면 도시보다는 낳겠다 싶었다. 맘먹은 대로는 안 되더라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철저하게 배신당했다. 대형 하우스를 도지 얻어 남보다 잘해 보겠다고 붉은색 포도를 심었다.
붉은색 포도는 알아본 바와는 달리 이점이 없었다. 나무를 심어 첫해는 키우고 두 번째 해는 한 나무에 데 여섯 송이 달고 세 번째 해는 포도를 30%밖에 못 달았다. 그것마저도 때깔이 좋지 않아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도가 좋다 하여도 일단은 소비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다. 네 번째 해인 올해엔 나무도 미안했는지 포도를 제대로 달아 주었는데 이게 뭐란 말인가. 신이 있다면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진지하게 사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신의 장난이라면 너무 심한 거였다. 기름값이며 거름값이며 비료, 농약값은 어디서 건진단 말인가. 해진 마음은 어떻게 건진단 말인가.
영인은 아내에게 좀 늦을 것이라고 전화를 해 주었다. 영인의 아내는 포도 알솎기 하는 시기만 휴가를 쓰고 주중엔 독거노인 말벗 도우미를 다니고 있다. 고생하는 아내에게 최대한 늦게 알리고 싶었다. 어두워진 하우스 안으로 차가운 달빛이 내려왔다. 밤은 살얼음이 얼 것 같이 추었다. 이 추위에 기름 때서 키워놓은 포도 순이 지탱해야 할 철사에 목을 매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나 나나 같은 신세였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전화를 했다.
“형. 아니 어쩌자고 하우스 문을 안 열었냐고요. 몇 번이나 당부하지 않았냐고요”
전화기 속 형은 무슨 말이냐고 펄쩍 뛰었다. 본인은 묘목 심어 달라는 일이 갑자기 들어와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어렵지도 않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버튼 하나 올리면 되는 일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되는 일이었다. 전화기에 대고 큰소리 뻥뻥 치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속 시원하고 싶었다. 더 먹먹했다. 믿은 자신의 잘못인가. '그러니까 왜 그랬냐고요' 영인은 지금 깊은 동굴 속에 혼자 갇힌 듯했다.
저녁 먹고 들어올 것이냐고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좀 늦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은데 포리 한 달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밝아졌다. 사지를 늘어뜨린 포도순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