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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미골 Mar 23. 2023

게임 속으로  

슬기로운 농촌생활


 민우가 6학년이 되고 처음으로 맞는 토요일이다. 봉자는 늦게 일어나 빈둥거리는 아들 민우에게 책 좀 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거기에 몇 마디 더 했더니 사춘기에 접어든 민우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센터에 걸어가겠다고 기분을 표시했다.

 민우는 학교 수업을 마친 오후와 토요일에는 농촌의 작은 지역아동센터에 다니고 있다. 토요일 출석 시간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민우는 매번 열 한시를 맞추어서 간다.

기분이 상해 자전거를 두고 걸어서 가는 민우를  넷째 누나인 미리가 바래다주었다. 같이 걸어가면서 민우의 상한 마음을 풀어 주었다. 봉자 역시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미리의 배려가 고마웠다. 미리는 서울에 직장을 두고 있고 17년 동안 누리던 막내 자리를 민우에게 빼앗겼다. 가족 중 민우와 눈높이를 가장 잘 맞추기도 한다.


  센터를 마친 민우가 놀고 온다고 했다. 센터 갈 때에 미리 편에 천 원짜리 세 개를 보내준 것이 다행이었다.  집에 있으면 유튜브 보고 폰과 닌텐도를 끼고 있는 민우이다. 그런 것보다 적게 마셨으면 하는 음료수와 설탕 범벅인 과자를 사 먹더라도 뛰어노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아들 걱정은 접어두고 봉자는 미리와 화단을 정리했다. 화단에 쌓인 낙엽은 덮어쓴 먼지를 마구 발포했다. 장미의 묵은 가지를 자르자 초록색 상처에서 맑은 피가 흘렀다. 붉은 장미꽃나무의 피는 눈부시도록 투명한 색이다. 이 가뭄에도 피를 끌어올리는 장미가 고마웠다. 켜켜이 쌓인 낙엽 밑에서 이름을 부른 것처럼 올라오는 애기기린초도 대견했다. 탈색된 채 잔뜩 웅크린 송엽국도 자르고 지난가을 은행잎보다 더 오랫동안 노란 편지를 남발한 소국의 흔적도 지웠다. 대충 정리를 했을 뿐인데 어느새 해가 산 능선의 나무 잔가지를 넘고 있었다. 알람을 울리 듯이  붉은색을 지우며 넘어가고 있었다.


 민우가 집으로 돌아와야 할 시간인 것이다. 겨울 보다 한 시간 이상 해가 길어졌으나 여섯 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중간에 전화도 안 받고 지금까지도 연락이 안 되었다. 삼십 분이나 더 애를 태우고 나서야 미리의 전화벨이 울렸다. 민우였다. 친구 두 명과 n지역의 혁신도시 기차역에 있다고 했다. 이웃 마을 친구네로 놀러 갔다가 집 쪽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고 했다. 그런데 버스는 반대쪽으로 가더란 것이었다. 얼마간은 낯익은 거리를 지났고 순환 버스라고 쓰여 있어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혁신도시에 도착해 보니 가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 번 밥 먹으러 왔던 q식당을 지나왔다고 했다. 시가지라지만 이미 어둠이 내린 낮 선 거리는 충분히 불안했을 것이다. 괜찮다고 진정시켰다. 추우니 역사 안에 들어가 있으면 데리러 가겠노라고 말을 하고 미리는 전화를 끊었다.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있었으면서 촌놈들. 중간에 버스기사에게 물어볼 생각도 못하고 에라이 촌놈들'

아이들이 안전이 확인되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봉자와 미리는 지체 없이 사십 분을 달려 아이들을 만났다. 봉자는 며칠 더 타도 되는 차에 기름을 미리 넣어 두었었다. 오늘 이런 일이 생기려고 그랬나. 별스런 생각이 들었다.

 녀석들은 저희에게 남은 돈 이천 원으로 먹을 것을 사고 있었다며 조금 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녁때가 한 참 지났으니 뱃속이 허전도 했을 것이다. 오면서 통화 한 대로 각자 집에는 연락을 했다고 했다. 아이들이 센터에 자전거를 두었다고 하면서 거기에 두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 까지 태워 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두 번 걸음이 안되게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마트에서 간단하게 먹을 것을 사기로 했다. 아이들에게도 좋아하는 것을 사 주었다. 저녁을 먹어 보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빵과 우유로 때운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집으로 오는 내내 아이들은  좋은 기색이었다. 혁신 종점까지 가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니란 것을 알고 내렸을 때에는 돌아올 버스비가 없었다고 했다. 당연히 택시 탈 생각은 꿈도 못 꾸었던 모양이었다.

 봉자와 만나 마음이 편안해진 녀석들은 재잘 대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게임을 현실화 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당돌한 녀석들. '다음엔 어디까지 가 볼래'라고 하는 말이 들려왔다.

 산모퉁이를 돌아 마을 불빛이 보이자 집이 가까워진 준하가 불안한 마음을 보였다. 엄마에게 빨리 오지 않냐는 재촉을 받아서인지 혼나지 않을 민우를 부러워했다. 그러자 해빈이는 미리 연락해서 최악은 면했다고 한다.

 “괜찮을 거야 얘들아 너희들이 다른 곳으로 더 가지 않고 여기에서 우리랑 만났잖니. 엄마, 아빠도 이해하실 거야. 그런데 너희들은 어떤 벌이 최악이야?”

 “폰 압이요. 컴퓨터에 티브이까지 못 보게 하면 더 해요.”

 “그렇구나 이번은 며칠 짜리야”

 “아마도 일주일요.”

 “에게. 겨우 그것밖에. 최소 십일은 넘어야지.”

 봉자의 말에 민우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십 일이 넘는 폰 압수는 아이들에겐 무거운 형벌이다. 민우는 이번 일은 친구들의 실수로 생겼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질세라 서로를 지목했다. 봉자는  다 괜찮으니 이런 실수가 다시없도록 하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용감하게 게임, 유튜브, 컴퓨터 떨쳐 버리고 밖에서 놀다가 생긴 일이고  너희들이 무사하니 그것으로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반성은 해야 한다는 봉자의 말에 아이들은 큰소리로 그러겠다고 했다. 아이 둘을 각자 집에 내려주고 봉자의 가족도 집에 돌아왔다. 농업 작목반 모임에 갔던 봉자의 남편 도식이 어딜 갔다 오냐고 물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민우의 마음은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미리는 미룰 수 없는 민우의 밀린 영어를 봐주었다. 띄엄띄엄 대충대충 공부한 아들은  영어를 어렵게 끝냈다. 봉자는 민우에게 영어 가르칠 생각은 꿈도 못 꾼다.

영락없는 시골 아낙이다.  미리가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밀린 영어를 해야만 했다. 밤 열한 시 ‘수고했어’란 말과 함께 민우는 닌텐도를 들고 누웠다.

 “뭐 하는 거야? 이 시간에”

 “오늘 한 번도 안 했단 말이야.”

 “지금이 몇 시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 거야."

 "왜? 왜 그래야 돼?"

 " 너를 위해서 엄마와 누나가 오늘 예정에 없던 세 시간을 썼잖아. 그 세 시간 동안 엄마가 해야 할 일을 못했다고 해서 지금 이 시간에 하지는 않잖아. 닌텐도는 지금 이 시간에 꼭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알았어 알았다고.”     

 민우의 방문이 쾅 닫혔다. 불이 꺼지는 걸 보고 미리는 폰을 들고 자리에 누우며 두 눈을 찡긋 했다.

 “하이고. 어쩔 것이여. 나도 그럼 낮에 해 놓았던 메모 한 번 더 읽어보고 자야겠다. 폰 굿 나잇.”
  아들보다 더 한 어른아이 둘이다.


 학교는 집에서 멀지 않아 민우는 자전거를 타거나 아빠 도식이 직접 태워 준다. 하루에 다섯 번 다니는 버스를 아이들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버스를 타 볼 일이 없는 아이들이다. 코로나를 피해 오 학년 때에 전학 온 친구의 집에 생일 초대를 받던 날 처음으로 버스를 탔다. 그 친구의 집과 민우의 마을은 자동차로 삼십 분 걸리는 거리이지만 낮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행정담당 구역이 다르다. 그쪽은 시내이고 아이들의 학교가 있는 마을은 농촌이다. 생일 파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타는 일은 아마도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때 성공한 버스 타기가 이번의 모험을 부추겼고 이번 모험은 오래오래 변색되지 않을 6학년 새 학기 기념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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