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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미골 Mar 26. 2023

달래장 콩나물밥

  슬기로운 농촌생활

봉자가 살고  있는  농촌은  포도 주산지이다. 포도  농사는  농한기가  별도로  없다. 사계절  일거리가  다를  뿐이다.

포도 제철수확이 끝나면 포도밭 관리에 들어간다. 포도하우스를 고치거나  토양관리를 한다. 저온 창고에 저장해 둔 포도를 작업해서 공판장으로 나가거나 개인 판매를 한다.  남의 집 일을 해서 용돈을 벌기도 하고 구직광고를 보고 시간제 알바를 하기도 한다.

농사를 지어 웬만큼 수확을 내지 않으면 다음  포도 수확기까지 견디기 힘든 것이 요즘 농촌의 실정이다. 봉자네도 예외는 아니어서 봉자와 도식이 일거리가 있는 대로 번갈아 가며 남의 집 일을 나가곤 한다. 이렇게 투자 없이 몸으로 때워 생기는 벌이는 공 돈인 것 같아 좋았다. 이것도  슬슬 마무리를 하고 농사에 전념할 때이다.



 하우스에 일찍 보일러를 가동 한 사람들은  벌써  포도  순이  손바닥 만해  졌거나  아니면  포도꽃이  피려고  작은  꽃망울을  잔뜩  부풀리고  있을 것이다. 더 빠른 밭에는 포도알이 팥알만 하기도 할 것이다.

계절을 앞서가는 포도나무는  겨울잠을  적게  자서  좀 예민 한 편이다. '이래도  괜찮으려나. 저러면  안 되겠지' 노심초사해야  한다.

 농사를 조금 짓는 봉자네는  아직은  한가한  편이다. 쑥쑥 자라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도식이  섬세하게  포도밭을  살피고  봉자는  오전  오후로  포도밭에  발도장을  찍으면  된다. 그  시간을  제외하고  봉자의  삼월은  다른 일로  바쁘다. 봉자는  몇몇  농촌  단체에  들어  있다. 농촌의  특성을  고려해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삼월에는  행사가  많다. 농촌 단체의 행사는 대부분 지역으로 찾아오는 문화생활이다. 낮에는 회원 대부분이 일을 하므로 수업은 밤으로 잡아 놓았다. 봉자 개인적인 배움은 시내에 있는 문화센터로 직접 나가야 한다. 문화센터에 있는 수업은 낮 때여서 사월부터는 종종 빠져야 될 때도 있다.


여성생활개선회 : em생활용품 만들기 5회

빗내농악 꽹과리 배우기 :10회

캘리그래피 : 3월 셋째 주부터 매주 월요일 8회

문학관 : 매주 월요일, 3월에서 6월까지

컴퓨터 기초 : 매주 수요일,  3월에서 6월까지


이렇게 많은 것 중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

 먹고 놀자는  취지의  모임은  뒷전으로  밀렸다. 계원들의  따가운  눈총이  전화를 뚫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도식에게도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었다. 삼월에 함께 저녁 먹은 날이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다.


오늘은 생활  개선회에서 천연 수면팩과 천연샴푸를 만드는 날이다.  봉자는 다른 날보다 일찍 포도밭에 문안을 나섰다. 아랫마을을 지나 산골 언저리에 있는 손바닥 만한 포도밭이다. 봉자의 집에서 멀리 떠어져 있어서 언제나 찬 밥 신세이다. 이 밭은 하우스이지만 인위적으로 열을 가두지 않은 노지라고 보면 된다.

 손바닥만 한 밭에 주차장까지 만들어 놓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밭에 숨 차 하는 애마를 세웠다.

 이웃밭 농막에 묶여 있는 강아지가 앙칼지게 인사를 했다. 인색한 봉자에게  강아지는 매 번 그러했다. 포도나무는 겨울잠을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 있었다.  일찍 찾아온 봄에 맞추어 햇눈이 똘망똘망했다. 가지치기 한 끝에는 벌써 뚝뚝 물이 떨어졌다. 떨어진 물은 흙을 찔끔찔끔 적셨다. 적은 양이지만 나무에게 자양분이 되길 바랐다. 포도나무에서 물이 많이 흐르는 건 나무가 건강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어른들이 그랬다. 고마웠다. 겨울에 물 두 번 퍼 준 것뿐인데. 봉자는 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나무야 우리 올해도 잘 지내보자. 어떤 사람들은 고로쇠 물을 빼먹고 모르쇠를 한다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야. 네게서 나오는 물은 네가 다 먹도록 하렴. 열매 많이 달아 달라고 억지 부리지 않을 테니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랄 거지? “

봉자는 쓰담쓰담 나무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  보았다. 나무가 씩 웃어 주는 것을.

 


포도나무 밑에는 군데군데 달래가 초록초록 했다. 지난해 어디선가 날아온 달래 씨앗이 싹을 틔웠다. 하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었다.

겨울에 사방 문을 열어 놓은 하우스지만 노지 보다 일찍 싹을 틔우고 커 주었다.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맨손으로 뽑히지 않았다. 갑작스레 호미도 없고 포도나무 가지로 땅을 팠다.

 달래는 좀처럼 뿌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올겨울이 얼마나 추웠는데 쉽게 내어 줄 리가 없었다.  뿌리를 포기하고 뽑히는 만큼만 뽑았다. 무더기 져 있는 달래는 몇 군데만 뽑아도 금방 많아졌다. 차 트렁크에 싫려 있는 재활용 빈 상자를  꺼내어 달래를 담았다. 벼락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포도밭을 나서는데 강아지가 앙칼진 인사를 잊지 않았다. 다음에 올 때는 강아지 간식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가기 전 마을 회관에 들렀다. 회관에서 점심을 종종 해 드시는 할머니들이 생각났다. 마침 할머니 다섯 분이 있었다.  달래를 내놓았다. 귀한 달래를 어디서 이렇게나 캤냐며 좋아했다. 달래 넣어 된장 끓이고 콩나물밥 해 먹어야겠다고 했다. 별 것 아닌데 쇠고기라도 사 드린 것 마냥 좋아하시는 할머니들이 봉자는 더 고마웠다. 

서둘러 회관을 나왔다. 할머니들이 맛있겠다고 하는 콩나물밥을 도식에게 해 주고 싶었다. 냉장고에 있는 콩나물을 꺼내어 되직하게 물을 잡고 냄비를 가스 불 위에 올렸다. 밥이 될 동안 달래를 다듬었다. 한 꺼풀을 벗길 떼마다 나오는 뽀얀 속살이 참 예뻤다.

 


 올봄에 뜬 간장 단지 뚜껑을 열었다. 진하게 발효된 간장은 웬 여인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 여인을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국자를 넣어 지웠다. 하마터면 그 여인은 간장단지에 갇힐 뻔했다.   

 집간장에 쫑쫑 썬 달래와 고춧가루, 볶은 깨, 참기름만 넣어 달래장을 만들었다. 달래무침도 만들었다. 구수한 밥냄새가 풀풀 났다.


이팝꽃보다 더 하얀 쌀밥에 오동통한 콩나물. 김이 피어오르는 콩나물밥 위에 초록초록한 달래장을 넣어 비볐다. 수북이 뜬 밥숟가락 위에 달래무침을 얹었다. 거침없이 입속으로 들어갔다. 보들보들한 달래가 상큼했다, 콩나물은 아삭아삭했고 밥알이 톡톡 터졌다. 

도식은 밥 한술을 더 달라고 했다. 둘은 봄 한 그릇씩을 야무지게 비웠다.



봉자는 도식에게 낮에 먹고 남은 밥을 저녁밥으로 챙겨 먹으라고 일렀다. 아들 데려 오는 시간도 잘 지키라고 일러두고 건강생활센터로 갔다. 여성생활개선회원들이 일찍들 나와 있었다. 지난 시간에 같은 조를 했던 친구 은자가 자리를 맡아 주었다. 마을에서 착하다고 소문난 젊은 결혼이주민 두 명과  같은 조를 이루었다. 젊은 그들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천연 수면팩과 천연 샴푸를 만들었다.

 저녁밥으로는 밥집을 하는 회원이 김밥과 떡볶이를 만들어 왔다. 몸값이 비싼 참외가 담긴 접시는 금세 바닥을 보였다. 봉자와 은자는 참외와 떡볶이만으로도  충분해서 김밥은 젊은 그들에게 주었다. 봉자의  큰딸  또래인 그들은 집에 가져가면 아이들의 간식이 되겠다고 좋아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봉자는 남겨 놓은 달래를 은자에게 주었다. 국수 좋아하는 신랑이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오늘은 봄이 내어 준 달래의 잔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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