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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나 보물찾기 Mar 30. 2022

비엔나: 유명 음악가들이 잠든 중앙묘지

오늘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자

오늘은 비엔나, 아니 오스트리아 전체에 Day light saving, 소위 서머타임이 시작되는 날이다. 아침에 잠에서 깰 때는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다가 오후 한참 지난 후에야 알았다. '아. 내가 한 시간 일찍 일어났구나'. 애플 워치, 핸드폰 시계는 이미 자동으로 바뀌어 있어서 어떻게 확인할까 하다가 폰에 세계시간 앱을 켜서 한국과 시차가 8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어든 걸 확인하고서야 서머타임이 시작됐음을 알아차렸다.


창밖으로 보니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밝고 화사하다. 해가 나는 날이면 다들 집단최면에 걸린 듯이밖에 나가 일광욕을 즐기는 문화에 익숙해져서 인지 나도 참을 수 없는 '주광성'의 욕구를 거스르지 않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매일매일 한 가지씩은 나름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오늘은 음악가들이 모여 긴 잠을 청하고 있는 중앙묘지(Zentral Friedhof)로 걸음을 내딛는다.


중앙묘지는 비엔나 시내에서 약 30분 정도 트램을 타면 갈 수 있다. 구글맵이 가는 길을 친절하게 알려주겠지만 잠깐 가는 방법을 남기자면, 시내 Staat Oper나 Karls Platz 전철역에서 71번 트램을 타거나, 1호선 Stephans platz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서 Simmering역에 내려 11번이나 71번 트램을 타고 네 정거장 가면 된다. 내리는 역은 Tor 2. Tor 2에서 내려 저 멀리 성당을 보면서 걸어가다 보면 왼쪽에 Musiker라고 적힌 입간판과 Gruppe 32A 구역이 적힌 팻말을 만날 수 있다. 여기가 바로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가 평온히 다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평온히 잠들어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곳이다.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는 32A 구역은 맨 앞에 오스트리아 정치가 Aloys Prinz von and zu Liechtenstein 묘비가 있고, 그 뒤에 모차르트 기념비가 위치해있으며, 그 주위를 반원 형태로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 주페의 묘가 둘러져 있다. 참고로 모차르트는 당시 전염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시신을 안치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어딜 가더라도 기념비만 있을 뿐 묘지를 찾아볼 수 없다. 시내에 있는 호프부르크 왕궁 옆 정원에 가도 모차르트 동상과 그 앞에 꽃으로 수놓은 높은 음자리표가 눈에 띄는 기념비를 볼 수 있다.



음악가들 중 베토벤과 슈베르트 사이에는 하나의 일화가 있다. 슈베르트는 살아생전에 베토벤을 그렇게 존경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죽으면 베토벤 옆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을 남겼다. 슈베르트가 임종한 후 그의 바람대로 형 페르디난트과 친구들은 그를 비엔나 벨링크 공동묘지에 있는 베토벤의 바로 옆에 안장해 주었다. 그렇게 결국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사후 세계에서라도 그가 그토록 존경하던 베토벤의 곁에서 영원히 그와 함께 하는 소원을 이루게 된다. 이후 비엔나시가 비엔나에 흩어져 있는 5개의 묘역을 1894년에 중앙 묘지 하나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음악가들의 묘를 한 구역에 모으자고 결정하고, 지금의 중앙묘지로 이장하면서 여전히 슈베르트의 유언을 따라 그를 베토벤 옆에 안장을 한 것 같다.


베토벤의 묘에는 황금색 나비와 하프가 인상적이고, 아마 공원 관리인일 테지만 붉은, 노란색의 꽃들이 묘의 엄숙함과 무거움이 아닌 아니라 마치 공원 같은 밝음을 선사한다. 슈베르트의 묘에는 음악의 신 뮤즈가 월계관을 선사하는 조각이 되어 있다. 브람스의 묘가 특이하다. 뭔가 작품을 창조해 내기 위해 고뇌하는 예술가의 혼이 깃든 것 같은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으로 유명한 요한 슈트라우스 묘에는 예의 그 장난기 한 가득한 얼굴이 새겨진 모습이 눈에 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묘는 시내 슈타트 파크에 있는 금색의 바이올린 켜는 요한 슈트라우스 동상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클래식을 즐겨 듣는 나는 아니지만, 그 한가운데 서서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슈베르트의 '송어' (우리나라에는 숭어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송어가 맞는 표현이라고 한다), 모차르트의 '소야곡',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가사에서 유명한 곳이라),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들으면서 밝은 햇살 아래 잠시 감상에 젖어 본다.


베토벤 무덤과 모짜르트 기념비(위),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 묘(아래)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비엔나에 잠깐 다니러 온 여행객이 아니라 오래 거주했던 사람은 알 법한 네스트로이라는 작가의 묘도 있음을 한번 슬쩍 보고 가도 좋다. 비엔나 U1역 중에서 한인마트가 두 곳이나 있고, 서울식당(난 서울식당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애정한다)이 있는 역이 이 사람의 이름을 딴 Nestroy Platz다.


그리고 어느 예술가의 묘비에서 날개단 천사가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보통 천사라고 하면 그 이미지가 밝음, 즐거움이 연상되는 데, 그 묘비의 천사는 고개를 떨구고 한없이 깊은 슬픔이 젖어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아마도 그 예술가를 잃은 가족, 친구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스페인 세비야에 있는 콜럼버스 묘를 연상시키는 묘도 있다. 어떠한 연유로 죽어서도 땅에 묻히고 싶지 않은 마음의 발로인가.



2년 반 전에 처음으로 비엔나에 왔을 때 중앙 묘지를 다녀간 적이 있다. 그때는 날이 시리도록 좋고, 마치 공원 한가운데를 산책하는 느낌으로 두어 시간 걸은 적이 있다. 그때 길 위에 떨어진 솔방울을 본 적이 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솔방울이겠거니 하면서 지나쳤을 텐데, 그날은 그 솔방울에 이상하게 눈이 갔다. 아마 중앙묘지, 사자들 사이에서 있어서인지 괜한 감상에 젖은 것이 아닌가 싶다.

중앙묘지 어느 길 위에 떨어진 솔방울

그 솔방울이 나에게 특별하게 느꼈던 이유는 '아 이렇게 잠들어 계신 분들은 저 솔방울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데 나는 지금 살아서 볼 수 있구나. 지금 살아서 숨 쉬고 다사로운 햇살 아래 파란 하늘, 흰 구름, 초록 나무들의 조화로운 색감을 눈으로 즐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건강하게 아무런 탈 없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살고 있음에 감사하자. 문득 대학교 다닐 때 민중가요 한 구절이 떠올랐었다.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는 내가 그토록 투쟁하고 싶었던 내일'. 그렇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면서 하루를 의미 있게 살자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돌아나오는 길에 출입구 왼쪽에는 Konditorei OBERLAA Cafe가 있는데, 이 카페는 체인점이다. 비엔나에서는 나름 유명한 까페 체인이니 잠시 쉬어가면서 케잌 한 조각에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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