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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나 보물찾기 Apr 06. 2022

비엔나: ‘비포 선라이즈' 따라가기

Before Sunrise. 영화는 영화일 뿐...

라떼 얘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1995년에 종로에 있던 서울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본 기억이 난다. 그때 여행을 하면서 조우할 수 있는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하루'와 그 하루 동안 배경으로 나오던 도시(그때는 머릿속에 비엔나라는 단어조차도 낯설었다), 그 두 주인공이 고풍스러운 카페에 마주 안자 손전화로 대화하며 속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  등이 또렷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여행이란 그런 걸까. 누구든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경계와 보호 본능을 무장해제하고,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마음을 열게 하는 그 무엇.


그 영화를 본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난 비엔나에 꽤 오랫동안 머물렀고 그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발자취가 머물렀던 자리를 따라잡아 본다.

결론은 절대 하루에 다 돌기는 어렵다. 영화는 영화일 뿐...


1. 비엔나 트램

영화 속에서 줄리 델피는 파리 소르본느 대학생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 할머니를 뵙고 파리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에단 호크는 마드리드 여자 친구를 만나러 마드리드에 갔다가 시큰둥한 여자 친구의 반응 때문에 유레일 패스를 끊어 유럽을 여행 중이고 비엔나에서 하루 머문 후 미국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서 둘의 만남이 시작된다. (자세한 내용은 영화를 보실 것을 추천)


비엔나는 트램(Strassen Bahn)이 주요 대중교통 수단 중 하나이다. 나는 현대식 자동화된 트램보다는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있는 옛날 트램 타는 것을 좋아한다. 모서리도 동글동글하고, 의자는 나무 재질로 된 옛날 하이팩 의자 같은 그 감성이 좋다. 그날 트램을 타고 링 스트라세를 잠깐 돌아봤다. (사진은 집 앞)



2. 암소가 나오는 연극의 배우들과 만난 다리: Zollamtssteg

기차역을 나선 둘은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다리 위에서 인디언이 암소를 찾아다닌다는 내용의 연극에 초대를 받는다.



3. U-Bahn 2호선 Schottentor 역

잠깐 트램이 지나가는 장면에 두 개 기둥이 삐죽 솟은 보티프 성당이 잠깐 보인다. Schottentor 역 트램 정류장이 천장이 뚫린 지하와 지상 두 군데인데, 지하에서 보티프 교회를 바라본 장면이다.

참고로 보티프 성당 옆에는 '꿈의 해석'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공원이 있다. 근처에는 프로이트가 자주 갔었다는 Cafe Landtmann도 있으니 따라잡기 하다가 피곤하면 잠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다.


여담이지만, 영화에서 트램을 타려고 계단을 급하게 뛰어 내려오는 장면이 비엔나 대학본부 건물에서 Schottentor역 지하 트램 승강장으로 내려오는 길인데, 여기서 트램을 타면 링 스트라세로 갈 수가 없다. 영화에서는 거기서 트램을 타면 링 스트라세로 가면서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이 서 있는 광장을 지나간다. 영화는 영화일 뿐...


4. 레코드점 Alt & Neu

레코드 판매점은 2022년 4월 현재 아직 그대로 있다. 음악감상실 안에서의 뭔가 사랑이 싹틀 것 같지만 그 직전의 어색해하는 표정 연기를 멋들어지게 해 낸 두 사람의 풋풋한 애정이 그리우면 가보기를 추천한다.

참고로 영업시간은 월-금 오후 1시부터 6시,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이다.

 


5.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feat.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레코드 가게를 나온 후 둘은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을 걷는다.


개인적으로는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을 좋아한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3번 정도 가면 본전을 뽑을 수 있는 연간회원권을 추천한다. 그중에서도 난 브리겔의 그림들을 좋아하는데, 입구의 천장화, 클림트가 그린 모서리 벽화 등도 볼거리이다.

맞은편 자연사 박물관은 그 옛날 합스부르크 왕가의 경제력을 뽐내듯 정말 많은 수집품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콜로라도에서 가져온 금광석, 그리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에 흥미가 갔던 기억이 있다.


6. 이름을 잃은 사람들의 무덤 (Friedhof der Namenlossen)

영화에서는 다뉴브 강가에서 떠내려온 시신들을 묻은 묘지라고 한다. 비엔나 중앙 묘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보잘것없고 관리도 허술해 보인다. 줄리 델피가 13살 때 왔을 때 엘리자베스라는 친구도 13살이었는데, 10년이 지나 다시 찾는 자기는 23살인데 여전히 엘리자베스는 13살이라고 되뇌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각 무덤에는 일련번호가 적인 동판이 함께 있다. 맨 안쪽 왼쪽부터 1번. 1935년에 그분은 처음으로 이 묘지에 묻혀 깊은 잠을 자고 있다.


참고로 여기를 가려면, 시내 기준으로 3번 지하철 거의 종점까지 가서 76번 버스를 갈아탄 후 종점까지 가서 5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거리가 만만치 않으니 가실 분은 왕복 2시간 정도 잡고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7. 프라터 공원

프라터 공원은 지하철 1호선 Praterstern역에 내리면 갈 수 있다. 야경이 예쁘니 해가 지고 나서 가도 좋을 것 같다. 두 주인공이 처음으로 키스를 한 대관람차가 입구 쪽에 있고, 안쪽으로 롤러코스터, 귀신의 집 등 여느 놀이시설에 있을만한 것은 다 있다. 영화에서 본 특징적인 것은 우리나라 '월미도 디스코 팡팡'이다. 가끔 유튜브가 알고리즘으로 띄워줘서 디스코 팡팡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영화에 떡 하니 보인다. 우리나라 롯데월드 자이로드롭도 있다. 놀이기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가볼만할 것 같다. 참고로 대관람차는 미리 신청하면 그 안에서 식사도 가능하다고 한다. (한 번도 거기서 식사하는 분은 아직 못 봤다.)


혹시나 저녁 시간에 가게 된다면, 그 근처 슈텔체(Stelze) 맛집이 있다. 돼지 정강이 요리이다. 슈바이처 하우스(Schweiser Haus). 동유럽에서는 이 식재료가 나름 유명한가 보다. 독일은 학센, 체코는 꼴레뇨, 오스트리아는 슈텔체, 폴란드는 굴롱카(꿀을 발라서 구움)라고 하는데 요리법만 조금씩 다를 뿐 다 같은 재료를 쓴다.


8. Kleines Cafe

슈테판 성당 근처에 있는 카페 이름대로 작은 카페이다. 안에는 테이블이 몇 개 없는데 그나마 다닥다닥 붙어있을 정도로 좁고 작은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손금 봐주는 여자를 만나는 장면에 나온다. 그 앞에 프란체스코 성당도 시간이 되면 들어가 봐도 좋다.

 


9. 강변의  마리아 성당(Katholische Kirche Maria am Gestade)

두 주인공이 퀘이커 교도의 결혼식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곳이다. 영화 속 교회는 여기가 맞는데, 아마 내부는 다른 교회에서 찍었나 보다. 천장화와 제단이 영화와 실제가 다르다. 문제는 실제 교회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기억이 안 난다는 것.


10. 시인을 만나는 운하 계단

밀크셰이크라는 단어를 주고 시인에게 시를 써달라고 하는 장면. 여기는 Otto Wagner라는 유명한 분리주의파 건축가가 설계한 식당 앞 계단이다. 주변에 코코스(KOKOS) 한식당도 있으니 출출하면 식사를 해도 좋다. 코코스는 개인적으로는 말이 웃기지만 한식당 중에는 가장 한식스럽다. 사장님 부부의 도미 요리와 족발(편육에 가깝다), 꽃살 구이(비주얼이 화려하다) 등을 즐길 수 있다.


11. Cafe Sperl

가장 인상적이어서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던 명장면. 손으로 친구에게 전화 거는 척하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밝히는 장면이다. 그들이 앉았음 직한 테이블 사진을 찍으며 영화 장면을 떠올리면서 입가에 미소를 띄워본다.

 


12. 알베르티나(Albertina) 미술관 2층에서 본 오페라 하우스

여기가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이다. 인스타용 사진을 찍기 위해 난간에 올라앉아 찍는 분들도 많다. 야경으로 오페라하우스를 보는 뷰가 멋지다.

그리고 그 앞에 소시지 가판대가 있는데, 현지인들에게도 맛집인가 보다. 가게 위에 초록색 토끼가 인상적인데, 알베르티나 미술관 안에 알브레히트 뒤러의 토끼 그림이 있어서 상징을 토끼로 했다는 얘기가 있다. 늘 사람들이 줄 서서 소시지 빵이나 그냥 소시지에 겨자소스를 얹어 먹는다. 소시지빵 가격이 5.2유로 정도니 간식 삼아 한번 맛보기를 추천한다.


13. 운하 위 배 식당

이 식당은 지금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배 모양의 식당으로 바뀐 것 같다. 그 배가 있던 자리가 맞다면 그 자리는 이제 비엔나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 가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쓰인다.


14. 야밤에 사랑을 나눈 공원

여기는 찾아본 결과 Auer-Welsbach Park라는 곳이라고 한다. 멀기도 하고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아서 패스.


15. 다시 알베르티나 미술관 2층

새벽은 밝았고 약속한 하루가 끝나간다. 둘은 다시 알베르티나 미술관 2층으로 와 동상 아래서 얘기를 나눈다.


마무리..

간단하게 영화 속 장면과 내가 따라갔던 사진을 비교만 해서 올리려고 했는데, 그것만 해도 글이 너무 길어져 버렸다. 하루를 그렇게 나만의 의미를 찾으며 보내고 싶었기도 하고, 그 기록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싶어서 길지만 하나하나 사진을 올린다.


비슷한 따라가기를 해 보고 싶은 분들은 구글맵에서 위의 지명들을 검색하면 대부분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참고가 되길 바라면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그리고 아직 영화의 여운이 남아 엔딩 크레딧을 봤는데, 끝에 비엔나 영화 펀드를 지원받아 만든 작품이었다. 왠지 비엔나 곳곳을 소개하는 것이 살짝은 PPL 느낌이 나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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