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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나 보물찾기 Dec 25. 2022

오스트리아 엘리베이터의 암호 해독

0층, 지하창고, 펜트하우스의 비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건물을 오르내릴라 치면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처음 겪는 여행객들은 우리와는 다른 층수 계산에 놀란 경험이 다들 한 번씩은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1층이 유럽의 1층이 아님을 인지하는 것은 엘리베이터로 1층에 내렸을 때이다. 유럽 호텔의 1층은 로비를 아래로 내려다봐야 하는 우리로 치면 2층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이미 다 알려진 공지의 일화와 사실이라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다. 다만, 오스트리아나 독일로 여행하는 분들을 위해 독일어 문화권의 엘리베이터 약자를 이해하면 좀 더 여행이 풍성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D 또는 DH의 비밀: Dachgeschoss

비엔나에서 가족들이 일찍 귀국하면서 같이 살던 하우스에서 혼자 사는 아파트로 옮기기 위해 부동산 거래사이트(Willhaben.at)에서 집을 알아보고 있던 때였다. 참고로 빌하벤(willhaben)은 우리나라의 네이버 중고나라, 네이버 부동산, 엔카나 케이카 사이트의 종합판이다. 집을 얻을 때도, 중고 물품을 거래할 때도, 중고차를 알아볼 때도 빌하벤 하나로 다 통한다.


마음에 드는 집을 골랐는데, DH라는 약자와 함께 소개돼 있었다. 그냥 무심코 넘어갈 법도 하지만 ‘호기심 천국’ 같은 성격이 있어서 굳이 집주인에게 이메일로 물었다. DH가 뭐냐고. 그랬더니 꼭대기 층이라는 친절한 답이 돌아왔다. 그 후 아파트로 옮겼더니 어느 엘리베이터든 DH가 있음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꼭대기층이라는 걸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DH는 Dach의 약자인데, 독일어로는 지붕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그 아파트의 지붕 격에 해당하는 집이니 꼭대기층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PH, Pent House와 같다. 참고로 오스트리아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할슈타트의 남쪽 산이 다흐슈타인(Dachstein) 이다. 이름대로라면 지붕돌이니, 아주 높아 잘츠캄머구트 지역을 지붕처럼 덮고 있는 가장 높은 산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0층의 비밀: E, Erdgeschoss

유럽에서는 우리의 1층이 0층이다. 이런 관점은 아기가 태어나면 1살이 되는 문화와 12개월이 지나기 전까지는 0살 몇 개월로 부르는 것과 문화적인 맥락이 비슷해 보인다. 오스트리아에서는 0층을 0으로 표시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E로 표시한다. E의 본래 의미는 Erd이다. Erd는 영어의 Earth와 어원이 같은 것 같다. 우리말로 하자면 땅층, 즉 땅에 붙어 있는 층이란 의미인 것 같다.


이 0층의 문화는 유럽은 공통이지만, 희한한 점은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은 러시아는 우리와 같이 0층은 없었다. 그냥 바로 1층이다. 유럽과 아시아 문화의 중간지대에서 아시아 쪽 문화를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K의 비밀: Kellergeschoss

지하층은 K로 표시한다. Keller의 약자이다. Keller는 켈러라는 단어가 주는 익숙함으로 얼마든지 추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와인이 보편화되면서 와인 냉장고를 의미하는 와인 셀러에서 그 셀러(cellar)가 독일어의 keller이다. 냉장고가 따로 없었던 그 옛날, 와인을 보관하던 창고를 지하에 뒀었다. 서늘한 지하의 냉기로 와인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비엔나 시내의 옛날 아파트(alt wohnung)에는 집을 렌트하면 지하에 와인창고를 쓸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있다. 회사 동료의 초대를 받아 섹션 회식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가 사는 아파트 지하 와인셀러에서 조촐한 파티를 한 적이 있다.


O의 비밀:  Obergeschoss

E와 DH 사이는 보통 1, 2, 3, 4층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특별할 것이 없지만, 새로 지은 아파트들은 층수 옆에 obergeschoss라고 적는 경우가 간간히 있다. 독일어로 ober는 upper, 즉 높은 이라는 의미이고, nieder는 lower, 즉 낮은 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로 치면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 정도 개념 정도의 주 이름이 Nieder Oestereich이고, 인스부르크 쪽으로 가면 Ober Oestereich라고 있다. 아마 지형적으로 비엔나 인근은 오스트리아에서도 낮은 지형이고, 반대로 알프스에 가까운 쪽은 높은 오스트리아라고 칭한 것이 지명의 유래가 아닌가 싶다.


2년 간의 혼자 다닌 여행 경험 덕분에 여행이란 다들 가는 유명 관광지에 가는 것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이렇게 소소한 일상의 의미를 찾아 이해하는 즐거움을 찾는 과정이라는 나름의 철학을 갖게 된 것이 또 다른 여행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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