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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나 보물찾기 Sep 26. 2022

오스트리아판 '입춘대길'을 아시나요?

'20-C+M+B-22' 라고 적힌 집 대문을 눈여겨 찾아보자


어릴 때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집 대문에 한문이라는 것만 알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종이가 대문 양쪽에 붙어 있는 걸 보면서 할머니께 무슨 뜻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입춘대길'. 할머니는 호기심 천국인 손주에게 친절하게도 '봄이 오고 새해가 시작됐으니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란다'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러나 너무 어린 나는 왜 봄이 오면 좋은 일이 생겨야 하는지 등등 여전히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기억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외양만 다르지 그 외양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행태는 어디나 똑같은 것 같다. 비엔나에도 '입춘대길'이 있다. 비단 비엔나만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독일의 문화라고 한다. 여느 집을 지나치다 보면 대문이나 대문 옆 벽 한 켠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는 집을 찾아볼 수 있다. 예전에는 분필 같은 것으로 많이들 적었다고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아닌가. 프린팅 해서 붙여 놓은 집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20-C+M+B-22


이 문구의 상징을 그대로 해석해 보면, 앞에 20은 2000년을, 뒤에 22는 22년을 의미한다. 즉 2022년을 뜻하는 숫자다. 똑같은 의미로 내년이 되면 앞 숫자는 그대로 20이고, 뒤 숫자가 22에서 23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안에 C+M+B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예수가 탄생했을 때 동방에서 하늘의 별을 보고 참배할 베들레헴으로 왔다는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름을 딴 이니셜이다. 이들 세 동방박사의 이름은 카스파(Caspar), 멜콰이어(Melchoir), 발타자르(Balthazar)다.

또 하나는 라틴어 단어인 Christus Mansionem Benedicat의 약자이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가 집을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가운데 '+' 표시들은 십자가를 상징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이 문구의 의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로 그의 은혜와 축복이 일 년 내내 우리 집에 가득하기를 바란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새해를 맞이해 기독교인의 집에 한해 동안 안녕과 축복이 늘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문구이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입춘대길'과 정확하게 의미가 맞닿아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축복과 안녕이 늘 함께하고, 모든 가족이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공통의 염원이다. 그것은 시대를 뛰어넘고 지역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그 본성과 염원을 우리의 삶에서 상징으로 코드화하는 모양만 다를 뿐이지 그 기저에 깔린 마음은 다 똑같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래. 이것이 여행의 맛 중 하나가 아닐까'하면서 또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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