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나라, 선망의 직업 굴뚝 청소부
유럽에서 여행을 하다 보니 나 나름의 여행 준비 루틴이 생겼다.
1. 가장 먼저 네이버 블로그를 찾는다.
2. 가이드 투어를 예약하기 위해 마이리얼트립에 가면 가이드들 마다 자신의 시티투어 코스를 올려놓은 것을 보며 동선을 참고한다.
3. 인스타그램에서 장소별로 인스타그래머들이 올려놓은 사진들을 검색한다.
4. 여행 예능을 본다. 짠내 투어, 배틀 트립, 꽃보다 시리즈(할배, 누나, 청춘)들이다.
5. EBS '세계테마기행'(보통 50분짜리 네 편이라 아주 자세하다),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시청한다.
여행 예능과 여행 교양 프로그램은 글로 정리된 정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정보 소스로 아주 좋다.
비엔나로 가기로 결정하고 나서 이래저래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EBS 여행 다큐 중에 오스트리아 편을 보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성악가 교수가 여행 도슨트가 되어 촬영한 편과 유럽 전문 여행사를 운영하는 여행 칼럼니스트가 촬영한 편이다. 그 두 편 중에는 성악가 교수가 할슈타트 호수 위에서 보트를 타고 슈베르트의 '숭어'를 부르는 장면과 함께 굴뚝 청소부 부녀를 소개하는 장면이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중에서 오늘은 오스트리아 굴뚝 청소부 부녀에 대한 얘기를 해 보고자 한다.
굴뚝 청소부 1편에서 소개했던, 비엔나 시내의 굴뚝 청소부 조각과 실제 굴뚝 청소부 아버지의 모습과 비교해 보자. 그을음이 묻어도 그다지 티 나지 않을 까만색 옷과 끝에 철 브러시가 달린 긴 쇠사슬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영락없이 조각상을 닮아 있다.
굴뚝 청소부가 들고 다니는 철 브러시는 아주 강력하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철사가 마치 솔잎처럼 보인다. 저 철 브러시는 벽을 타고 내려가며 굴뚝 벽의 그을음을 긁어내며 청소한다. 그동안 집 안에서는 그을음이 날려 집 거실 전체가 엉망이 될 것 같지만 그대로 묵은 때를 긁어낼 때의 쾌감은 상상이 간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지금도 굴뚝 청소부 중에서도 특히 여성 청소부는 존경받는 직업으로 인식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반짝반짝 빛나는 여성 굴뚝 청소부 모양의 장신구나 단추는 가격이 아주 비싸다. 이 여행 다큐에서도 나탈리라는 여성 굴뚝 청소부를 소개하고 있는데, 얼굴과 손에 그을음이 한가득이라도 마냥 행복한 표정이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만족감이 그대로 얼굴 표정에 투영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굴뚝 청소부가 선망의 직업이라고 한다. 자격시험도 거쳐야 하고 수입도 많단다. 영상에 소개된 아빠(미카엘)과 딸(나탈리) 가족은 5대에 걸쳐 100년째 굴뚝 청소부 일을 해 왔고, 아빠는 25년 차 마이스터라고 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 마이스터, 즉 장인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는 엄청나게 높다. 마이스터에 대한 자부심은 누구보다 대단하다. 몽블랑 펜에 보면 마이스터 스튁이라는 제품도 있을 정도다.
이 영상을 보면서 노동의 가치, 육체노동의 가치에 대한 존중이라는 키워드를 다시 생각해 봤다. 우리는 과거 양반 문화의 일부로 글 읽고, 공부해서 과거시험을 보는 것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한 전통 때문인지 육체노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가치를 덜 부여해 왔다. 그나마 이제는 모 대기업의 경우 사무직보다는 현장 생산직 임금이 더 높은 사례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서서히 노동의 가치를 더욱 인정하는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 노동의 가치에 대해 대를 물려가며 하나의 직업에 대한 전통을 이어가고, 그 전통을 사회적으로 존중하고 경제적인 보상을 주는 사회 제도를 가진 나라. 그것이 오스트리아를 선진국 반열에 올린 모멘텀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