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1호
엄마가 쓰러졌다.
이 사건이 내 일생에서 돌잔치 다음으로 가장 크고 의미 깊은 사건이다. 나조차 모르게 엄마는 내가 죽을 때까지 건강하고 강한 채로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죽을 때도 옆에 서서 나약한 새끼라면서 놀릴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쓰러졌다.
엄마가 없고, 간병하느라 아빠도 없는 집은 (좋으면서도) 싸늘했다. 그게 싫었다. 엄마가 있을 때는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 엄마가 학생들을 놀리는 소리, 엄마랑 아빠가 이야기하는 소리로 집이 가득했다. 엄마가 없으니까 집에 생기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마냥 행복하게 게임하던 동생은 가끔 제 침대에서 울고 아빠는 학교에서 돌아와 우리들에게 밥을 해주고는 세상 지친 표정으로 엄마를 간병하러 갔다. 그게 정말 정말 싫었다. 우리 가족은 생기 넘치는 집이어야 하는데...
엄마가 병원에 누워있을 때 학원과 학교에 꾸준히 나갔다. 학교와 학원에서도 엄마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엄마 때문에 빨리 하교한다고 하니 걱정하면서 흔쾌히 승낙해 주셨고 학원선생님도 내 숙제를 검사하면서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새삼 엄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에게도, 동생한테도, 아빠한테도 항상 엄마는 좋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가 죽지 않았으면 했다.
사실 처음엔 체감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죽지 않을 거라고 맹목적으로 믿고 있었다. 갑자기 우리 집 문을 벌컥 열고 "다 나았댄다! 65km 뛰어도 되고 4시간 동안 춤춰도 되고 케이크를 마구마구 먹어도 된단다! 난 살아있다!" 하고 능청스럽고 유머스럽게 돌아올 것 같았다.
실제로도 능청스럽고 유머스럽게 돌아왔다. 65km를 못 걷고 4시간 동안 춤추지 못하고 케이크를 마구마구 먹지 못하는 몸으로. 물론 몸 상태가 예전과 같게 돌아왔대도, 엄마는 항상 능청스럽고 유머스러울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너무 슬펐다. 엄마가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물론 엄마도 이해가 된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엄마가 침울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렇다고 너무 밝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면서도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고 내가 수학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금요일마다 엄마가 나를 데려다주게 됐는데 그때마다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았다. 엄마랑 걸을 수 있는 게 너무 좋았다. 이렇게 일상적인 게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방금 글귀는 인터넷 속 많은 사연들에서 많이 보이는 문구이다. 내가 이걸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엄마는 올해 초에 이런 사건을 겪고도 연말의 생일까지 모두를 위해(아니면 자기를 위해) 많은 노력으로 건강하게 유머 있게 우리 앞에 있다. 모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엄마가 자신의 생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대로 100번째 생일까지 가늘고 길게 나랑 동생이랑 아빠랑 같이 살아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