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이 오르고 심박수가 빨라질 일이 곧 벌어질 것이다. 미리 약을 먹었다. 이틀이면 감정은 살짝 식어 예의는 그런대로 갖출 수 있다. 나는 분명 소리를 지르겠지만 이성을 잃고 괴성을 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틀의 시간이 필요했다. 꼭 필요했다.
이틀 전 시부의 제사가 있었다. 저녁 무렵 시가에 도착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시모의 말이 점점 거칠어졌다. 살이 빠지면 안 된다고 내 손을 붙들고 몇 번을 쓰다듬더니 치킨을 먹고 있는 내게 치킨이 그리 맛있냐며 비아냥거렸다. 분명 비아냥이었다. 소파에 놔둔 가족들이 입고 온 외투를 제대로 개어놓지 않았다며 목소리 톤이 올라갔고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하더니 내게 전화를 안 받는다고 타박할 때는 목소리가 꺾이기까지 했다. 급한 기울기를 그리며 올라가는 시모의 분노를 식구들 모두 묵묵히 듣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그곳에서 나왔다. 의도적으로 언어를 칼로 만들어 찌르는 훈련을 계속 해온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시모만을 겨냥해 찌르기는 불가능했다. 내 딸과 남편에게 피가 튄다.
그녀는 나를 통제하려 했고 나는 그녀를 참을 수 없다. 분노의 최고점에서 욕이 나오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앞으로도 안 나올지 장담할 수 없다. 사회통념상 이해되는 선에서 분노를 마무리해야 한다. 이틀을 기다려 그녀에게 전화했다.
예상대로 그녀는 나에게 20년간 했던 모멸의 말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내게 잘해주려 애쓴 마음과 그걸 받아주지 않는 며느리에 대한 서운함. 그녀가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해서 나는 또박또박 내 속에 박혀있던 그녀의 말들을 뽑아 그녀의 귀에 되돌려 꽂았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담겨있는 너는 내 말대로 해야 한다. 너의 윗사람이고 무려 하늘 같은 남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라는 메시지를 밟아 터뜨린다. 꾹꾹 밟아 내장이 터지고 체액이 흘러도 그 말은 다시 살아나 그녀의 입에서 내 귀로 들어와 어딘가에 박힌다. 그녀가 말하는 모든 단어는 나를 향한 멸시. 당연한 명령, 복종, 통제, 대접을 원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다. 대답하지 않는다. 전화받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간다. 그녀가 울면서 피해자 호소하는 꼴을 보면 난 실제로 뭔가를 부술지도 모르니까. 컵이나 접시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을 아니까. 시가의 거실 바닥에는 남편이 밥통을 메다꽂아 움푹 패인 곳이 있다. 어머니에게 차마 던질 수 없어서 바닥을 향했던 밥통의 흔적이 선명하다.
전화 좀 받으면 안 돼?
어머니 대신 밥통을 던진 남편은 아직도 내게 바란다. 내가 그녀를 견디기를. 자신도 하기 힘들었던 일을 내가 묵묵히 견뎌내기를. 그녀와 나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며 가만히 등 돌리고 서 있다. 우두커니 서있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나 이제 안 가. 다시는 오지 말래. 나의 단호함이 그를 구원해 주길 바라면서.
저는 어머님의 애정이 필요 없습니다. 저를 위해 크게 우셨을 때도 전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든 남이 될 수 있는 사이이고 그게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머님과 좋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제 윗사람이 아니셔서 고개 숙일 이유가 없습니다. 20년을 참았습니다. 1초도 싫습니다. 기회를 드릴 생각은 전혀 없어요.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말해봐라 내가 들을게
뭐? 야! 나는 그런 말 한 기억이 없다 다른 데서 들은 말 아니니
어른이 그런 말 할 수도 있지
네가 내 말을 다 고깝게 듣는데 내가 좋을 리가 있냐
너는 너 위에 아무도 없니 너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야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20년 참은 거 그게 뭐라고 그게 뭐 대단하니
왜 그거를 참았어 그때 말하지
야! 다시는 오지 마라!
나는 마지막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기를 무척이나 바랬고 긍정의 대답으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절연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녀와의 인연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겠지만 나를 아무렇지 않게 모멸하는 그녀의 입은 일단 닥치게 했다. 속이 시원하지도 않고 후회도 되지 않는다. 더 날카로운 말로 그녀를 벨 수도 있었지만 잘 참았다. 그녀를 벨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