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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하게' 나한테 왜 그러는데?

아이디어는 그 사람의 언어의 한계라...

by 소원 이의정

로맨스 소설을 기획하고 있는 고통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원래 아이디어를 짜낸다는 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므로 쉽다면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데... 그런데...

기획부터 복병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 복병은 수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는 거기서 거기여서 누구라 할 것 없이 먼저 세상에 내놓으면 그만이다 하는 것이다.


나의 여주는 세상을 구할 여자였다. 세상은 사랑의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고 그 사랑의 종말을 안겨준 바이러스는 우주로부터 떨어지는 유성이었다. 그 유성으로부터 퍼진 끔찍한 사랑종말 바이러스로 시작이 되는 소설이었다. 기획단계부터 김이 빠진 이유는 '힙하게'라는 드라마 때문이다.


남들이 재밌다고 난리를 쳐도 드라마는 거들떠도 안 보던 내가 요즘은 모니터링하는 마음으로 공부하듯 보고 있는데 오늘은 유독 '힙하게'에 마우스가 굴러갔다. 개인적으로 '한지민'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우선 제목부터 힙스러웠다. 1회분부터 빠르게 흘러가는 스토리와 톡톡 튀는 대사가 재밌어질 무렵 여주인공이 유성에 맞아 초능력이 생기는 장면을 본 후 난 입에서 자연스럽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헐... 뭐래."


아이디어란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계의 한계'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던 거 같은데, 이젠 어찌해야 할까?

극본을 이남규, 오보현, 김다희 작가들이 썼다고 하는데 내 유성을 어쩔 건가. 우주에서 떨어지는 나의 유성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 생각의 한계에 벗어나지 못하고 기획안이 멈춰버렸다.


지금은 드라마 '힙하게'도 보지 않고 있다. 생각은 멈춤의 정류장에서 아직 출발을 못 하고 있는 상태다. 의식은 엔진을 가동하려 하나 오늘도 도서관에서 창밖의 짙푸른 나무를 보다 꾸벅꾸벅 잠들고 말았다. 유성에서 기획이 멈출 줄이야.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보다 결국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낙서의 내용은 소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유수'라는 단어를 찾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물의 흐름을 느껴보았다. 시간이 이렇게 간다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을 드라마에서 본 이후 번쩍이는 드라마효과와 나의 망막에 입혀진 번쩍이는 잔상이 이후의 모든 기억을 쓸어버렸다. 나 지금 기억상실증에 걸린 걸까? 글을 쓰러 도서관에 가야 하는데 나의 핸들은 시장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맛집을 찾아 들어갔다. 키오스크로 매콤한 비빔국수를 주문하고 1인석에 앉았다. 입맛을 돋우는 감칠맛 나는 비빔국수를 먹고도 글을 써야 한다는 의지 가득한 기억이 돌아올 생각이 없다.


창밖의 저 푸르른 나무들은 9월인데도 저리 초록색이네, 단풍은 언제 드는 걸까? 오늘은 글렀다. 출근하기 전까지 리프래쉬가 되기는커녕 창밖을 보며 졸던 뇌가 흐리멍덩하다. 졸음의 잔상이 출근 후에도 두어 시간 지속되길래 강력 처방을 위해 마트에 갔다. 그리고 카페인이 강력하기로 소문난 '몬스터'를 힙하게 집어 들었다. 목을 타고 흘러들어 가는 탄산이 뇌를 자극했다.


오늘은 어쩔 수 없다. 그냥 '탄산의 날'로 정하자.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에 가서 맥주나 한 잔 시원하게 마셔야겠다. 하하 그래도 나의 정신은 내가 컨트롤한다. 난 엄청난 기획을 쏟아낼 것이고 아주 유니크한 소재로 이 기획서를 잘 마무리할 것이다. 나의 소설은 읽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고 아주 유익한 사랑 이야기가 될 것이다. 기획서와 캐릭터 빌딩을 끝내고 시놉을 쓰고 하는 일련의 작업을 해야 하는 걸 알지만 손가락이 가끔 1회부터 써 내려가고 싶어 안달이다.


"놉" 이젠 안돼! 정식으로 제대로 해보겠다며 폴더명도 '제대로 해보자!'잖아.

나의 잠재의식은 내가 컨트롤한다. 걱정하지마 잘할 수 있어. 결국은 엄청 유니크하고 재미있는 로맨스 소설이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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