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콘스탄트 Aug 22. 2024

멸망한대도 사랑하겠어!

6화

2년 전 손우주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몇 주를 앓아누워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주)한국우주항공 회사에서 그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주어진 상태였지만 그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미국에서 외로움을 느꼈던 어느 날부터 알코올에 의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듯했다. 


‘내가 사는 이유가 뭘까?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어차피 인류는 멸망할 거고 지구는 곧 사라질 건데.’ 


그는 점점 더 회의적인 생각을 했고 매일 술을 마시며 학교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를 아끼던 교수들과 학생들은 그를 걱정했고 결국 한국에 연락을 했던 것이다. 


“손교수님 어머님이신가요?” 


승미의 핸드폰으로 모르는 국제전화번호가 걸려왔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우진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동료 교수로부터 그의 집을 안내받았고 우주의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승미는 너무 놀라 우주를 안고 울고 말았다. 


“아가, 엄마야, 너 왜 이러니? 어쩌다…” 

그를 품에 안고 한참을 보듬었었다. 


우진은 눈물을 꾹 참고 주변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우주의 책상 위 술병을 치우고 정리하다 그의 일기장을 보게 됐다. 온통 절망적인 내용이었다. 


‘아니, 형, 이렇게 힘든데 왜 연락을 안 했어.’ 우진은 흐르는 눈물을 몰래 닦았다.


우주는 엄마의 품 안에서 온기를 느끼며 마음이 치유됨을 느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따스함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엄마, 우진아 미안해…” 우주는 차마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형, 무슨 소리야. 뭐가 미안해. 혼자… 바보같이.” 우진은 우주를 힘껏 안아주었다. 


승미는 우선 우주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여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먹은 집밥이 효과가 있었는지 우주의 안색이 훨씬 좋아 보였다. 


“역시 엄마의 된장찌개가 약인가 봐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요.” 


우주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그 눈물을 삼키기 위해 천장을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본 승미도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그래, 우주야 한국으로 가자. 그동안 미국에서 고생했어.” 우주를 토닥이며 말했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우주는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술을 완전하게 끊을 순 없었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했고 절망과 외로움에 여전히 힘들어했다. 

양평의 밤이 유독 길게 느껴지던 어느 가을날, 한 손에는 여전히 위스키 잔을 들고 있었다. 

우주는 오랜만에 컴퓨터에서 가족 블로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옛 추억에 젖어들었다.


“아… 우진이랑 나랑 귀엽네.” 


그렇게 한참 사진을 보다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 


“어, 누구지? 하… 라일락.”


우주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우주가 해성을 처음 만난 날 라일락을 꺾다 함께 쓰러졌던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름이… 해성이라고 했었지. 너는 어디서 뭘 하고 있니?” 


검색 사이트에 해성을 쳤다. 찾을 수 없었다. 김해성, 박해성, 최해성 등 검색을 하다 ‘구해성’ 검색어를 치자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의 사진이 올라왔다.


“구해성”  


우주는 사진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이후 자료를 살펴봤다. 


우주가 일을 시작하는 그룹사의 뇌과학연구소에 부소장으로 해성이 있었다. 

우주는 해성의 존재를 확인한 후 단번에 술을 끊어 버렸다. 

그의 각오는 마치 던전에서 마지막 악귀를 죽이고 소생의 아이템으로 공주를 구한 기사처럼 아주 단호했다. 


*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해성의 상태를 걱정한 해리가 연습이 끝난 후 집으로  온 것이다. 


“언니, 무슨 일이니?”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거실에 서 있던 해성을 보며 말했다. 


“그러게, 병원에서는 아무 문제없다고 하니까. 괜찮아질 거야.” 


“저녁은 먹었어?” 해리는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야, 뭐니 무슨 냉장고에 와인만 있고. 먹을게 하나도 없네.” 


“배고파? 나도 좀 출출하긴 하다. 시켜 먹자. 나 지금 음식 할 기운은 없어.” 

말하며 핸드폰의 배달 어플을 살펴봤다. 


“뭐 먹을래? 환자는 죽을 먹어야 하는 거 아냐?” 


“그 정도는 아냐. 너 뭐 먹고 싶어.” 여전히 어플을 보며 해성이 말했다. 


“떡볶이? 피자?” 


잠시 후 베트남 음식 배달이 도착했고 해성은 와인잔을 꺼내고 있었다. 


“언니, 와인을 마셔? 괜찮겠어?” 


“괜찮아, 나 오늘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 그를 본 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어. 

이런 느낌이 처음이라 당황했어.” 해성은 다시 그때의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 누구를 말하는 거야?” 


“손우주, 엄마 친구 아들.” 해성은 얼굴에 미소가 띠어졌다. 


“너, 지금 표정이 이상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해리는 해성의 표정에서 이상함을 발견했다. 

상기된 그녀의 표정이 예뻐 보이기까지 했다. 


“해리야, 내일 우리 연구소에 와서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저녁에” 


*


해성은 나성대 박사 사무실로 걸어가며 여러 의문이 들었다. 

해성은 뇌를 전공으로 했지만 줄기세포 연구에도 많은 부분 참여했고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나성대 박사와는 처음 접촉이었고 그의 음흉하고 조잡한 외모가 그리 썩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나성대는 ‘한국 우주 항공’ 회사에 소장이고 그룹사 부회장의 오른팔이었다. 

그룹사 회장은 ‘반희애’였다. 그녀는 뇌과학과 줄기세포 연구에 점점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부회장 석건우는 우주 항공 분야를 담당하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반희애는 젊어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한다고 들었다. 

더 젊어지기 위해서 줄기세포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줄기세포로 뇌를 만드는 것은 잘 진행되고 있고 그 일이라면 다음 주 미팅이 잡혀 있는데… 왜 갑자기 보자는 거지?’ 


나성대 사무실 앞에 오니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노크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해성은 문 앞에 서 있어야 했다. 


“인체 적용 실험은 힘듭니다. 지원자도 없고 불법이라.” 

해성은 너무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자세한 내용은 구박사 미팅 끝나고 보고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듯했고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너무 쪼시네.” 

이후 문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고 “시간이 됐는데 왜 안 와?”


해성은 급하게 복도 쪽으로 뛰어가 벽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전화기가 울렸다. 

다시 여자 화장실로 다급하게 들어갔다. 


“여보세요. 나박사님.”


“구박사님, 오시는 거죠? 시간이 됐는데 아직이셔.” 


“네, 갑자기 배가 아파서 지금 잠시 화장실에 들렀습니다. 곧 들어갈게요.” 


나성대의 말은 대외비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연구의 수석 연구원으로 내가 담당을 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연구 진행에 속도를 내라는 요구와 함께 다양한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까 우연히 들은 인체 실험을 감행하면서 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 일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다. 나성대 박사의 인품도 프로젝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한마디로 뱀 같은 사람이었다. 


“구박사님에게는 아주 좋은 조건이에요. 부회장님께서 특별히 담당을 했으면 하는 부분이고 기대가 큽니다. 당연히 연봉도 올라갈 거고 모든 조건들이 업그레이드될 거요. 부회장님 뿐만 아니고 회장님도 이 프로젝트에 열정적이시고. 아무튼 합류하시는 걸로 알고 있으십니다.” 


“시간을 좀 주세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시간, 오래 끌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삼일. 그 안에 생각해 보고 긍정적인 답변 주시죠.”


‘삼일?’ 가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직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에 서있는 해성을 본 우주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해성이 놀랄 것 같아 헛기침을 했다. 


“흠! 흠!” 


해성은 쳐다볼 기미가 없었다. 그녀의 손에 핸드폰이 들려있는 것을 본 우주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쟤야 해성은 핸드폰을 쳐다봤다. 우주였다. 

‘mad’ 우주는 보고야 말았다. 해성이 자기를 어떻게 저장했는지.


“제가 그렇게 미친.. 그러니까 미쳤다는 건가요?” 


소리가 너무 가까이 들려 해성은 바로 옆에 누군가가 서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마, 아… 그…” 


 바로 전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렇게 저장했대도 제가 할 말은 없네요. 인정합니다. 미친 거!” 


시원스럽게 말하는 우주의 모습이 내심 웃기기도 했던 해성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 설마 저를 만나려고 오신 건 아닌 거 같고.” 우주가 말했다.


“나성대 박사님과 미팅이 있었어요.” 해성은 우주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나박사님과는 연결고리가 딱히 없어 보이시는데 무슨 일로?” 

궁금증이 발동한 우주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어지럽기 시작했다. 


‘왜 어지럽지?’ 

“말씀드릴 수 없어요. 대외비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라. 대외비…라고 말씀을 드렸네요. 휴우…”


“구박사님, 저랑 옥상 카페에서 시원하게 커피 한 잔 어떠세요? 물론 바쁘신 건 알지만 이렇게 만나니 너무 반갑기도 하고 밤새 몸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네, 그럴까요.”

‘어, 뭐야! 너 왜 이러니!’ 생각과 말이 따로 움직이는 해성이었다. 

‘매번 손박사 앞에서는 말이 헛나와…’ 


우주는 이미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


“나 왔다고 전해.” 석건우는 회장의 비서에게 말했다.


“회장님, 부회장님 오셨습니다.” 


“그래.” 

비서는 말없이 둘이 마실 차를 다도 세트와 함께 준비했다. 


반희애 회장, 세계적인 줄기세포 바이오 회사와 우주과학 그리고 건강식품 업체를 그룹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공을 많이 들이는 분야가 줄기세포였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젊어졌고 임상이 어느 정도 끝난 제품은 본인이 먼저 시술을 하거나 사용했었다. 

우주과학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아들 석건우는 매주 수요일이면 반희애와 다도를 하는 시간을 갖었다. 


“지난주는 어떻게 지냈니?” 

질문을 하는 반희애는 AI처럼 감정이 없었다. 


“늘 그렇죠.”


“S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니?” 


반희애는 비서가 두고 간 다도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찻잔에 따르고 있었다. 


“우선 이번에 인공 배양으로 ‘간’을 만들 계획입니다. 미국보다 먼저 시판에 성공할 수 있어요.”


“그건 나중 얘기 고오!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건 없다. 중요한 건 인체 적용 실험이 완벽하게 된다는 것이 중요하지.” 


따뜻한 차를 천천히 음미하는 반희애의 눈빛은 차갑고 서늘하기까지 했다. 


“우선 계획대로 된다면 다음 주에는 내게 할 말이 많겠구나.” 


“네.” 

석건우는 늘 말이 짧았다. 말보다는 생각이 많은 스타일이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반희애는 그와 차 마시는 걸 좋아했다. 차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반희애 회상의 비위를 맞추느라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면 차 맛이 떨어졌다. 


“그래, 오늘은 점심 약속 있니? 오랜만에…”


반희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건우는 말문을 열었다. 


“저는 한 시간 후 비행기로 미국에 다녀와야 합니다. 머스코 회장 만나기로 했어요.” 


“아, 그 원자 추진기인가 뭔가 그거 말이니?” 


어려운 용어로 말을 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반희애는 그저 차 우려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네, 원자핵 추친기. 맞아요.” 


“조심해서 다녀와라. 필요한 거 있음 전화하고. 나가봐.”

석건우는 허리를 숙이고 나갔다. 

이전 05화 멸망한대도 사랑하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