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
#1
5년간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강화도 여행을 준비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들떠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5살 아이처럼 종알종알 말도 많았던 나였다.
그가 드라이브하는 내내 나 혼자 떠들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다부진 마음으로 헤어질 결심을 하고 나를 대했던 그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내가 예약한 바다가 보이는 펜션에 짐을 내려놓고 근처 관광지를 돌 때도. 저녁을 먹을 때도.
머릿속은 온통 헤어질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준비해 간 와인과 소소한 안주들을 차려놓고 펜션에서 저녁을 보내기 전까지 늘 비슷한 일상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가 나오기 전까지는.
"가은아, 우리 헤어지자."
나는 준비해 간 모둠 치즈를 먹으며 그에게 이렇게 말하려던 참이었다. '이거 먹어봐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어.'라고.
"뭐?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너랑 나, 그만 만나자. 미안해."
이 상황을 침착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침착하자...'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왜? 왜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우리는 대학생 졸업반일 때 만났다.
그는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이었고 나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복학생이었다. 북클럽 동아리에서 만나 다양한 책을 함께 읽고 토론을 하며 그의 생각에 빠져들었고 빛나는 눈빛이 멋져 보였다. 내 눈에는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그만 보였었다. 니체를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과 입술이. 피터 드러커의 논리를 말하는 그의 생각이 섹시했었다.
그렇게 도서관을 오가며 우리는 사랑에 빠졌고 스펙을 쌓고 각자 원하던 직업을 찾아 직장인이 됐다.
그렇게 5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냈던 우리.
기쁨과 슬픔 그리고 전쟁 같은 싸움을 했었던 우리가 그 곱게 쌓여있는 시간들을 뒤로하고 지금 그가 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하고 있다.
따라놓은 와인 한 잔을 급하게 들이켰다.
떨어지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창가로 걸어갔다. "왜? 헤어지자는 이유가 뭐야? 알아듣게 설명해 줘."
"사실... 나."
"잠깐만!" 문뜩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권태기도 이겨낸 우리였는데 최근 1년간 그의 무표정한 얼굴들이 생각났다. 뭔가 달라진 것을 느꼈어야 했는데 회사 생활로 너무 바빴다.
그도 나도 서로 너무 바빴다. 사랑한다는 생각이 화석처럼 머리에 박여 있어서 너무도 당연하다 생각했다.
"어 말해봐. 이제 들을 수 있어." 그러나 귀는 멍한 소리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어."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나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다시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한다고? 나랑 만나면서, 너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던 거야? 언제부터?"
"6개월 됐어 그리고 내가 너무 좋아하고 있어."
그가 너무 좋아한다는 그 말이 진심 같아서 비수처럼 심장을 찢어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처절한 파도소리만 들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의 축 처진 어깨를 보았다. 창문으로 비친 그의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싱크대로 걸어가 정리를 했다. 그리고 짐을 챙겼다.
"나 집에 가고 싶어. 지금."
"어? 그래!"
화장실로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발로 걷어차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뒷정리를 하고 짐을 문 앞에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