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끼고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난다는 게...
촉촉하게 비가 내린다.
아니 축축하게 비가 내리나?
어쩌면 구질구질하게 비가 내리는 지도...
진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과거 나의 어리석고 오만한 생각과 행동들에 돌아가서 정신 차릴 때까지 귀싸대기를 갈겨주고 싶다.
어쩌면 그렇게도 오만방자하고 어리석었던 걸까?
그리고 나는 왜 이리도 너무도 늦게서야 그 순간들을 돌아보고 이해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까?
"그때는 몰랐다.
나만보는 그런 남자가 있었다.
한결같이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하는 헌식적인 한 남자가 있었다.
종이라는 어떤 형태의 물건이 있다면 그것이 계산할 때 쓰는 영수증 종이라도, 한가득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아기자기한 그림까지 섞어서 거의 매일 편지를 써서 주곤 했다.
일과 후 회식하며 노느라 바쁜 나에게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전화도 잘 못하는 나를 끔찍하게도 생각해주는 그런 남자였다. 그렇다고 그가 소심하고 여성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학생회 의장이었고 그런 만큼 리더십과 남성스러움이 있는 멋진 청년이었다.
그런 리더십에 반했었고 한편으로는 세심하고 배려심 많은 모습에 내가 먼저 관심을 보였었다.
어느 겨울 늦은 저녁 칼바람이 부는 골목에서 그 어린 연인들은 헤어지기 아쉬워 꼭 끌어안고 서로를 놔주기 싫어했었다. 그리고 집 앞에서 헤어지는 그때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는 먼 길을 혼자 보내기 싫어서 우리는 밤을 함께 보냈다.
그 설렘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행복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었다.
정말 소중했던 그 첫날밤.
구정 연휴 때 산소에서 기도 했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제발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그 기도가 먹혔던 걸까? 수많은 조상님들이 내 마음속 절규를 들어주신 걸까?
그가 나에게 사귀고 싶다고 고백을 했고, 그 이후로 세상은 온통 핑크빛이었다.
그런데 난 너무도 거만하고 오만방자해졌다.
한마디로 엽기적인 그녀였다.
그 아름답고 소중한 사랑을 성숙하게 지키고 아껴야 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숙하고 멍청한 여자가 됐다.
함께 있음에 감사하고 그 감정을 아껴야 했는데 말이다...
그는 마치 나의 일부였고, 나에게 수족 같은 존재였다.
권태기도 있었다. 물론 그와 나의 타이밍이 달라서 우리는 더 오랫동안 연애를 할 수 있었던듯싶다.
그런 나를 끔찍하게도 지켜주고 아껴주고 옆에서 끝까지 버텨준 그에게 나는 늘 나만 생각하고 떨어질 궁리만 했었다. 왜 그리도 멍청하고 어리숙했을까?
나는 남들과 달라! 나는 멋진 여성으로 성공할 거야!라는 오만방자한 생각으로 내 옆의 가장 소중하고 보석 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가슴이 먹먹해온다.
나에게 산소 같은 그가 의미 없다 치부했던 나에게 독한 마음먹고 최루액 같은 공기를 발사했더라면...
정신이 바짝 들면서 혹시라도 달라졌을까?
그도 사람인지라... 나의 미련한 행동에 지쳐갈 즈음...
어쩌면 나에게는 도피 같았던 결혼 생활도 3년이라는 시간을 뒤로하고 떠나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게 벌어졌을 일이리라 생각한다.
나를 견뎌주고 지켜줬던 그에게도 인간으로서 느끼는 한계가 있었으리라.
시건방진 나는 이후로도 그것을 자유라 생각했고 나름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벌써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에게 드디어 아름다웠던 추억이라 회상하는 네가 됐다.
이제 와서 그렇게도 아름다웠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나는 유독 가을을 좋아했다.
봄에는 딱히 설레는 감정이 없었는데 2022년 봄은 나에게는 겨울같이 시리도록 눈부시다.
연둣빛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벌써부터 떨어지는 목련 꽃잎이 애처롭게 밟힌다.
너는 나에게 가슴 시린 아름다움이 되었다.
사실 작년부터 너를 그리워하고... 아니 그리움보다는 미안함과 죄스런 마음이 더 컸다.
아주 작은 에피소드들도 이제는 하나하나 기억날 만큼 그 길었던 8년이 나에게 고백하듯 기도하는 마음으로 "미안하다."를 읊조린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후회되는 일이 참으로 많다.
아냐! 하고는 합리화를 하기에는 나도 이제 나를 많이 알았다. 어쩜 더 이상 합리화를 할 명분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모르겠다.
혹여라도 길에서 만난다면 첫마디로 "미안했어."라고 고백하고 싶다.
나에게는 너무도 아름다운 당신인데, 너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런 생각조차도 미안해서 내가 너무도 이기적이라는 생각뿐이다.
이젠 '사랑'이라는 그 단어에 나는 작은 존재가 됐다. 나는 '사랑'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아..." 그 찬란했던 20대에 너무도 예쁜 사랑을 했던 당신 그리고 바보 같았던 나.
너무 늦어버렸다... 이제 그걸 알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