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런던에서의 첫 경험

by 소원 이의정

#15

영국으로 출국하기 전에 엄마께 장문의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김순옥 여사님께. 를 시작으로 하는 편지를 쓰며 왜 그리도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지.

잘해드린 것보다 엄마 속 썩인 것들이 떠올라 그랬었나 보다.


"엄마. 잠깐 이리 와봐요. 내가 염색시켜줄게. 딸이 영국 가기 전에 장인정신으로 한 땀 한 땀 잘해드릴게요."

장난처럼 엄마를 의자에 앉히고 염색을 해드리는데 왜 그렇게 흰머리는 빨리 자라고 어깨는 더 작아졌는지 엄마의 뒷머리를 염색하는데 터져 나오는 울음을 목구멍으로 넘기느라 너무도 힘들었다.

눈물을 참는 것이 느껴졌는지 순옥은 입을 열었다.

"귀찮다고 밥 거르지 말고. 인터넷 찾아서 너 좋아하는 겉절이라도 해서 먹고. 야채 잘 챙겨 먹어. 고기만 먹지 말고. 걱정이다. 엄마는..."

"흡...(목소리를 가다듬고) 걱정 마 엄마. 나 전에도 호주에서 워킹할 때 알아서 잘해 먹었어. 엄마 닮아서 요리도 잘한다고. 엄마나 잘 챙겨드세요. 요즘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나는 참았던 눈물을 떠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엄마의 허벅지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냥 목놓아 엉엉 울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쓸쓸했을 우리 엄마를 또 한동안 못 본다고 하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가은아... 괜찮아. 엄마 민주랑 잘 있을 거니까 걱정 말고 잘 다녀와. 왜 또 눈물바람이야."라고 말하며 순옥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순옥과 민주는 짐을 챙겨준다며 이것저것 사들여서 이민가방이 가득 찼다.

"엄마. 그만. 이걸 내가 다 어떻게 들어. 이거 빼고. 이것도 필요 없어. 무슨 뚝배기를 가져가."

"아니 너 뚝배기에 된장국 먹는 거 좋아하잖아. 딱 너 먹을 만큼만 해서 먹어."

"김순옥 여사님. 아닙니다. 됐고. 이것도 됐고. 민주야. 너 이거 가져." 나는 풀세트로 사 온 화장품과 샤워세트를 동생에게 넘겼다.

"엄마. 영국도 다 있어요. 걱정 말고. 이건 집에서 써." 옥신각신하며 겨우 짐을 쌌다.

"언니, 짐 다 쌌으면 빨리 와." 민주는 송별회를 한다고 한상 가득 나름의 요리를 해서 준비를 했다.

"엄마도 이젠 웨스턴 요리에 익숙해져야 하니까. 내가 특별히 이태리 요리로 준비했어. 이건 알리오올리오 파스타 이건 큐브스테이크, 이건 시저샐러드. 그리고 여름이니까 화이트와인. 엄마는 위스키."

"어. 난 위스키가 좋더라. 영국은 위스키의 본고장이니까 나중에 가서 꼭 마셔봐야겠어."

우리 셋은 활짝 웃으며 엄마께 언더락으로 위스키 한 잔을 따랐다.


"자. 건배. 가은이 영국 가서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한다. 항상 조심하고. 무슨 일 생기면 민주한테 바로바로 전화하고. 민주는 저녁 준비하느라 수고했어."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요. 보고 싶음 영상통화하고. 그리고... 나 지난번에 말레이시아 출장 갔다가 남자 친구를 만났어." 엄마와 민주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출장 가서 지호를 만났어?!"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니. 아니. 지호 씨가 아니고 다른. 그러니까 새로운 남자를 만났어요."

"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 누굴 만났어?"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래서 그가 영국에 있기 때문에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어제 미리 짜놓은 대로 필릭스가 시간 맞춰 전화를 했다.

"필릭스 전화 왔네. 다들 너무 오버하지 말고. 평상시처럼 대해줘. 알았지? 엄마." 아직 놀라있는 엄마를 보며 주의를 주었다.

"Hello, 레이디스. Good evening over there. 안녕하세요." 그의 어색한 한국 인사가 들렸다.

엄마는 그를 자세하게 보기 위해 안경을 챙겨 오셨다. 필릭스는 아침 일찍일 텐데 평소에 보지 못한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말쑥한 그의 모습은 처음이라 나도 너무 놀랐다.

"Hello, Felix. My name is Lisa. Korean name is Minju." 동생 민주는 나름 영어를 한다며 그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Nice to see you all. 반갑습니 타아. 어머니." 그의 서투른 한국어가 너무 귀엽게 보였다.

한참을 서로 이야기를 하고 나는 그가 곧 출근을 해야 해서 나중에 또 통화하자고 하고 끊었다.


잠시 저녁 식탁 자리는 조용해졌다.

"저 잘생긴 남자가 네 남자친구라는 거니? 저 영국남자?" 엄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언니. 진짜 대박. 아니... 와아. 대박이다. 필릭스 진짜 너무 멋진데. 직업도 찐이야? 우리 영국 언제 갈까?

언니. 나 외국 형부 생기는 거야? 우와. 친구들한테 형부 얼굴 보여줘도 돼? 자랑하고 싶다."

"얘는 미쳤니. 아직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그나저나. 한국어를 좀 배우라고 해라. 엄마 답답하다."

우리는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

"엄마. 인연은 따로 있나 봐요. 나도 믿기지 않는데 말레이시아 있는 동안 알았어. 우린 운명 같아."

"그렇지. 인연은 따로 있어. 그나저나 아버지는 뭐 하는 사람이라니? 어머님은?"

모두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끝장토론 시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그와의 인연에 대한 사건사고들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즐거운 마지막 송별회도 끝이 났다.


다음 날 공항에서 엄마와 민주는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버리고 말았다.

"민주야.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언니. 멀리 있다고 연락 안 하면 화낼 거야. 우린 가족이니까 사소한 것도 전부 알아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알았어... 흑흑... 언니나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해. 그. 리. 고. 잘 챙겨 먹어. 엄마 걱정시키지 말고."

"그만 울어. 어서 엄마 모시고 잘 가. 운전 조심하고. 초보 스티커 꼭 붙이고 다니고. 어서가."

"가은아. 도착하면 전화해. 영상통화인지 뭔지 그 얼굴 보이는 걸로 해."

"알았어요. 엄마. 바로 전화할게."

"나 공부 열심히 할게. 그리고 영국한번 와요. 민주가 엄마 잘 모시고 들어와. 계획 짜볼게."

"알았어. 언니. 들어가."

엄마와 민주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뒤돌아 검색대 게이트를 지났다.

비행기를 타기 전 필릭스와 통화를 하고 도착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날아올랐다.




12시간의 비행은 묵직해진 몸이 느껴질 정도로 피곤했다.

'휴우. 장시간 비행은 정말 힘드네.'

수하물을 찾고 출입국 게이트에서 여권에 도장을 찍는 모든 과정이 끝나니 출국장이 보였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필릭스는 한눈에 들어왔다. 무릎 부근이 해진 청바지와 단화를 캐주얼하게 신고 셔츠의 소매 부분을 접어 올린 필릭스. 그가 내게 다가오고 있다.

그는 나를 들어 올려 끌어안았고. 남들이 보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키스를 퍼부었다.

"가은. 지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어. 잘 왔어."

"필릭스. 정말 반가워. 반가운데. 나 좀 내려줘."

그는 차를 주차시켜 놨다고 했고 원격으로 트렁크를 올리는 차를 보니 재규어가 있었다.

필릭스는 짐을 싣고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그의 집으로 가는 길에 이국적인 영국의 풍경들을 보며 새삼 내가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났다.

그의 집은 런던 카나리와프에 위치한 주상복합 아파트 였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1층 로비는 마치 호텔 같은 분위기를 풍겼고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올라간 후 23층에 내렸다.

모던한 분위기의 회색과 블랙으로 꾸며진 깔끔한 아파트 내부는 그의 꼼꼼한 성격이 느껴졌다.

거실 중앙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극락조가 심플한 화병에 꽃꽂이 되어 있었다. L자로 꾸며진 소파는 런던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팝아트 그림들이 몇 점 바닥에 세워져 있었으며 커다란 화분도 몇 개 있었다.


"필릭스. 집 구경 좀 시켜줘."

"Okay. Follow me. 여기는 우리 방이야."

"우리 방?(나는 부끄러워 키득거리며 웃어 보였다)" 침대는 화려한 가죽 해드의 킹사이즈 였고 블랙 시트로 꾸며져 있었다. 침대 맞은편에는 티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있었고 옆으로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베드벤치는 침대 해드와 같은 검정 가죽이었고 조명이 은은하게 조절되는 섹시함이 느껴지는 아늑한 방이었다.

나는 그의 침대에 가서 앉아 보았다. 필릭스가 옆으로 와서 나를 뒤로 밀었다.

"oh... 필릭스. 나 씻고 싶어. 여독을 좀 풀어야 할 것 같아."

"알았어. 그럼 내가 욕조에 물 받을게. 기다려." 내가 말하기가 무섭게 그는 욕실로 달려갔다.

나는 키친을 구경하고 그의 서재를 본 후 욕실로 갔다. 그곳은 넓고 큰 욕조가 있었고. 그는 나를 위해 거품 목욕을 준비해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라벤더 향이었다.

그는 거실로 나갔고 나는 옷을 벗고 욕조로 들어갔다.

'아... 몸이 녹는다. 향도 너무 좋고. 따뜻해. 잠이 오네...' 나는 머리를 틀어 올리고 욕조에 기대 늘어져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샴페인과 샴페인잔 두 개를 들고 들어 왔다.

"Welcome to London. 가은. I'm so happy with you."

"Thanks. me too. 난 지금 이 시간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야." 그와 나는 잔을 부딪혔고. 서로의 눈을 보며 샴페인을 마셨다. 그리고 그는 옷을 벗고 욕조로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그가 내 뒤로 와서 나를 마사지해 주었다. 목 근육이 풀리고 뻐근했던 어깨가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내 가슴으로 와 마사지했다. 나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는 나의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며 나를 흥분시켰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돌아서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잠시 후 나는 필릭스의 손을 잡아끌고 샤워부스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거품을 닦아 낸 후 그는 타월로 나를 감싼 후 침실로 안고 걸어갔다.

우리는 지난 3개월간의 그리움을 토해내기라도 하듯 격정적인 섹스를 했다.

너무도 그리웠고 보고 싶었던 필릭스에게 나의 기쁨을 보여주었다.

나는 옆으로 누워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도 나를 바라봤다.

"일주일 일찍 들어왔는데 당신이랑 이렇게 있다 홈스테이 하러 가면 너무 섭섭할 거 같아."

"내가 말할게. 환불하는 게 힘들다고 하면 그냥 취소하고 우리 집에 있어. 돈은 못 받아도 어쩔 수 없으니까. 아까워하지 말고."

"취소가 가능한지 물어 볼게. 필릭스 나 배고파. 먹을 거 있어?"

"간단하게 샌드위치 만들어 줄까?"

우리는 키친으로 갔고 하몽을 잔뜩 넣고 썬 드라이드 토마토(말린 토마토와 올리브오일)와 아보카도를 슬라이스 해서 넣은 필릭스 방식의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필릭스. 너무 맛있어. 매일 먹을 수 있겠는데."

그는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보며 흡족해했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서 크랜베리 주스를 꺼내 보드카를 살짝 섞었다. 우리는 블랙 대리석으로 꾸며진 아일랜드 식탁의 스툴에 앉아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가은. 내일 우리 집에 갈 건데. 가족들에게 이미 가은 얘기를 다 해놨거든. 같이 가기로 했어."

"아. 주말에 모여서 식사한다는... 그 자리? 와아. 떨려. 그럼 나는 뭘 입고 가야 해?"

"격식 차리는 자리는 아니지만. 처음 만나는 자리니... 흠... 예쁘게 하면 좋겠지?"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내가 들고 온 옷에는 가족 파티에 입고 갈 만한 옷이 없었다.

"왜. 걱정돼?"

"어. 걱정돼. 그리고 입고 갈만한 옷이 없어서."

"내일 오전에 튜브 스테이션 옆에 백화점에 들렀다 가자." 그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아파트 옆 건물에 커다란 쇼핑몰이 보였다.

그가 만든 크랜베리 보드카는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

"필릭스. 나 보드카 한 잔만 더 만들어줘."

우리는 한 잔씩 더 한 후 피곤해하는 나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그는 짐승 같은 눈빛을 한 후 나를 잡겠다고 뛰어 왔고 나는 거실로 도망갔다. 그리고 소파에 쓰러졌고 그는 가운을 던진 후 나를 들어 그의 몸위에 앉혔다.

런던 튜브가 지나가고 화려한 도시가 보이는 그곳은 드디어 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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