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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랑 Sep 09. 2020

부득탐승, 바둑에서 얻은 깨달음

20대 끝자락에 쓰는 독서일기(1)

부득탐승, 바둑을 알기 전 까지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말 그대로 '승리를 탐하면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욕심이 과하게 되면 반드시 자신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것을 깨달을 때 이미 판세는 기울어져 있다. 내 눈 앞에 있는 바둑판이 작다고 생각해도, 생각보다 가로-세로 19줄의 바둑판을 한 시야에 다 담지 못한다. 그래서 늘 바둑판을 보며 겸손해진다. 내 마음을 다스려야할 때 내가 바둑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바둑을 7살 때 처음 배웠다.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바둑 기사는 이창호였다. 전무후무한 연승행진을 이어나가다 유창혁 9단에게 한 번 패배한 것이 엄청난 뉴스거리가 될 정도였다. '돌부처'라는 별명을 가진 프로기사, 겉으로 보여지지 않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했다. 



<바둑의 승리는 다 똑같은 승리가 아니다. '나'의 승리는 작은 승리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승리는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커다란 승리다> / 178-179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다. 바둑의 기본 중 하나다. 눈 앞의 한 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세력을 뺏기지 말라는 의미다. 이창호 9단은 바둑판 밖에서도 큰 그림을 챙겼다. 국가대표로 나가는 대회마다 승리하며 '우리'의 승리를 누구보다 중요시 여겼다.


바둑 스타일을 보면 어떨까. 두터움, 세력싸움. 이것이 이창호 9단의 트레이드마크다. 초반에 내주는 실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여유일까. 경험일까. 승부가 마무리를 향해 다가갈수록 갖춰놓은 세력은 큰 무기로 상대를 압박하곤 한다.


나는 실리를 좋아한다. 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고수를 항상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장 내주는 실리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 수록 내 인생의 세력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느낀다. 두터운 세력은 하나로 이어져있기에 약점이 적다. 어느 분야의 사람들과도 이어질 수 있고, 늘 보이는 것 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예전엔 몰랐다. 물론 지금도 세력을 만드는 법을 알지 못한다. 단 달라진 점은 있다. 실리에 집착하지만 않더라도 그것이 곧 넓은 시야를 놓치지 않는 핵심이라는 점은 깨닫게 됐다.


<나의 바둑은 유독 반집승이 많다. 극도의 조심성 때문이다. 바둑판 밖에서도 조심성은 중요하다. 실제 이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을 앞세우면 작게는 기회를, 크게는 신의를 잃는다> / 274-275


이창호 9단과 내 가치관이 가장 일치하는 부분이다.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바둑을 둘 때, 나는 한 수로 승부를 종종 그르치면서 나의 조급함을 확인할 때가 있다. 분명 어느정도 앞서고 있음에도 나의 실수로 판세는 순식간에 기울어질 수 있다. 그게 바둑이고, 그게 곧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였다.


물론 '반집 승'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경험이 필요하다. 바둑의 한 수는 자신의 집을 메꾸는 순간 반집 승이 반집 패로 둔갑해버린다. 그만큼 소중한 기회다. 그 기회의 가치를 체화시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분명 계산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과 사람의 능력은 수학 익힘책의 계산과는 너무나도 다른 일이었다.


그래서 조심성을 다지기 위해서 많이 듣는 것을 나름의 정답으로 채택했다. 나만의 주관이 때로는 멋있는 목적지에 날 데려놓기도 하지만, 실수를 하지 않아야할 때는 정석이 곧 지혜가 될 때가 많았다. 당장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한 번이라도 더 듣는 기회. 난 그 기회 한 번이 반 집의 가치와 같다고 믿는다. 


<오디세우스의 충실한 조언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멘토'는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스승이라는 의미다. 할아머지는 내 바둑의 지향점이었으며 할아버지의 마음은 내 인생의 지향점이 되었다> / 26


겉으로 보여지는 '돌부처'들은 내면까지 로봇처럼 무감정한 사람은 아니다. 그들도 누군가에 의지하고, 자신만의 롤 모델이 있다. 그들의 멘토 앞에선 영락없는 순수한 소년이다. 이창호 9단의 바둑 스승은 조훈현 9단이었지만 인생의 스승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웅을 담아내셨다. 바둑판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신은 베테랑의 혼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라 믿는다. 존경스럽다. 


나도 누군가의 멘토가 되고 싶다. 정확하게는 멘토의 가치를 정말 높게 평가한다. 내 인생에 다가와준 소중한 손길 모두 기억하려고 한다. 나만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 내가 그 가치를 잊지 않으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받은만큼 꼭 돌려주고자 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다. 적어도 20대의 시작점부터 끝자락에 오는 순간까지는 그 다짐을 지켜냈다. 나를 과시하려고 멘토를 자청한다기 보다는 멘토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면 그 순간에는 더 많은 손길을 내밀고 싶다.


<성공에 이르는 길은 하나뿐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성공한 사람에게 정보를 받고, 현재 그에 맞춰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에 오르는 길과 같이 방법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다.> / 38


바둑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 공식이 없기 때문이다. 기록의 경기도 아니고 심지어 턴을 주고 받기에 연속해서 변수를 만들 수도 없다. 그런데도 AI가 사람에게 패배하기도 한다. 컴퓨터도 생각하지 못하는 변수는 아직도 바둑에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다. 


"야, 인생에 정답이 어딨냐?" 


엄청 새로운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어느 순간 원론적인 이야기가 됐다. 2020년을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정답 없는 인생을 추구한다. 하지만 OMR카드를 받아들고 나면 내 눈앞에 있는 5지선다 보기 중에 정답을 찾고자 고민한다. 일반기업, 공무원, 전문직, 창업, 대학원.... 물론 좁게 본 5지선다다.


바둑판에 흑과 백, 두 점씩 놓았을 때는 전체가 보인다. 그리고 나만의 로드맵을 구상한다. 하지만 여정이 산 중턱에 도달하면, 내가 중턱에 있는지 다 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정답 깃발이 놓여져있는 산 정상도 수많은 나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로 인한 두려움은 자기 책임일까? 출발 전에 그 부분까지 모두 생각해야할까? 그것보다는 정답이 없다는 마음으로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정답을 갈구할 필요, 이유가 없어지니까.


20대의 시작점. 나는 정상에 등반하기 위해 세 가지의 입구를 사전답사했다. 어느 입구로 올라가는 것이 수월할까? 나름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각 입구에서 승부를 준비하는 이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다 똑같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대의 끝자락, 분명 다른 입구로 올라섰는데 중간지점에서 만나게 된 반가운 얼굴들도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난 조심성을 확보하고 때론 멘토가 되기도 한다. 또 작은 것을 나눠주고 큰 것을 함께 취하고자 한다.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느껴온 바둑판, 아니 인생판에서의 부득탐승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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