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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랑 Sep 09. 2020

농구 좋아하세요? : 청춘들을 향한 메시지

20대 끝자락에 쓰는 독서일기(2)

대한민국에 알려져있는 수 많은 스포츠를 소재로 한 만화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 슬램덩크라고 생각한다. 농구를 몰라도 슬램덩크는 알고, 강백호가 주인공인 것도 안다. 심지어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대사만 기억하는 이도 있다. 이런 영향력을 가졌던 만화가 있었을까 싶다.


나 역시 슬램덩크를 보지 않았다. 물론 스포츠를 매우 좋아하지만 만화의 영역은 본질과 다르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슬램덩크 속 내용의 교훈은 단순히 청춘만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이야기와도 연관이 된다는 것을. 십 수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이유는 그만큼 여운이 길기 때문일 것이다.


'농구 좋아하세요?'의 작가 손대범 기자는 자타공인 농구학자로 불릴 만큼 농구에 대한 식견이 높다. 그가 설명해주는 슬램덩크와 현실농구, 그리고 미디어에 대한 고민은 공감되는 부분이 매우 많았다. 슬램덩크 애독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짜피 다 사람 사는 이야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의 조언을 무시하면 안된다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온다.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슬럼프를 본인만 느끼고 넘어갈 수 있지만 운동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많은 팬이 지켜보는 곳에서 자신의 슬럼프를 고스란히 보여줄 수 밖에 없다. 마치 벌거벗은 기분이 든다고 한다. 그런 괴로움 속에서 힘이 되는 말 한마디가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가까운 친구일 수록 조언하기 어렵다. 친하니까. 하지만 그 친구가 충고를 해줄 때는 정말 많은 고민의 결론으로 나온 것이다. 


이걸 깨닫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나'라는 사람이 운동선수가 아니어서 그랬을까? 어떻게든 내 성적을 자기합리화시키고 싶었던 과거 학창시절의 '나'는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내 성적표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시간만 보내곤 했다. 주변의 우려는 듣지 않았다. 그렇게 고장이 나고서야 심각성을 알게 됐다. 후회해봐야 그땐 늦었다. 


참 조언을 해줄 가까운 사람이 많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인생의 친구 세 명 만들면 성공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 칭찬 전략, 리더의 전략


책 속에서 리더의 전략과 관한 이야기가 꽤 나온다. 감독과 선수의 관계, 그리고 준우승을 이끌었던 리더. 자연스레 그럴 수 밖에 없다. 


흔히 운동부의 사제지간을 생각하면 '칭찬 전략'은 쉽게 떠올리기 힘들다. 2020년을 살고 있는지, 1980년대를 살고 있는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스포츠계 내부에서 폭력 사태로 사회적 이슈가 됐던 것도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에 KBL 원주 DB 이상범 감독의 '칭찬 전략'은 하위권 팀을 순식간에 우승권으로 만듬과 동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원리는 간단하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이해를 시키는 교육을 하면 된다. 암기는 유통기한이 짧지만 이해는 유통기한이 길다. 이해를 통한 깨달음을 주기 위해 칭찬을 한다면, 오랫동안 학습자의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다.


좋은 리더에 대한 고민을 늘 한다. 내 스스로를 더 가꿔서 '본보기'가 되야 한다는 압박을 늘 받았다. 단 이 경우는 좋게 작용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이미 벽을 설정한 리더와 구성원에게 제 아무리 좋은 예시를 보여주더라도, 차이를 좁히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밑바닥에서부터 액션이 중요하다고 깨달았다. 보다 더 동료들을, 멘티들을, 구성원들을 파악하고 최대한 많은 반응을 보여줘야 한다. 베풀어야 한다. 과정에서 벽만 만들지 않는다면 계속된 스토리를 만들게 되는 것 같다.


- 처음 배울 때 이상한 것 : 솔직함, 인내심, 꾸준함, 당당함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자만했던 옛 시절을 기억하기 싫어서다. 트라우마다. 잘못된 생각으로 신의를 잃고 제한된 관계를 받아들여야했던 상황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무수하게 많은 시간을 솔직하지 못했고 꾸준하지 못했으며 당당하지 못했다. 그 시간을 바보같이 참은 것을 인내심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잔혹동화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모르는 것을 묻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20년된 식당의 특제소스 비법을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업적을 이룰 것도 아니다. 솔직함을 배우는 법은 나를 이해하는 것부터 출발하는 것이였다. 이걸 느끼게 된 이후, 무언가를 배울 때 행복해졌다. 앞으로도 밑바닥에서 배울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솔직함만큼 중요한 것이 인내심과 꾸준함이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솔직함의 결과물이라면, 이를 유지하는 것은 인내심과 꾸준함이 다. 매사 모든 것에 꾸준할 수는 없다. 그럴 때 당당하게 비즈니스라고 인정하자. 선수는 선수들끼리 알아보게 되있다. 그정도 매너만 지켜준다면 당당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 기회는 그렇게 많이, 자주 오지 않는다


농구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10점, 20점이 뒤집어지곤 한다. 흐름을 잡았을 때 놓치면 더 많은 시간 투자와 희생이 뒤따르곤 한다. 어느 스포츠 종목이나 마찬가지지만 기회는 절대 자주 오지 않는다. 잔인하게도 세 번 조차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다만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은 불운의 여부를 떠나 기준의 차이인지 꼭 확인해봐야 한다. 내 스스로 기회의 기준이 다를 때도 있다. 그것을 알고 설정한 것인지, 한 순간의 욕심이 이상향을 만든 것인지 알아야 한다. 


기회의 확률을 높이려면? 뻔한 얘기지만 준비를 해야 한다. 적어도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준비 말이다. 꿈도 꾸고 글도 쓰고 말도 많이 해보고.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에서 잠시 옆을 볼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도 또 다른 기회를 맞이할 준비가 되곤 했다. 


그래서 요즘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다.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데. 나에게 온 지금 이 기회가 과연 '최선'의 기회가 맞을까? 숨 한번 고르면 더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차라리 몰랐으면 싶을 때도 있다. 아이러니다.


- 내겐 익숙한 하루, 하지만 누구에겐 특별한 하루


요즘 운동선수에게 매우 중요시되는 덕목이 있다. 바로 '팬서비스'. 과거 프로농구 선수가 어린 팬과 하이파이브를 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청난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선수에게는 그저 패배했던 날들 중 하루였지만, 어린이 팬에게는 어쩌면 처음 농구장에 대한 기억을 가져갔을 수도 있는 날이었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포츠캐스터에 중요시되는 말 중 하나다. "캐스터는 매일 보는 홈런을 마치 처음 본 것처럼 반응해야 한다"  또 글쓰는 사람도 내 글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전해준다는 마음으로 써야 한다. 


그래서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싫었다. 차별화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누군가의 특별한 하루에 내 글이 특별해질 자신이 없었다. 기자들이 '발제 발제 발제'이러면서 현장을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한 편으로 존경스러우면서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창작의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아픈 고통 중 하나라고 믿는다.


오늘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을 일을 찾고 있다.


- 청춘이라는 주제로 원고를 청탁받는다면?


슬램덩크를 청춘에 많이 빗대서 표현하곤 한다. 만화 주인공의 배경, 그리고 당시 그 만화를 지켜본 이들이 모두 '청춘'이라는 키워드에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작가는 이 청춘을 농구계의 대표 스타 마이클 조던에 비유했다. 진짜 자신의 일인 농구를 사랑했고, 업으로 삼는 농구를 즐겼다. 즐기기 위한 여러 장치도 마련했다. 주위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산 것, 그것이 곧 청춘이였다.


일에만 쫓겨서 살면 청춘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었다. "취미와 업은 구분해야 해"라고. 아직 나의 정답을 찾지는 못했다. 단,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으면 그 중 하나를 업으로 삼는다고 내 청춘이 무너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청춘은 아픔이다, 도전이다 등등의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을 지혜롭게 벗어날 방법을 '도전'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말하는 청춘 기간 동안에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일단 행운이다. 만약 무언가를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눈 앞에 놓여진 현실이 어렵다면, 아직 청춘이 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청춘의 정의를 바꿔놓고 그 글자를 떠올린다면 더 슬프지 않을까. 나는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에 대한 순간, 기록을 그래서도 계속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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