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RO
MBTI 테스트가 한창 유행할 때 나도 성격 테스트를 해봤다. 결과는 'ESFJ'. 결과표를 받고 이런저런 해설을 보다보니 내 성격하고 너무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계획적이고, 인싸가 되고 싶어하는 '노력형 아싸'다. 사회에 덩그러니 놓여진 이후 많은 성격이 변했고, 이를 통해 성공의 맛과 실패의 맛을 점점 보고 있다.
>> MAIN
나는 거의 20년 가까이 꿔온 커리어와 관련된 꿈이 있었다.
그 커리어를 만들어보기 위한 인생 설계를 스무살 이후 부터 진행했다. 95%이상 성공했다. 대학교에서 수업 하나를 들을 때도,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군대를 갈 때도, 동아리를 할 때도 꿈과 연관지었다. 모든 것이 계획되었고, 그 계획에 함께할 수 없는 일상들은 관심 밖으로 멀찌감치 밀려났다. 돈이 필요할 때도 커리어와 연관지을 수 있는 것 위주로만 했기에, 많은 돈을 벌지 못해도 그저 좋았다. 오로지 커리어를 위한 최소한의 리스크를 안고 시간을 투자해왔다.
근데 때때로 계획을 만들 수 없는 결정의 순간이 있었다. 아무도 가이드를 제시한 적이 없을 때.
비교의 대상이 없으니, 스스로 개척을 할 수 밖에 없는 길이었다. 이럴 때 선택은 오히려 더 과감해졌다. 아무도 하지 않는 방식대로 미국 여행을 떠나보고, 장교를 해보면 어떠냐는 별로 친하지 않은 선배 제안에 많은 생각을 갖지 않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불확실성에 투자해서 얻어낸 결과물 그 자체가 너무 좋았다. 사실은 인싸가 되고 싶은 노력형 아싸의 '쿨함'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 이 계획의 자아와 즉흥의 자아가 20대 끝자락에서 맞붙었다.
늘 커리어를 앞세워 나를 지배했던 계획성이, 점점 목표가 구체화되고 세분화되는 과정에서 현실성을 잃어간 것. 가능성이 1%라도 있는 결정을 위해서 달려왔는데, 그 1%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것이 나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라는걸 인식한 순간 차선책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차선책을 위해 필요한 것은 돈과 시간. 모든 사람들이 돈도 많으면 좋겠고, 시간도 있으면 좋겠지. 나 또한 되게 단순한 상황에 놓여진 것을 깨달았다.
차선책을 머릿속에 그리는 과정에서 실제로 취업을 해 회사를 다녔다. 0.xx% 남은 꿈을 지키면서, 시간도 벌고, 돈도 벌어보자 생각했다. 계획의 자아가 만들어낸 플랜B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자 즉흥의 자아가 물었다. 최소한의 돈, 그리고 평균적인 시간만 보장되면 꿈을 지킬 수 있느냐고? 진짜 우연히 여러 영상들을 별 생각 없이 보다가 그렇게 p2e를 알게되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주식도 해본 적 없고, 부동산도 모르며, 기숙사가 아닌 자취방 한번 내 돈주고 들어가보지 않은 애송이가 남들이 안하는 분야의 투자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결과물이 생겼다. 외부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던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들과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많은 시간을 벌었다. 비교가 됐다.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꿈이 아닌 커리어'가 내 진정한 꿈을 위한 차선책이었냐고.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퇴사를 해서 지금은 커리어적으로 정체되었지만, 기회가 주어질 시간은 분명 올 것이라고 좋게 생각한다. 그 시간동안 0.xx%를 깨부시는 방법 보다는 나의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을 보다 빛나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게 더 현명하겠다고 느끼고 있다.
글도 쓰고, 방송도 하고 싶고, 누굴 가르치는 것도 좋고. 배우고 싶은것도 너무 많다. 그래서 이것들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짜고 싶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는 요즘은, 한 3-4년 뒤를 바라보고 세우는 계획이 그 때가면 다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글을 쓸 수 있을 때 쓰고, 방송을 할 수 있을 때 하고, 누굴 가르칠 기회가 왔을 때 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됐을 때 하는게 지금 트렌드에 맞다고 생각한다. 저걸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직업이 과거엔 없었다면, 2021년엔 있다는 점도 다르고. 그래서 적어도 남들과 비슷하게 주어진 시간과, 자기만의 방법을 통해 갖춰놓은 돈은 필요하다.
참... 사람 사는 방식이 쉽게 바뀔 수가 없다. 20대 막바지가 되고 30대를 준비하는 나는 남들과 같은 틀은 유지한 채 내가 하고 싶은 커리어를 그 안에 넣고 평범하게 살 것이라 생각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