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달리고, 맞추고, 쓰며 살아온 시간
당신이 몰입하는 취미 혹은 관심사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즐기고 알아보는 과정에서 재미와 만족을 느끼는가?
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취미 혹은 관심사가 달라져왔다. 첫 취미는 블로그 운영이었다. 무언가를 기록하고, 촬영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일상을 정리하는 느낌이라 마음이 후련해진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14년을 맛집 블로거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혼자 활동하고, 블로거 모임에서 함께 활동하며 많은 추억을 쌓았고, 또 배움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취미는 비스포크 옷이었다. 기성복이 아닌, 공장형 맞춤이 아닌 아틀리에가 있는 공간에서 대표님과 테일러분이 직접 초가봉과 중가봉을 봐주는 곳. 그래서 내 체형의 장점은 돋보이고, 반대로 단점은 커버하는 옷이 만들어지는 신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수트를 시작으로 스포츠코트, 40여 벌의 맞춤 셔츠까지. 이 외에 술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술자리도 참 많았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고 나누며 보낸 시간들. 물론 지금은 정 반대의 모습이다.
세 번째 취미는 러닝과 헬스였다. 한 달 반 이내에 10kg씩 총 세 번 감량에 성공하며 운동에 재미가 들렸던 시기이기도 했다. 또 살면서 제일 힘든 시간이 찾아왔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러닝을 시작했고, 더 몰입한 결과 지금 나는 아마추어 마라토너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네 번째 취미는 감정 일기와 브런치 작가 활동이다. 퇴근 후 저녁 루틴인 질문이 있는 일기장에 최대한 디테일하게 고민하고 답을 적어 나가는 과정에서 인지적 재구조화 학습이 일어나는 것 같다. 일상의 복잡한 일들에 대해 우선순위가 정해지고, 감정도 내려놓을 수 있는 좋은 루틴이 체화되어 만족도가 꽤 높다. 마라톤 부상 시기에 글을 쓰다 보니 브런치 작가도 되고, 결국 책도 출간하게 되었다.
얼마 전, 9년 전 관심사였던 비스포크 옷의 취미를 잠시 살려보고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춘추용 스포츠코트를 제작하고 있다. 변해버린 신체 사이즈를 다시 채촌하고, 어제는 초가봉도 보고 왔다. 이제 가봉을 거쳐 완성복도 나올 것이다. 예전의 옷들이 작아져서 입을 수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새로운 원단으로 하나 맞추니 초가봉, 중가봉, 완성복을 기다리는 설렘도 느낄 수 있다.
맞춤 옷 자체가 주는 만족감도 있지만, 그보다는 기대하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 속 마음. 잠시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바깥 세상으로 나와서 세상을 즐기고, 다시 마라토너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그렇다면 동시에 모든 것을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신은 여러 개의 취미에 몰입해 꾸준히 즐길 수 있는가?
시간의 한정성
동시에 여러 가지 취미나 관심사가 있으면 스트레스일 수 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취미 혹은 관심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적 전도 현상이 생기면 과감하게 조정해야 한다. 나에게는 블로그 활동과 러닝을 할 때가 그랬다. 수면 부족 상황까지 발생하고 이로 인해 건강이 더 악화될 수 있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과감하게 블로그는 내려놓고, 러닝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예산의 한정성
마라톤에도 꽤 많은 돈이 들어간다. 러닝화는 안정화, 중립화, 쿠션화, 카본화 등 다양하다. 남들이 좋다고 해도 내 발 모양과 착지법에 잘 맞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그렇게 구매했다가 중고 판매 혹은 주위에 나눠준 러닝화도 꽤 된다. 마치 소개팅을 했는데 누구나 좋아할 만한 호감형이지만, 나에게는 안 맞을 수 있는 이치처럼.
일반 훈련용으로 신는 러닝화는 500~700km 신으면 다음 신발을 구매한다. 미드솔의 변화가 가장 크게 느껴지고, 자칫 오래 신으려다가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20~30만 원대 신발이고, 신발장에는 10켤레 가까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계절별 러닝 복장이 필요하고, 마라톤 참가 비용이 있다. 참가 비용은 보통 7~10만원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마라톤을 하면서는 비스포크를 맞춰야겠다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이 너무 빠져서 한참 동안 살이 찌지 않다가 다시 원래보다 조금 더 찐 체형이 된 것이다. 마라톤 부상기에 잘 먹고, 재활 훈련하고, 글을 썼던 시기에 살이 쪘던 것이다. 그래서 예전 맞춘 옷이 더 이상 맞지 않아 새로운 원단으로 맞춤을 해야지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도 법과 상식 안에서 좋은 취미 활동을 가지고, 꽤 깊이 있게 정점을 찍어보기도 하면서 지내왔던 시간들 같다. 나쁘지만 않다면 뻔한 일상 말고, 설렘이 녹아드는 일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보는 것은 어떨까?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가는 오늘 점심시간에 한강을 뛸 생각에 설레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