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엪지의 인터뷰 시리즈 [EFG TALKS]의 핵심 키워드는 ‘발견과 알아차림'입니다. 이엪지는 자신만의 예민함으로 세상을 직시하고, 일상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느끼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전에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운동연대에서 활동하셨다가, 지금은 청소년인권연대 ‘지음’에서 상임활동가로 계시죠. 이전에 활동하던 곳과는 결이 조금 달라 보여요.
이선 : 현재에도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데요! 크게 봤을 때는 청소년인권을 확대하기 위한 활동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있는 구체적인 방식이나 목표는 다른 것 같아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다양한 청소년·교육단체 등 37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서 청소년인권과 관련된 입법 추진과 요구를 하는 곳이에요. 2017년도에 출범해 청소년 참정권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실제로 18세 선거권이라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도 했죠.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는 지속가능한 청소년인권운동을 고민하면서 2018년도부터 활동을 준비했고, 긴 준비 끝에 2020년에 출범했어요. 첫 활동으로는 나이 차별 언어문화 개선 캠페인을 시작했는데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문화보다는 법과 제도를 바꾸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해요. 문화를 바꾼다는 게 막상 잘 보이지 않기도 하고, 당장의 결과물을 내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법을 바꾸는 것만큼 문화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바뀐 법이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서라도, 문화를 바꾸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게 필요하죠.
맞아요. 법뿐만 아니라 문화나 인식도 같이 바뀌어야,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진행 중인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캠페인도 그런 의미에서 시작한 건가요?
이선 : 그렇죠.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는 나이주의적인 언어문화를 바꾸려는 지음의 팀 활동 중 하나인데요. 나이주의적 언어문화를 비판하는 건 사실 1920년대 '소년운동'에서부터 이야기했던 것이기도 해요. 가령 어린이날을 떠올리면 사람들이 어린이에게 선물 주는 날로 생각하기 쉽잖아요. 하지만 사실 어린이날은 어린이에게 경어를 사용해 달라는 등, ‘어린이 해방’을 외치는 날이었어요. 저희는 이렇듯 반말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하고, 하대의 문제나 ‘급식(충)’, ‘초딩’ 등의 호칭 등 일상 속 차별적인 언어를 짚어나가고 있죠. 캠페인 후반에는 교육감협의회에 요구해서, 교육청과 학교에도 이런 문화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볼 계획이에요.
“‘학생님’이라는 호칭은 왜 어색할까"라는 글을 무척 인상 깊게 봤어요.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차별적 언어도 그렇고 사회 전반에 ‘나이주의'가 정말 뼛속 깊이 새겨진 거 같아요.
이선 : 청소년인권운동에서는 나이주의, 보호주의, 능력주의 이 세 가지를 연결 지어서 다루려 하고 있어요. 나이주의를 기반으로 청소년을 차별하는 많은 사회 구조가 작동하는 것 같거든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청소년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보호를 진짜 보호라고 할 수 있을까’, ‘사회의 어떤 기준이 어린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능력이 없다고 여기게 만드는가’ 등의 질문을 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형태의 안전과 보호는 권리인 건데, 청소년의 보호는 권리의 측면에서 이야기되지 않거든요. 이외에도 나이가 많을수록 능력이나 자격이 있다고 평가받기도 하고, 그런 자격들도 더 갖추기 쉬운 것들이 사회 구조적인 문제고 차별이라 생각해요.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캠페인도 나이 차별적인 언어문화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다양한 측면에서 청소년을 차별하는 태도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또 청소년인권이라고 하면 청소년 참정권이나 학생(학교 내 청소년)인권이 주된 이슈로 여겨지는데요. 사실 그것 말고도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 문제들이 많아요. 청소년이 일상에서 폭력적인 상황이나 차별적인 문제를 겪는 경우는 다양하거든요. 지음이 프레시안에서 <청소년인권을 말하다>라는 기획 연재를 하는 것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인권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고민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으면 해서 시작했죠.
저도 뉴스레터를 쓰면서 느꼈지만, 자료가 많이 없더라고요. 사회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청소년 인권 이슈가 여전히 많은 것 같아요.
이선 : 너무 많죠. 학교 밖 청소년이나 거리 청소년에 관한 기존 정책만 봐도 다시 집이나 학교로 복귀하는 게 중심이죠. 청소년 주거권 측면에서는 전혀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요. 청소년 참정권을 이야기할 때도 주로 몇 살까지 투표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집중하는데, 청소년의 포괄적인 참정권 보장이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정치의 현실을 생각했을 때 청소년이 출마가 가능해져도 엘리트주의적인 정치 시스템이 유지된다면, 현실적으로 출마를 하거나 당선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더 진지하게 청소년의 차별을 들여다봤으면 좋겠고, ‘이거 해줬으니 됐지?’ 이런 식의 반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소년법’에 관해서는 여론이 무척 엄격하잖아요. 더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데, 사실 법 내부에 문제가 많아요. 소년법에는 우범소년 제도가 있는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가출 등 범죄 우려가 있다는 것만으로 법원이 자유를 박탈하는 처분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제도예요. 죄를 범할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 권리를 침해하는 거죠. 비청소년이 비슷한 행동을 했을 때는 별문제가 안 되는 것도, 청소년이 하면 불법이 된다든지 이런 것들이 많아요.
가출을 했다는 이유로 우범소년이라고 간주하고 처벌하는 건, 사회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이선 : 학교에서 학교폭력은 개인에 대한 처벌이나 학교폭력의 가해에 대한 징계로서만 접근하고 있어요. 어떻게 폭력이 발생하게 되는지는 관심이 없는 거죠. 학생과 학생 간에 싸우는 폭력만을 학교폭력으로 정의하는 순간, 폭력을 전체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고 봐요.
또 사실 다른 폭력에 대해서는 용인하면서도 청소년이 일으킨 범죄는 유독 무게중심을 두는, 편중된 시각도 있다고 보거든요. 그걸 비청소년이 해결해 주는 문제로 변질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요.
맞아요. 어떻게 보면 선생이 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도 학교폭력이고, 대학에 가고 싶지 않은 청소년에게 대학을 강요하는 것도 학교폭력이잖아요. 저도 그동안 학생 간에 발생하는 폭력만 학교폭력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거 같아요.
이선 : 개개별 학생 간에 초점을 두고 학교폭력을 해결하려는 방식은 본질적인 학교폭력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학교의 폭력적인 문화나, 위계적인 문화에 접근하는 방식이 본질적으로 모든 구성원에게 똑같이 다가갈 수 있다고 봐요. 결국 공동체적인 해결이 필요한 거죠. 직장 내 폭력에 대응하는 매뉴얼들은 사회의 위계질서나 권력의 차이를 고려한 것들도 꽤 많잖아요. 학교의 모든 구성원에게 그런 식의 접근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학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청소년의 채식기본권에 대한 이선님의 의견도 궁금해요. 채식급식을 선택할 수 있는 학교가 점점 늘어나고 있잖아요.
이선 : 한계는 있지만 나아가는 기로에 놓여있다고 생각해요. 이전까지는 청소년이 무언가를 먹는 걸 정치적으로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급식충’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도 학생들이 '개개인의 선택권 없이 주어지는 대로 먹어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거였죠.
청소년 급식권에 관련해서는 ‘무상 급식’에 관한 논의가 전부였어요. 그런 점에서 채식기본권은 청소년이 무언갈 먹거나 삶을 영위하는 조건으로서 음식을 선택한다는,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고 봐요. 앞으로는 급식도 ‘내가 먹을 걸 내가 결정하겠다’는 의미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지금의 채식기본권은 청소년인권 관점에서 ‘인간의 선택권'으로 보기 때문에, 동물권의 관점으로 봤을 땐 확실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뭔가를 가져봐야지 포기할 줄도 아는 거잖아요. 청소년에게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야 하고, 자신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여건이 되어야 하는 건데, 대부분의 학교 시스템은 표준적이고 획일적이죠. 그런 지점들이 채식을 비롯해서 다양한 청소년 인권을 침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봐요.
이전에 아름다운재단 인터뷰에서 “청소년 인권 활동으로 밥 먹고 살고 싶다”라고 말씀하신 걸 보고 무척 공감했어요.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런 삶을 만들어 가는 방식에 대해 같이 얘기해보고 싶어요.
이선 : 저는 청소년인권운동이 대중화되고, 지지와 후원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열악해서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것들을 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인권운동으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 일로 먹고살고 싶은 것도 맞지만요(웃음).
격하게 공감합니다(웃음). 그렇다면 지금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이선님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선 : 일단 저는 좀 오기가 있는 편이에요(웃음). 사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학생회를 하면서 학교 측과 갈등이 정말 많았어요. 친구들과도 사이가 안 좋았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저한테 “그때는 미안했다”거나 “지금 생각해 보니 네가 하는 일들이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라고 연락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게 저한텐 큰 힘이 됐죠.
저는 사회 전반적인 변화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제 주변이 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안전하게 대화할 수 있는 존재들이 많아지고, 그걸 체감해나가는 게 실질적으로 큰 힘이 되죠. 청소년인권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했을 때, 전혀 공격받지 않는 걸 확인해나가는 것. 그게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들으면서 뭔가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는데요. 어쩌면 이선님이 오기를 갖고 지금까지 계속 그 자리에 있어온 시간들이 주변의 ‘변화’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어요. 이선님의 얘기를 들으니 저도 용기가 생기는데요. 앞으론 저도 주변에 조금씩 제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해보려고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선 : ‘청소년을 사랑한다’ 거나 ‘아이를 좋아한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 봤으면 해요. 그 집단을 다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오만하달까, 개개인의 관계를 지운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사랑을 일방적으로 쏟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그냥 비슷한 사랑의 크기를 서로 주고받았으면 좋겠어요. 청소년들은 “난 세상의 모든 어른들을 사랑해” 이런 얘기 안 하잖아요. 청소년이 스스로 힘을 가질 수 있고 사회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놓일 수 있게끔 하는 일들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를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