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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FG 이엪지 Dec 27. 2021

우리는 모두 '고통을 느끼는 동물'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활동가 인터뷰

안녕하세요! <식탁을 전환하는 기후 활동가들>(이하 ‘식전기’)예요. 이엪지를 대신해 오늘 동물권 단체인 동물해방물결과 함께한 인터뷰를 여러분과 나누어보려 해요. :)


저희는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먹거리의 전환이 그 중요성에 비해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껴왔어요. 축산업 같이 먹거리에 직결된 산업은 기후생태위기를 악화시키고 있고, 기후위기는 인간을 가장 가치 있고 우선적인 존재로 여기는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해요. 그래서 결국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데 있어서 누구나 가져야 할 권리를 이야기할 때 '동물권'을 함께 이야기하고, ‘사람’의 경계를 넘어 ‘모든 생명’을 이야기 할 필요를 느꼈어요.


그래서 잘 만나지지 않는 기후위기 대응 운동과 동물권 감수성을 이어보려고 종종 밤마다 모인답니다. 두 활동의 교차성을 짚어나가다 막막해지기 시작할 때 쯤, 문제의식에 공감해주고 이야기를 나누어줄 동물권 활동가 당사자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동물권 활동가의 이야기에 귀기울였을 때, 연결되는 지점에서 시너지를 내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오늘은 국내에서 동물권 운동을 활발히 이어나가는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이지연 활동가를 만나 나눈 대화를 들려드릴게요. 이지연 활동가님의 삶과 가치에서부터 <동물해방물결> 활동을 통해 바라본 동물권 운동의 현실, 기후 운동과 동물권 운동이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 지 이야기 나누어보았어요. 




물결을 일으킨 단 하나의 만남 


개도살 금지 서한 전달 기자회견 발언 중인 이지연 대표 ©동물해방물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연 : 안녕하세요~ ‘동물해방물결’에서 활동하는 이지연입니다.


 EFG 독자의 많은 분들도 저희와 같이 동물해방물결의 활동을 응원하고 궁금해할 텐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활동가를 통해 단체를 알게 되기도 하는데, 지연님이 동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여쭤보고 싶어요. 


지연 : 어렸을 때부터 동물원을 좋아해서 자주 가다가, 대학생 때 지역의 한 사설 동물원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인공 조경 같은 것도 없이 콘크리트로 된 우리 안에 호랑이가 혼자 덩그러니 있는 모습에 정말 충격을 받았는데요. 사육사가 던져준 생닭은 쳐다보지도 않고 사육사가 들어간 뒷문을 계속 치면서 포효하는 모습에 그의 불행이 온몸으로 느껴졌고, 너무 화가 났어요.


당시에는 소, 돼지, 닭은 개, 고양이, 동물원의 동물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호랑이를 만나고 막연한 고민이 시작됐던 것 같아요. 그때 생긴 관심으로 책 <동물해방>도 읽고, 공부도 하고, 여러 경험을 하면서 개별 개체의 관점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그 호랑이의 자리에, 축산동물의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공감과 연결이요.


세상이 처음부터 “그 어떤 동물이든 고통 없이 살아갈 권리를 가진 존재이며, 인간은 그들을 착취할 대상으로 여길 권리가 없다”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밀렵, 서식지 파괴, 동물원, 공장식 축산, 상업적 어업은 존재하지 않았겠죠. 그래서 저는 모든 동물이 고통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로 ‘동물해방물결’을 만들었어요. 


호랑이를 만난 가장 첫 순간부터 자세히 이야기를 해 주셔서 이지연 활동가님의 감정을 가까이 느낄 수 있었어요. 개별 존재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지연 : 맞아요. 어떤 사람은 계기가 없어서 공감을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같은 계기를 가져도 공감을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래서 저는 윤리 측면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축산업, 기후위기가 내가 사는 삶터인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측면, 나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측면에서의 접근도 활성화되어 서로 상호보완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많이 해요.


현재 ‘동해물’에서 가장 중요하게 진행하고 있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지연 :  캠페인 부문에서는 개 식용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인간 죽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듯, 모든 동물의 도살도 금지된 사회를 만드는 목표인 상황에서, 먼저 더 많은 공감을 불러올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라는 한 종을 산업적 착취구조에서 구해낼 수 없다면, 다른 동물의 착취를 금지시키는 것도 미뤄질 수 있기도 하고요. 개의 식용을 금지시키는 경험이 나중에 다른 동물을 법적으로 해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강력한 선례이자, 저희의 경험치를 확장하는 운동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소 생추어리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소를 만나고 조금이라도 연결되어, 새로운 관계를 맺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한 프로젝트인데요. 지난 8월 농장에서 구조된 소들은 다 잘 지내고 있어요. 지금은 임시보호처를 떠나 완전히 정착할 수 있는 땅을 찾고 있고요.


또 저희는 커뮤니티로서도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탈육식과 비거니즘을 확산하기 위해 '물결'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고, SNS와 비건 클럽을 통해서도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어요. 일상 속에서 외롭고 힘들게 비건지향을 하고 계신 분들도 끈을 놓치지 않을 힘을 얻을 수 있고, 좋은 정보도 공유하고, 서로 연결될 수 있게끔 하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어요. 


동물해방물결 공식 홈페이지 (https://donghaemul.com/donate)


해방의 물결이 파도가 되기 위해 필요한 힘 


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면서 비건지향인들과의 연결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활동을 하실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지연 : 모든 비영리 활동 단체라면 공감하실 것 같은데, 모금이에요.(웃음) 법 개정과 축산업의 쇠퇴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인력이 필요하고 사업비용이 필요해요. 활동가는 많은 일을 헌신적으로 하고 있지만, 생계가 어려우면 아무래도 활동을 지속하는 게 어렵죠. 그래서 후원으로도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알리고 있어요.

어떤 집회나 캠페인, 조사활동을 해도 정부나 국회는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어요. 실제로 지난번 국회 때 발의한 법안이 폐기될 땐 큰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는데요. 이제는 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뒷받침되는 운동이 계속 진행되고 있어야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원하는 법 개정까지 이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동물해방물결이 이런 운동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이번 인터뷰가 조금이나마 후원 부분에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이지연 활동가님은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치열하게 활동하고 있는 직업인이자 사회인이기도 하잖아요. ‘동물권 활동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어땠을지 궁금해요.


지연 : 요즘은 ‘동물보호 활동가’라고 하면 얼추 아는 것 같은데 ‘동물권 운동가’라고 하면 잘 모르거나 너무 급진적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비건 지향인의 수를 늘리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우리의 메시지가 소규모이거나 급진적이고 헛된 생각이라는 이유로 외면당하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 비건을 라이프스타일로서 즐기는 것과 더불어, 동물 착취를 없애고,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의미로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도 늘어났으면 해요. 나아가 모든 동물이 해방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제도 전환을 지지하는 유권자로서의 역할 인식도 퍼뜨리고 싶어요.


이렇게 들으니 그간의 동물해방물결의 활동이 더 잘 이해가 되어요. 비건 클럽이나 읽기 모임도 생각나고요(웃음). 앞전에 ‘개도살 금지법’이 표류되는 과정에서 무력감을 느끼셨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같은 마음을 가진 활동가로서 깊이 공감했는데요. 이 일을 지속하게 하는 지연님만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연 : 일단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모여 같은 일을 도모할 때 굉장히 큰 동지애를 느껴요. 요즘 비건클럽 활동할 때 특히 그러는데요. 잠입 조사나 추적 조사와 같은 힘든 일을 같이 해 나갈 때나 은 위험성, 예측 불가능성을 하나씩 뚫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동지애가 운동을 그만두지 않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에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는데도 가끔 그냥 다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요. 이 사람들과 일을 하는 이 순간, 과정 자체가 역사와 의미이고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면 무기력감과 피로감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것 같아요. 



두 운동이 함께가려면 


이번에는 기후운동과 동물권운동의 교차지점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동물권 활동가로서 기후운동을 어떻게 보시나요?


지연 기후위기가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는 세상에서 두 운동은 분명 연결 지점이 있지만, 출발하게 된 철학이나 목표를 들여다보면 완전히 같은 운동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해요. 다만, 각자의 기능을 하는 운동이 각자의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으면 서로 영향을 주게 돼있어요. 운동이 커질수록 서로 더 인식하게 될 것이고, 시대적으로는 동물권과 기후 운동이 더 교차하고, 섞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운동을 하면서도 채식을 고려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는 점은 아쉬워요. 하지만 분명 우리에겐 ‘생태위기’라는 교집합이 있으니 공감할 수 있고, 공감이 더 커지기 위해서는 서로 소통을 많이 해야겠죠. 각자의 운동 경험, 유용했던 스킬에 대한 공유가 많이 이루지고 사람끼리 통하면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교집합을 찾아 함께 나아가는 연습도 필요하겠고요. 


기후 운동 관점에서 먹거리 전환을 이야기할 때는, 비인간동물을 그 자체로 보지 않는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그들의 생명권이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닌, 인간이 잘 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불과한 거죠. 기후 운동과 동물권 운동, 기후위기와 동물권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동물권 활동가로서 기후 운동을 하는 저희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지연 : 기후위기 논의에서 종차별도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동물이라는 것을 인지했으면 좋겠어요. 인간만을 위한 환경운동은 이기적이죠. 내가 사는 삶터를 지키고 싶다면, 공익의 테두리 안에 모든 동물이 들어가야 해요. 축산업이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이기도 한 만큼 높은 비중으로 다뤄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든 차별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지금보다 훨씬 진지하게 바라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걸 찾는 것에서 나아가, 기저의 인식 자체를 바꾸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그게 운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되묻고 싶어요. 왜 동물권이 중요하고, 중요하다면 어떻게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지연 : 음.. 불쌍하니까요. 저는 동물이 불쌍하다고 얘기하는 것에 머뭇거림이 없어요. 불쌍하다는 언어로는 동물을 약자로만 바라보게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쌍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고통받는 동물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요. 이것을 사람들도 느낄 수 있으면 해요. 제가 호랑이를 만나 모든 여정이 시작되었듯, 실제 동물과의 만남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 생추어리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죠. 


©동물해방물결


채식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져가고 있는데, 축산업 자체에 대한 비판과 논의는 좀처럼 확산되지 않는 것 같아요. 이지연 활동가님도 그 지점을 크게 느끼고 계실 것 같은데요. 


지연 : 음..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먼저 축산업의 잔인한 현실을 알려 소비자들의 인식을 높이는 방법이 있어요. 아무도 가지 않는 현장에 들어가서 동물이 착취, 감금, 살해되고 있는 실상을 바깥으로 알리는 것이 동물권 단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고, 거기서 모든 운동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또 기업의 실상을 알리는 방법이 있겠죠. 예를 들면 하림 치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리는 방법이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대형 축산 기업들에 대한 캠페인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내일 당장 동물이 해방이 된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요? 상상해보신 적 있나요?


지연 : 모든 사람이 비건인 세상. 모든 존재가 최대한 자유로운 세상. 아무도 침해적인 방식으로 다른 동물에게 의존하지 않는 세상. 아무도 동물을 먹고 입고 쓰지 않는 세상. 인간에 의해 착취되고 살해되고 학대받는 동물이 없는 세상.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태어나는 동물이 없는 세상. 제게는 이것이 제일 중요해요. 동물들은 이런 삶을 선택하지 않았는데 인간에 의해 태어나서 고통을 겪고 있잖아요. 낭만적으로 표현하자면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지금 당장 동물들이 처한 현실이 행복과는 극한으로 거리가 멀어서, 유토피아적인 상상을 하기가 쉽지 않네요.


우리는 모두 '고통을 느끼는 동물'이라는 걸 인지했으면 좋겠어요. 모든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는 자세가 우리 사회의 모든 차별 문제를 해결할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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