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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FG 이엪지 Apr 01. 2022

기후위기와 식량위기

***이 글은 2020년 7월 27일 '에코티(현 이엪지)'에서 발송한 뉴스레터의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기후위기와 식량위기



최근 들어 부쩍 벌레와 관련된 뉴스가 많아졌습니다. 인천을 포함한 일부 지역에서 깔따구 등의 유충이 수돗물에 섞여 나왔는가 하면, 서울 도심에서는 대벌레가 의자나 가로등에 잔뜩 붙어있었다고 해요. 독나방과의 매미나방은 충북 단양에서 시작해 중부 지방까지 세를 넓혔다고 합니다. 여름이라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전에 비해 개체 수가 급증한 것이 사실입니다.


곤충의 개체수 급증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도와 예멘, 그리고 중국에서는 거대한 규모의 메뚜기 떼로 고생하고 있거든요. 실제로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겨울철 이상 고온 현상이 곤충의 개체수 급증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곤충의 개체수 급증과 더불어, 또 다른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바로 ‘식량 위기’인데요. 다포스포럼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GDP 절반 이상이 자연에 크고 작게 의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손실에 쉽게 노출되고 있는 거죠. 특히 농업과 식음료, 건설 분야가 기후위기에 취약한 산업으로 꼽혔는데요. 기후위기에 노출된 산업의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 규모는 자그마치 5경이나 된다고 합니다.


기후 위기는 곧 경제 위기와 다름없습니다.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지금, 도심 속에 나타나는 수많은 곤충들은 우리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19발 식량위기?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식량 수출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인 인도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가 국경을 폐쇄해 쌀이 항구에 방치되어 있다고 해요. 세계 3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에서도 쌀 수출을 작년보다 40% 감축해 수출하고 있고, 캄보디아에서는 모든 쌀과 생선의 수출을 아예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식량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적극적으로 식량 비축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집트와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와 알제리, 터키 등 주요 곡물 수입국들은 '곡물 사재기'에 나서고 있죠. 그로 인해 국제 곡물가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타국의 식량 수출 제한은 한국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OECD 회원국 평균 곡물자급률은 110%인 반면 한국은 약 24%로 매우 낮은 수준이고, 식량자급률은 OECD 상위 30개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쌀을 제외한 국내 연간 식량 소비량의 약 8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죠.


곡물 자급률뿐만 아니라 한국은 ‘식량 주권’ 자체가 낮은 나라입니다. 여기서 식량 주권이란, 쉽게 말해 식량에 관한 ‘자주권'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는 지속 가능하며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있어, 일체의 부당한 간섭과 강요를 배제하고 자주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번 그린 뉴딜 계획에서도 여전히 '농업'은 소외되었습니다.



전 세계 곡물의 3분의 1은 어디로 갈까?



이렇게 식량 문제가 떠오르고 있는 지금, 전 세계 곡물의 3분의 1이 인류의 식탁이 아닌 축산업계로 간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도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저자들은 '육류 소비 증가에 따른 단작의 끝없는 확대'를 식량 위기의 주범으로 꼽습니다. 여기서 단작이란, 하나의 작물만을 지나치게 재배하는 것을 뜻하는데요. 현대 사회의 지나친 육류 소비와 공장식 도축으로 곡물의 단작은 점점 더 성행하고 있습니다.


소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약 15,000L의 물이 필요한데요. 뿐만 아니라 소는 7-8kg의 곡식을 먹어야 1kg의 체중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겨우 200g의 소고기를 위해 약 1.6kg의 곡식을 소비해야 하는 것이죠. 


특히 대두의 경우, 전 세계 생산량 중 2%만 사람들이 소비하고, 98%는 사료로 이용하는 실정이라고 하는데요. 미네소타대학교의 생태학자 폴 웨스트 교수는 '비'식용으로 쓰이는 식량의 분량이 전 세계에 걸쳐 40억 명 분에 이른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현재 사료를 재배하는 경작지가 전 세계 농지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죠. 브라질에서 수출되는 대부분의 콩 또한 사람이 먹는 것이 아니라 주로 동물 사료나 바이오디젤에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계는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들보다도, 인류가 먹는 ‘고기’를 위해 곡물을 획일적으로 경작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비효율적인 식량 배분 방식인가요?



불타는 아마존도 결국 소고기 때문?


단작이 성행하게 되면 병충해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는데요, 곡물 기업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유전자 변형 식물을 만들어냅니다. 실제로 세계 5대 기업이 유전자 변형 식물에 관한 특허를 장악하고 있죠. 이들은 매년 종자를 바꾸고 그에 맞는 비료와 농약을 따로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농민들에게 비싼 값에 구매할 것을 강요한다고 해요. 종자와 각종 비료, 농약 등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한 인도 농부가 무려 30만 여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참고 : <무엇을 먹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에코리브르)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인류는 동물에게 먹일 사료를 생산하기 위해 동식물이 사는 서식지까지 파괴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브라질에서는 고기의 사료로 쓰일 곡물과 대두 생산을 위해 아마존 열대 우림과 여러 초원을 파괴하고 있는데요. 브라질의 세라도 초원은 남미에서 삼림 벌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나무를 일일이 베는 건 너무 힘들기에 고의로 산불을 낸다고 해요. 



아보카도와 카카오에 숨겨진 문제들


사실 곡물뿐만 아니라 우리가 쉽게 접하는 바나나와 아보카도, 카카오에서도 여러 문제들이 얽혀 있는데요. 우리가 먹고 있는 달콤한 초콜릿의 이면에는 불법 농장과 아동 착취, 그리고 산림파괴가 얽혀 있습니다. 아보카도의 경우 물 부족과 산림 파괴, 그리고 탄소발자국 문제가 있죠.


인도네시아에서는 팜농장을 위해 원시림을 불태우다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요. 하늘은 뿌옇게 되고 6천여 만 명이 산불 연기에 노출되는 등 산불로 인해 수십 억의 피해가 발생했지만, 수습은 정부의 몫이었고 이익은 고스란히 다국적 기업에게 갔다고 합니다.


아동 노동 착취, 산림 파괴와 종 획일화 등… 이러한 문제들은 비단 카카오와 아보카도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팜유, 커피, 아몬드 등… 비슷한 일들이 너무나 많죠.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여전히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숲과 바다를 파괴하고, 그에 따른 책임은 주민과 동물들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대량 농업은 정말로 기아 문제를 없앨 수 있을까?



거대 곡물 기업과 성장주의자들은 “식량을 많이 생산할수록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농업의 기업화는 정말로 기아문제를 없앨 수 있을까요? 


에큐메니안의 보도에 따르면,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는 40%가 위에서 언급한 단작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단작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이유는 거대 곡물 기업들의 산업화된 농업 때문인데요. 곡물의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한 종류의 식물을 빽빽하게 심는 게 효율적입니다. 이렇게 획일화된 농업 방식은 땅을 황폐화시키고 자원고갈과 환경 파괴를 불러오죠.


그뿐일까요? 거대 다국적 기업은 곡물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근처 물을 독점하고 남용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호수 면적 세계 4위였던 아랄해가 이제는 겨우 10%의 물만 남아있다고 해요. 소농들이 써야 할 물조차 부족하다고 합니다. 결국 농사를 짓지 못하는 소농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도시로 떠나거나 곡물기업의 노동자로 취직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농촌지역의 붕괴는 고용위기와 이민,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집니다. 한국에서도 산업화로 인한 이촌향도 현상이 꾸준하게 나타나고 있죠. 매일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전체 농가는 단 100만 가구였다고 합니다. 결국 곡물자급률 및 식량 주권의 향상을 위해서는 소농가의 수익성을 개선하고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도서 <오래된 미래>의 저자이자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지역화 소비'를 주장합니다. 쉽게 말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를 줄이자는 건데요, 아파트 단지 내에서 가끔 열리는 작은 시장을 이용하거나 생협, 마르쉐 농부 시장 등 파머스 마켓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프랜차이즈 대신 동네 가게와 지역 소비를 늘리면, 대기업이 독점 중인 글로벌 시장과 로컬 시장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겠죠. 생태계에도 다양성이 중요한 것처럼, 각 지역의 문화와 생산품도 다양해야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마무리하며


처음에는 단순히 우리 집 베란다에 있는 방울토마토를 보며, '식물권에 대해 다뤄봐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식물권을 공부하면 할수록 산업화/세계화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직까지는 식물이 인류에게 '공존'의 개념보다는 '자원'의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조금 착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여러 세계적 문제를 알게 되어서 감사한 마음도 있고요.


또 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농촌, 농업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시각을 갖게 됐어요. 사실 "농촌이 어렵다"는 말은 예전부터 꾸준히 들어왔지만, "내 문제가 아니니까"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관련 뉴스를 찾아보면서, 한국 사회에서 농사의 가치는 계속해서 무시되어 왔다는 걸 느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면 자연히 도태된다는 시각이 농업에도 고스란히 적용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농업을 단순히 어떤 '산업'으로 봐야 할까요? 농사란 모든 것의 '시작'이자 생명의 출발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땅에서 자라난 생명으로 매 끼니를 해결하고 있으니까요. 배고픔을 잊어버린 우리는 정작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식량과 곡물과, 이를 위해 희생되는 수많은 식물들을 외면해온 건 아닐까요. 농업의 쇠퇴는 단순히 식량주권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과 문화의 유지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이 밤낮없이 듣고 말하는 것은 경제성장과 경쟁력에 관한 이야기에 국한되어 있고, 우리 각자의 생활은 온통 좀 더 많은 소득과 권력을 차지하려는 배타적인 경쟁에 바쳐져 있다. 그리하여 돈이 되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선(善)이 되고, 그 반대는 무조건 버려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 속에서, 인간다운 삶의 근본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환대의 정신은 갈수록 퇴화하고 있다. (...)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과연 농민, 농촌, 농업이 몰락해버린 세상이 진실로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세상인가 하는 질문이다." - 고 김종철 평론가의 문구 (2002년 <땅의 옹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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