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기후위기를 극복하자며 여기저기서 탄소중립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위기가 점점 심각해지니,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사실상 ‘0’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탄소중립이에요.
그런데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상적인 숫자로만 계산한다면 본질을 놓칠 수 있어요. 검증되지도 않은 각종 탄소포집기술을 기후 정책에 반영한다거나, 탄소 배출량을 국가 간에 사고파는 배출권거래제 같은 것들이 제도화되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과 국가들에 면죄부를 주게 되는 거죠.
또 다른 본질은, 탄소중립이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는 거예요. 온실가스 배출이 문제이긴 하지만, 진짜 원인을 제공하는 요인들을 놓쳐선 안 돼요. 지구가 계속 뜨거워지는 걸 막고, 기후위기로부터 모두가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진짜 목표니까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탄소중립을 이루는 건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는 거죠. 이해가 잘 안 된다면 아래 문장을 볼까요?
‘화석연료를 쓰는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를 삽시다’
‘자동차 없이도 모든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듭시다’
위 두 문장 중, 어떤 것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데 더 도움이 될까요? 기후위기의 근원은 자동차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자체보다는 자동차를 소유해야만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우리의 생활양식, 그리고 소유욕을 더욱 부추기는 사회적∙경제적 구조일 겁니다. 자동차가 필수재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탄소배출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향일 거예요.
우리가 속한 사회경제구조에서는 인종, 사는 지역, 성별 등 유리한 지위를 가진 일부에게만 편의가 집중된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소외돼요. 이러한 불평등은 기후위기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지요. 온실가스 배출량이 소득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아시나요? 전세계 소득 상위 10%가 25년간 탄소의 52%를 배출해왔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기후위기의 피해는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이 주로 감당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세계 10%의 부유층은 육상 교통 에너지의 절반, 항공 관련 에너지의 4분의 3을 사용하면서 자유롭게 여행하는 반면, 장애인들은 평소 버스조차 타기 힘들 정도로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와중에 기후위기로 더 많은 타격을 받고 있어요. 올해에도 옥탑방에서 생활하던 장애인이 폭염 속에서 숨지는 일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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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사회∙경제구조적인 불평등은 기후위기 발생과 맞물려있어요. 기후위기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지 않다는 거죠. 이런 불평등한 구조를 깨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후정의’ 운동이에요. 기존의 사회구조를 유지하면서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거죠. 공기 중의 탄소뿐만 아니라, 탄소를 내뿜어야만 유지되는 우리 삶의 방식과 그런 삶 외에는 허락하지 않는 지금의 자본주의적 성장 체제를 인지하고 바꿔내자는 것이죠. 지금의 체제에서 벌어지는 불평등과 부정의도 함께요!
기후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요? 그런 사회는 누구도 내버려 두지 않고 함께 가는 세상일 거예요. 이를 위해 노동자, 농민, 원주민, 여성, 장애인, 청소년 등 기후위기를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겪는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들을 ‘피해자’, ‘취약계층’이 아니라 주체로서의 ‘최전선 공동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 논의에서조차 가려진 이들이 있어요. 바로, 비인간 동물들입니다.
기후위기와 우리의 식탁에 대한 이야기, 이엪지 독자 여러분들께는 익숙한 내용일지 모르겠어요. 지난 뉴스레터에서 공장식 축산과 환경의 관계 그리고 식용 가축의 문제 등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요. 육식과 기후위기의 인과 관계는 상식이 되었고, 이제는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논란이 많지만)에서도 ‘식단 변화’를 언급할 정도랍니다. 그러나 ‘친환경 축산업’ 등을 통해 동물성 식품은 지금과 같이 계속 생산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만 줄이려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얼마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고기 몇 kg = 온실가스 몇 kg’라는 숫자 중심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죠.
효율성과 경제성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비용편익적인 접근법에서 벗어나, 축산업으로 비롯된 정의롭지 못한 요소들에 주목할 때입니다. 예컨대 공장식 축산으로 길러지는 육계는 병아리를 생후 한 달도 안 돼 몸집만 불려 도살하고, 산란계는 A4용지 반 만한 크기의 케이지에서 평생 알만 낳으며 온갖 질병에 시달리다 죽습니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는 ‘후라이드 치킨’이 아니라 ‘닭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해요. 후라이드 치킨을 가능하게 만드는 공장식 축산은 인간의 편의에 맞춰 닭의 삶을 착취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요. 그러면 ‘닭이 온전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제대로 된 방법이겠구나’라는 생각에 이르게 될 거예요.
우리가 기후정의를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얼굴들 속에 동물도 있기를 바래요. 축산업의 부정의에 함께 맞서는 것은 인간중심주의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며, 이 사회가 얼마나 부정의한지 힘을 싣는 본질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어요.
환경운동 단체 그린피스와 마이티 어스는 지난 5월, 세계적인 유통업체 테스코가 유통하는 육류와 아마존 파괴의 연관성을 폭로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영국 닭과 노르웨이 연어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브라질산 콩(대두)을 먹고 자란다는 것이죠. 콩의 주요 경작지인 브라질의 아마존과 세하두(Cerrado)는 우리에게 익숙한 재규어, 개미핥기, 아르마딜로를 포함해 300만 넘는 생물종이(지구 전체의 10% 이상!) 사는 집인데요. 콩을 재배하고, 소를 방목하고, 광물을 캐내려는 개발 자본이 이곳의 숲과 초원을 밀고, 불을 지르고 있죠. 지금까지 아마존은 35%, 세하두는 약 32% 이상 파괴되었다고 해요. 뭇 생명이 쫓겨난 숲은 이제 탄소를 내뿜는 황무지로 변해버렸습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To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라는 시구절을 남겼는데요, 기후생태위기 버전으로 고쳐 쓴다면 '한쪽의 콩 속에서 파괴된 아마존 열대우림과 멸종위기에 처한 1만여 생물종을 보고' 정도가 될까요?
파괴되는 생태계의 최전선에 원주민이 있습니다.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불법침입, 방화, 약탈을 일삼는 기업들과 맞서 싸워왔어요. 인종차별을 악용해 원주민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보우소나루 대통령 정권에서조차 꿋꿋했죠. 브라질원주민협회(APIB) 대표 소냐 과자자라는 2019년 기후비상행진에 참여해 아마존과 원주민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는데요.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소냐는 그의 친척 두 명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환경운동가 살해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요. 원주민을 짓밟고 파괴된 아마존 삼림의 80%에는 목축지가 들어섰습니다. 그곳에서 목축되는 소의 숫자는 8천 6백만 명을 넘었다고 해요. 아마존의 콩과 소고기가 거대 자본의 전세계 유통망을 타고 우리에게까지 닿고요. 우리 밥상에 올라온 소고기에는 소뿐만 아니라 원주민 운동가의 피도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원주민들은 기후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최전선 당사자인 동시에, 지구상 80%의 생명다양성을 돌보고 전통의 지혜를 간직해온 수호자이기도 해요. 토착 원주민들의 땅에서는 오염이 적고, 생물종 감소가 느리게 일어나며, 천연자원의 균형이 잘 유지되죠. 이들의 권리를 외면한다면 기후생태위기 해결도 난망합니다.
아르헨티나 차코 주 아비아 테라이의 카밀라 베론은 복합 장기손상과 중증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카밀라의 엄마 실비아 아차발은 “의사들이 물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말했어요. 이곳에 엄청나게 많은 독이 뿌려지거든요.” 라고 말합니다.
다시 콩으로 돌아와서,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미국에 이은 세계 3위 콩 생산지입니다. 1990년대 차코 주에서는 몬산토 사의 GMO 콩을 널리 심었죠. 제초제와 농약에 내성이 있는 콩 종자를 심자 주변의 풀과 곤충도 내성을 얻게 되었고, 제초제와 농약을 퍼부은 결과 지역의 땅과 물은 오염되고 말았어요. 수많은 인간과 비인간 동물들이 장애를 얻고 희귀병으로 죽어갔지요. 그 제초제는 2015년에야 발암추정물질로 등록되었습니다.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대두 중 77%는 '식용동물'에게 먹일 사료로 쓰이며, 인간이 먹는 부분은 단 7%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콩이 이렇게나 많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동물을 먹기 위해 이런 비극을 감수하고 있는 거죠.
아마존에서 목축하지 않고 동물들에게 유기농 콩을 먹이면, 자연과 인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아닙니다. 지구상에는 이미 소 10억 명, 양 12억명(털이 주 목적), 돼지 7억 명, 닭 259억 명이 살고 있으며, 거주할 수 있는 땅의 약 38.5%(농지의 77%)가 여기에 쓰이고 있거든요.
과학자들은 전세계의 육류 수요가 지금처럼 계속 늘어난다면 2030년대에는 기후비상사태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어요. 소득이 커진 국가들에서 육류 소비량도 가파르게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한국만 해도 국민 1인당 연평균 육류 소비량이 1980년 11.3kg에서 2018년에는 53.9kg로, 39년 만에 다섯 배 늘었으니까요. 육식이 계속되는 한, 문제도 계속됩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농축산업의 대기 오염으로 인한 (인간) 사망자가 석탄발전의 오염물질로 인한 사망자보다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80%인 1만 2700여명은 축산업 때문이고요. 축사에서는 사료, 분변, 털, 바닥재 등에서 생물학적 물질이 포함된 먼지가 발생하고, 이것이 면역과 호흡기 건강을 악화시켜요. 축산 시설 노동자 및 가족들의 60% 이상이 호흡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는 연구도 있죠. 한국에서도 일반 도시 거주민에 비해 농축산업 종사자의 호흡기 질환 발병률이 높습니다.
한편 축산 시설의 열악한 환경이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점이 과거부터 지적되어 왔는데요. 코로나바이러스19 발생 초기에 미국의 한 육류가공 업체의 여러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수천 명씩 집단감염되는 사례가 있었고, 한국에서도 수시로 축산시설의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그 위험이 가시화되고 있어요.
우리가 동물성 식품을 먹기로 할 때, 메뉴로 선택한 바로 그 동물의 생명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인간 및 비인간 동물들의 운명까지 위기에 놓이는 것이 보이시나요? 이렇듯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깔끔하고 뒤탈 없이 ‘고기’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아요. 육식이 동료 인간을 포함한 온 생명의 생존권을 빼앗고 있음을 직시할 때가 되었습니다.
소의 트름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한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카우스피라시>와 같은 다큐를 비롯해 많은 미디어에서 ‘육식 산업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유로 소의 트림 속 메탄 성분을 지적하고 있죠. 그래서 축산업계는 그 지적을 피할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내고 있는데요. 전세계에 가축용 사료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카길(Cargill)’은 한 스타트업체가 만든 소 메탄가스 방지용 마스크를 내년부터 상용화한다고 해요.
또 독일의 농장동물 생물학 연구소(FBN)는 소의 지능을 활용해 배변훈련을 시켜 배설물을 별도 처리해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고요. 심지어 한국 국립축산과학원은 성장속도를 높여 소의 사육기간을 단축해 배출량을 줄이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구상 인간은 78억 명인데, 매년 도살장에서 죽는 축산동물은 닭, 돼지, 양, 소 만해도 약 700억 명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더 많은 생명이 살 수 있었을 생태계가 존재하는 산림을 밀어낸 자리에 축산동물을 먹일 곡식을 키우고, 물을 사용하고, 폐기물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소에게 마스크를 씌우는 것, 배변 훈련을 시키는 것, 더 빨리키워 도살장으로 보내는 것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피상적인 해결책입니다. 소의 트림은 줄어들더라도 생태계 파괴와 오염을 외면하는 일이고, 무엇보다 이렇게 많은 생명의 목숨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계속 남을 테니까요.
우리는 단순히 온실가스가 줄어든 세상이 아니라 기후위기로부터 모든 생명이 안전하게 살아가길 원합니다. 모든 생명이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소 마스크 말고 그럼,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이번 여름,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 산불, 홍수로 특히 안전한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심각했어요. 누구나 안전한 집에서 살아가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더 힘이 세거나 능력을 갖추면 더 많은 자원을 누리는 것을 무제한 허용하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안전할 수는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필요한 것보다 많이 소비하고, 우주로 관광을 떠나는데, 어떤 사람들은 당장 먹을 것이 없거나 나라가 바다에 잠기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전세계에서 부유한 1%가 빈곤층 50%보다 이산화탄소를 두 배 이상 배출함에도, 그에 대한 피해는 부유층보다 빈곤층이 훨씬 크게 받고 있어요.
가난하거나, 피부색이 다르거나, 약하다고 사람이 물건 취급받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를 가졌다고 외쳤죠. 여전히 지금도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때 용기 낸 사람들 덕분에 모든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믿는 21세기에 살고 있어요.
하지만 하나의 생명이자 삶의 주체로서 지구의 생태 자원을 누릴 권리는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죠. 그런데 수많은 비인간동물은 지구 위에 살아가는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있음을 많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폭염이 심했던 2018년에는 전국에서 833만 명의 가축 동물이 고통스럽게 죽었어요. 작년 구례에서는 폭우로 소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는 사례들이 발생했고, 올 여름엔 폭염으로 강물 속 연어가 화상을 입을 뿐 아니라, 29만여 명의 축산동물이 목숨을 잃었어요. 이 모든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하며 돌아선 적은 없으신가요?
축산동물이 고통받는 곳에서 축산업계 종사자 또한 위험한 여건에서 일하고 있듯, 인간과 비인간동물의 고통은 긴밀히 연결되어있음에도 그동안 법정에는 인간동물의 권리가 침해된 사건만이 주로 올라왔는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고통받는 비인간동물을 외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행동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DxE(Direct Action Everywhere) 코리아'는 닭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누구든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으며 존중받을 동물 권리를 가졌지만, 그것을 법을 보장받고 있지 못한 현실을 수면위로 드러내기 위해 2019년 경기도 용인의 한 도계장을 막아섰어요.
또 기후생태정의운동을 하는 “멸종반란(Extiction Rebellion) 한국”은 지난 3월, 스러져가는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과 힘을 잃어가는 민주주의를 애도하는 액션으로 인간으로서 느끼는 사랑과 분노, 슬픔을 상기시켜 우리 한 명, 한 명이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힘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게 했어요. 인간 동물만의 생존을 중시하며 비인간동물을 생명이 아닌 물질, 수단으로만 여기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점에서 이 두 단체는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인간동물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키워지고 죽임당하는 축산동물의 권리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살아있는 모습을 보기 전에 ‘음식’으로 먼저 접하고, 그들의 눈을 마주치기 전에 ‘맛’을 접한 우리는, 그들 또한 한 번의 삶을 가진 생명체 임을 떠올리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처한 현실과 그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볼 때 우리 또한 고통을 느끼며, 이를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고통받는 존재들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했을 때,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파도를 헤쳐 나갈 희망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앞으로 3년 뒤인 2024년까지 동물성 제품의 50%를 줄이고 식물 기반 식품으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한 지역이 있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버클리 시인데요. 상당한 온실가스 배출량, 산림파괴의 주요 원인인 점을 강조해 축산업에 대한 비판을 16개월간 지속한 DxE의 빛나는 성과예요. 이렇듯 우리는 다른 존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의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 사람을 모으고, 마음을 모아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요. 그리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단 한 명의 사람, 단 한 명의 비인간동물이라도 모두 한 번의 삶을 안전하게 누릴 권리가 주어질 때 비로소 모두가 안전한 세상이니까요.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에게 마스크를 씌울 것이 아니라 소의 목소리를 듣고, 전할 마이크를 우리 안에 장착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