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인 오징어

만담 해풍소

by 이음

(오징어)


(맥주)

오징어 자네 무슨 일이 있는가?


(오징어)

내가 이러려고 바다를 나온 게 아닌데,

삶이 참 퍽퍽해졌지 뭔가!


(맥주)

요즘 사는 게 어디 육지만 힘들까

바다도 매한가지 일 걸세.


(오징어)

나는 꿈이 있었네 바다를 나와 더 큰 세상에서 개척자가 되고 싶었지. 사람들의 맘을 위로하고 치료하는 보다 이타적인 삶을 꿈꿨다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렇지가 못해.


(맥주)

왜 그렇지가 못한 건가?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말해주게나.


(오징어)

나는 본래 서민들에 벗이자 한숨이었다네, 삶이 고된 이들이 힘들 때면 나를 찾고 나와 동화되어 시름을 덜곤 했지, 나는 그런 선배들을 존경했고 바다를 과감히 버리고 나와 마른오징어의 길을 택했지.


그런데 요즘은 중국 놈들이 오징어 새끼까지 다 잡아가서 오징어씨가 말랐네, 그나마 남은 오징어들도 수온이 올라가는 바람에 동해를 떠나고 있고 말이야.


이제 나는 더 이상 서민들의 벗과 한숨일 수 없다네. 오히려 금징어라는 새 이름까지 생겼지. 금징어는 아무나 편히 살 수 없지 않겠나?

나는 이타적인 오징어이고 싶었네. 나의 꿈은 이제 불가능해졌어


(맥주)

이타적인 오징어라~ (하하하)

글쎄, 그게 좋은 것인지 내 모르겠네만.

하지만 이건 확실하네. 이타적일 필요는 없네.

우린 때론 배타적일 때도 있고 이타적일 수도 있지. 어느 한쪽의 삶이 이타적일 필요는 없다는 말일세. 가장 중요한 건 균형이겠지만, 나를 온전히 희생하는 삶이 과연 누구에게 아름다운 삶인지 생각해 보게.


다른 이들에게 칭송받고 도움을 주는 일은 다른 이들에게 아름다워 보이는 삶이라네. 그게 그렇게 좋은 거라면 모두들 못해서 안달이겠지?


그렇지만 북한만 해도 생각해 보게. 휴전상태를 유지해서 극도의 긴장감 뒤로 이익을 꾀하는 얕은 수가 보이지 않은가? 생명체란 본디 그런 걸세, 본래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게 만들어진 것, 그 경계의 높낮이만 있을 뿐 다 거기서 거기지.


나는 본디 무용해서 생명을 가진 자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네만, 자네의 삶도 아름답길 바라네.


지금이 있어야 훗날 이야기할 거리가 있는 것 아니겠나?


자네가 서민들의 한숨을 위로하고 가면 그뿐, 자네를 기억하는 이는 없다네, 그러니 지금을 살게, 좋고 나쁘고는 없다고 법륜스님이 맨날 말씀하시지 않은가?


(오징어)

자네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어리석었군. 자네는 무용하지 않네, 한 발치 떨어져서 볼 수 있으니 숲을 보는 눈이 있는 것 같네. 그래 자네의 삶은 지금 여기 있는가?


(맥주)

난 주로 청년들에 한숨을 식혀주고 있네. 사연도 사연도 그리 많아 다 담을 수도 없다네. 그럼에도 내가 오늘을 사는 힘이 무엇인지 아는가?


(오징어)

글쎄? 무엇인가?


(맥주)

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라네,

맥주에 땅콩,

맥주에 오징어.


(오징어)

“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