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계)
흐흐흑ㆍㆍ.
(타이레놀)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
(체온계)
아니, 병원에서 내 친구 닥터 만년필한테 편지가 왔어.
(혈압계)
오랜만에 편지네. 뭐라고 하는데?
(체온계)
자기 너무 괴로워서 미치겠데,
지금 뉴스에서 나오는 거 때문에
자기 선생님이 출근을 못하신대.
(혈압계)
큰일이다. 의사들 입장도 이해되고, 환자들 입장도 이해되고. 그래서 만년필이 우리라도 지원 오래?
(체온계)
아니. 자기도 진작 직업 바꿀 걸 그랬다고. 병원은 아비규환이래. 자기마저 퇴사하면 선생님 방은 누가 지키냐고, 그래서 퇴사도 못한데.
(수지침)
그러게. 진작 진작 의사 정원 늘리자고 할 때는 기어코 반대를 하더니 이제와 무슨 영웅 놀이를 한다고.
잉.. 쯧쯧쯧~
의사정원을 어떻게 한 번에 이천 명씩, 천명씩 늘린다는 거야. 생각이 없어 암튼. 카데바도 없고 아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말이야. 차근히 풀어야 할 일을 크게 터트려 놓고 그 핑계로 또 국비나 갔다 쓰고 잘한다 잘해. 그 돈으로 복지나 좀 해줘 봐. 쓸데없는데 쓰지 말고.
(체온계)
맞아. 아이들 학교 예산 삭감으로 반에 연필깎이도 못 사고 있데. 우리 집 애기 엄마는 아이 연필깎이를 학교에 보냈다잖아.
(혈압계)
아파도 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못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나라의 총수란 사람이 읽은 경제교과서가 뭔지 알아? 글쎄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래.
(대일밴드)
나 그 책 알아!
정부는 가만히 있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는 책 맞지? 모든 걸 시장에 맡기면 시장이 알아서 돌아간다는 책?
(혈압계)
응. 맞아. 그래서 큰일이야.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면 차라리 나은데, 복지를 삭감하고 예산을 삭감해서 다른데 쓰고 있어. 의사들한테, 병원한테, 국민한테는 알아서 해보라는 식이고. 당장 위독하신 분은 언제든 내 가족, 내지인이 될 수도 있잖아.
(체온계)
맞아!
모르는 척할 일이 아니야.
나라도 박스 갖춰 입고 병원 가봐야겠어.
(대일밴드)
체온계야 만년필이 그 얘길 하는 게 아니잖아.
네가 가도 아무 도움이 안돼. 이건 우리가 부족해서 생긴 코로나 때 마스크 같은 일이 아니라고.
인간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서. 또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의무를 회피한 책임을 누군가가 직면하는 상황인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혈압계)
맞아. 고혈압이면 아침마다 나의 도움을 받고 식단 조절을 하잖아. 나에게 당장 닥친 일에는 나서면서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은 일에는 모른척하는 것도 나중에 생길 문제를 키우는 일이야.
(체온계)
너희들 말이 맞아. 난 아무 도움이 될 수 없어.
(대일밴드)
무관심은 때론 죄가 돼. 학교폭력도 없애려면 방관자들이 없어져야 하거든. 이기적인 집단이라도 다수를 이길 방법은 없기 때문이야. 이기적 집단은 이걸 노리는 거야. 회피하는 사람들. 방관하는 사람들의 틈을. 그 틈을 타서 탐욕을 채우고 피해자는 곧 그들이 되게 만드는 거지. 그게 이기적 집단자들의 특성이야.
(체온계)
그렇다고 죄 없는 아기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피해를 보는 건 너무 가슴 아파.
(대일밴드)
그렇지. 방관에 책임이 바로 나에게 오지는 않아. 옆집아저씨의 방관이 시골 아기에게 갈 수도 있고. 젊은 아들부부의 방관이 부모에게 향할 수도 있어. 그래서 우리도 쌍둥이 몇 개만 불량이어도 전부 리콜되듯이 말이야. 세상에 공평이란 참 어려운 일이야.
(혈압계)
아, 너무 답답해.
얘들아 우리 소독약한테 가서 샤워시켜 딜라자~
(체온계)
흐흐흑ㆍㆍ.
(대일밴드)
체온계야 너 아직도 만년필 못 잊은 거야?
닥터 만년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