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꼬르록 소리가 난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한 끼도 안 먹었다. 신경을 쓰면 소화가 안되다 보니 늘 공복 상태이다. 일하다 말고 '에라 모르겠다'하고 누워버렸다. 양배추 주스를 마시고 안정제를 먹은 지 세 시간 전이었다. 불안이 진정될 기미가 없어 다시 1시간 후에 우황청심원을 더 먹었다.
"어라, 이건 효과가 즉빵인데 이 약도 효과가 없다. "
심장은 밖에 나와 마라톤 할 태세이고, 정신은 블랙홀과 웜홀 사이에서 서로 빨아들이려 난리이다. 호흡은 우주에서 헬멧이 벗겨져 숨이 꼴깍꼴깍 넘어갈 지경이라 할 수 없이 안정제 반알을 더 먹었다. 그동안 괜찮아서 건너뛰고 쌓아둔 약들이 확확 줄어들고 있다. 이럴 때를 위해 남겨둔 게 아닌데.
단순히 일하기 싫어서 펜을 놓은 게 아니다. 집중이 안되고 정신이 분산되서이다. 자꾸 요지를 까먹고, 읽은 줄을 열 번씩, 처음 읽은 거처럼 매번 다시 읽고 있다.
"뭐라는 겨? 쉬라는 말이겠지"
이라면 중간 포기의 시간을 가졌다. 덕분에 중간고사 보고 와서 떡실신한 아들옆에 누웠다. 아들은 국어는 85점, 수학은 10점을 맞았다며 그동안 신나게 게임한 대가의 맛을 제대로 본 모양이다. 좌절이 크다며 오면서부터 전화를 했다. 생에 처음 보는 중간고사. 긴장이 많이 되었겠다. 그런데 10점을 맞으면 어떤가? 본인 마음이 괜찮다면 엄만 상관없는데. 그렇지 않다고 힘들어하니 오히려 안타까웠다. 마음이 많이 상했는지 수학문제집을 풀다 잠이 들었다.
난 그런 아들이 한편으론 귀엽고 재밌기도 했다. 10점이라, 얼마나 귀한 점수인가? 인생의 전환점을 알려줄 수도 있는 점수이고, 공부 말고 다른 인생을 찾아 줄 점수 일지도 모른다.
매번 꼭대기에서만 놀면 놀이터 밑에 재밌고 다양한 세상을 알 수 없다.
아들은 억울함에 분통을 터트렸다. 교과서 내용이 아닌 사교육 내용들이 문제로 출시된 일에 분노했다. 사교육으로 진도를 나가지 않으면 풀 수 없는 교육계에 공론성에 대해서 생각이 깊어진 듯했다. 내신으론 상위권을 놓쳐본 적 없으니 그럴만하다. 이제 세상에 나와 세상의 속싸개를 걷어내 보니 보이는 양면성에 혼란이 오리라. 모든 선택은 아이가 할터이다. 나야 정보와 의견으로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게 다이다.
나 역시 부모로서 이 나라의 교육의 현실이 못마땅하고 개탄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아이는 한 시간 자고 일어나 다시 문제집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공부가 될 리 없다. 이상과 현실, 미래에서 시소 타기를 하느라 고통스러울 게다. '그래. 충분히 고통스러워해라.' 충분히 뒹굴러야 방황도 멈추게 되고, 자신의 삶도 개척하며 사는 것이라는 걸 안단다.
엄만 오늘 너의 10점이 아주 흡족하다.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