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참 어렵다

글을 배우고 느끼는

by 이음

작가의 그는 누구인가?

요즘 새로운 장르의 글을 읽고 있어 그런지 용어도 표현도 익히기 서툴다.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이해를 일치시키기란 더욱더 어렵다.


나 같은 초보 작가지망생들은 일상을 풀어놓을 실력밖에 되지만, 사유가 깊은 작가분들은 일상을 넘어 은유와 신념이 책에서 춤을 춘다.


누구는 역사를 남기고, 누구는 세상을 얘기하고,

누구는 시대를 비틀어 야기한다.


그분들은 내겐 명화 같다.

그저 입을 벌리고 바라며 멍해진다.


도대체 어떻게 하나의 캔버스 안에 모든 이야기를 담는 걸까?


나는 그분들의 머릿속과 삶까지도 모두 다 궁금해진다.


최근에 좋아하게 된 시인님이 계신데 그분의 시에 매우 공감했다. '이은희 시인님의 와인색 코트를 샀다.'중에 He(그)라는 시가 그랬다.


시인님의 He(그)라는 시처럼 독자들은 작가의 그가 누구인지 그렇게 궁금하다.


나도 궁금했다... 헤헤!


정말 사랑하는 이 가 있는 건지?

아님 헤어진 건지?


어제 비가 왔었나?

않았었나?


글을 읽으면 텔레비전처럼 직시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은유와 사유를 읽을 때도 직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 많다. 나 역시도 생각하지 않을 땐 거의 그런다.


그런데 오늘 신기한 걸 발견했다.


우리는 보통 좋은 글을 읽을 때 페이지가 늦게 넘어간다라고 한다. 실제로 늦게 넘어가는 사람이겠다.


또는 반복해서 읽는다고 한다. 역시 도취되어 반복해서 읽는 사람이다.


나는 위에 두 가지에 다 해당되는데 보통 글에서 향기가 날 때, 마음이 취했을 때 그랬었다.


근데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천천히 읽는 데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구나 싶었다.


-어려워서 모든 단어를 찾으며 읽을 때

(이런 적이 많았다)


-작가의 주제를 파악하기

(작가는 글을 꽃밭에 심으면 독자는 열매를 따서 벗겨내며 알아내는 글이기에 독자도 행간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글이 아니라 참고서가 되기도

(독자도 모르게 영감을 받아 글감이 막 떠오를 때)


난 이것 세 개를 알아낸 게 어찌나 내가 신통방통한지 모른다.


몰랐을 때야 몰라 그랬지만 이젠 내 몸이 더 다양한 시각으로 체득리라 본다. 글의 신묘한 맛은 그 어떤 조미료와도 비교할 수 없이 맛있다. 독백과 외로움을 섞어 은유로 발화시키는 맛을 어찌 따라갈까.


요즘 내 귀도 가벼워져서 팔랑팔랑 거린다.


그동안 쓰던 우울증 책이 쓰고 싶지 않았다가,

그래도 쓰던 거였으니 끝은 내야지 싶다가..


다른 장르의 밝은 에너지로 넘어가고 싶은 맘도 생기고 그런다.


쓰는 이에게 그는 사람만이 아니다. 세상에 모든 것이 그이고, 당신도 나에 그이고, 나도 당신의 그이다. 작가의 사유 안에 들어온다면 당신이 나의 그가 된 것이다. 필자의 입장에선 정인이 아닌 누구나 그와 우리가 될 수 있다.


왜냐면 글의 세상에선 하늘의 별도 건빵 속에 따다 넣어줄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가슴에 빈방이 하나쯤은 있다. 그래서 쓰는 이가 된다는 건, 내 안에 방이 많은 사람이야만 한다. 내면의 집중할 방이 있어야 사유하고 기록할 수 있다.


자기 삶에 내면의 중요도가 더 큰사람들이 쓰는 이가 된다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면에 방이 있는 사람들이 내성적이라는 말은 전혀 아니다. 그저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외향적이지만 충전은 혼자 있을 때 더 잘되는 사람 말이다.


나는 이렇게 한다.

한 작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의 첫 책과 마지막 책을 사본다. 그리고 그의 어느 지점에서 내가 반했는지 유추한다. 가능할 때는 한 작가의 전권을 사본다. 그리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이것은 마약보다 중독이 강하지만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하다.


나는 궁금하다.

나는 어떤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한 장르도, 배우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데.. 배우기만 하다 끝날까 봐 무습다.


일단 써야 한다.

쓰면서 배워도 되는데 몸과 맘이 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아직도 아카시아 잎을 따서 좋아한다 안 한다나 하는 철없는 작가지망생이라는 문제다.


신통방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