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막 달려오더니 벌써 10월 달력이 넘어갔다. 10월의 절반 이상은 아픈 날이 더 많았다.
아까운 내 10월!
정신을 차려보니 11월 1일이다.
1월 11일은 아빠가 돌아가신 날인데…
거꾸로의 날이 되니 겨우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아직도 가끔 혼자 중얼거린다.
"아빠, 뭐 하지?"
"아, 아빠 없지…"
기억은 있는데 무의식은 인정하지 않는 현상은 무엇일까? 나에겐 애도 기간이 유난히도 긴 듯하다.
하도 아팠어서 운동을 거의 못 갔더니 도로 굴러다니게 발효가 잘됐다. 이 정도면 소라빵으로 파리바게트에 진열돼도 될 정도이다. 요즘은 허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신음 소리가 절로 난다. 내 나이에 벌써 '아이고아이고' 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어제는 '고딩엄빠'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하루 종일 누워 있는 모습이 나 같아서, 혹시 나도 내 아이를 똑같은 환경에서 키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자괴감에 벌떡 일어났다. 청소부터 하고, 샤워하고, 간식을 해놓고 운동 갈 준비를 했다. 부러질 것 같은 허리로 약을 먹고 운동을 다녀오니, 팅팅 불었던 오뎅 육수들이 내 몸에서 뚝뚝 떨어졌다.
아들 부탁으로 초밥을 포장해 와야 하는데, 운동 같이 다니는 동생이 함께 가줬다. 한참 떠들다 보니 동생 집을 지났길래 내가 말했다.
"자기 집이 이쪽이었어요?"
"아뇨, 저쪽인데 언니랑 산책하는 거죠."
"아, 뭐야, 내가 도로 데려다 줄게요."
"아니에요. 서로 공원 하나 두고 건너편인데요."
"언니, 근데 회장님 진짜 잘 가르쳐주시지 않아요?"
"글쵸. 나도 회장님이 가르쳐 주시는 게 훨씬 스트레칭도 시원하고 정식인 것 같아."
"근데 요즘 안 나오시는 것 같아요."
"아, 그래요? 나도 안 나갔어서 몰랐네…"
"무슨 다른 일 또 하시는 게 있다고 관장님이 그러시던데…"
"응, 나도 그렇게 들었어요. 그리고 회장님 장난을 잘 쳐서 관장님이랑 코치님보다 재밌어요."
"맞아요. 겉은 무서운데 유머가 있으셔요. 예전에 태권도 선수셨나? 무슨 한가닥 하셨던 분 같던데요."
"글치? 나도 선수 출신이신 것 같더라고."
"언니, 내가 회장님 이름 알아요. 체육관에 써있었어요."
"아, 그래요." "박땡땡님이셔요. 언니, 우리 찾아봐요. 아, 무에타이 챔피언이셨네요."
"어디 봐봐? 와, 신기하다. 그래서 토니 자가 우리 체육관에 오는 거구나. 일 년에 한 번씩 태국으로 전지훈련도 간다더라고, 나도 따라간다 했지. 회장님한테."
"아, 정말요? 나도 가고 싶다. 언니."
"같이 가요. 휴가 내고. 여자들도 여럿 갈 텐데."
"그때 갈 수 있으면 같이 갈게요."
"자기 아들 기다리겠다, 6학년이라면서요. 어여 들어가요."
"언니, 아프다고 내일 안 나오면 안 돼요. 꼭 나오세요."
"네. 그럴게요."
우린 대충 떠들다 공원에서 헤어졌다. 우리 체육관 회장님이 그렇게 대단한 분이셨다니 신기했다. 난 그것도 모르고 다른 회원들은 봐주면서 나만 굴린다고 허벅지 때리며 장난을 쳤는데, 이제부턴 조심해야겠다. 동양 챔피언이셨는데 차별한다고 징징거렸다니… 쩝^^;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아들, 엄마 운동 갔다 오니 핼쑥해지지 않았어?"
"아니, 핼쑥 정도는 아니고, 부기는 좀 빠진 것 같네."
"냉정한 자슥. 초밥 사 왔어, 얼른 먹어."
"땡스, 맘."
어제부터 웬만큼 아파도 일어나서 할 일은 최대한 하기로 했다. 근데 약을 바꿨더니 전신 통증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약도 붓는 약이라는데, 우울증에서 탈피하기 참 쉽지 않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는 이 녀석을 보면 그냥 이 애랑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울증아, 너 나랑 평생 살 거 아니지?"
"언제 갈지 일정 좀 알려줄래?"
"우리가 백년가약하고 그럴 사이는 좀 아니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