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남자랑 살아보셨나요?
저의 그이는 키도 크고 잘생겼습니다. 어떤 옷을 입혀도 테가 나고 핏이 좋은 남자예요. 성정도 좋고 박식하지만 숨 막히게 느린 남자. 눈치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전 그런데도 그 느린 남자가 참 좋습니다. 느린 남자는 나쁜 남자와도 같은 거 같아요. 속이 터지거든요.
전 그런 남자랑 살고 있는데요. 참 오래도 속을 끓이게 하는 사람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답이 없거나, 아주 많이 느립니다. 빠를 때는 며칠 있다 대답하고, 느리면 일 년 있다 대답하고, 아니면 대답을 안 하고요.
이팔청춘 열열한 사랑을 원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나이 들었다고 고무한 관계가 아니길 바라는 거죠. 전 감성적이고 그이는 이성적인 사람이에요.
그이는 자주 나를 서운하게 합니다. 어느 때는 다정하다가도 꼭 필요할 때는 전혀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 있잖아요. 그 선한 멋진 눈으로 밖에서는 서글서글 잘하면서도 저에게는 그냥 밍밍한 남자.
쳇~~
전 잘 챙기고 섬세한 성격이고, 그는 일할 때만 섬세하고 무심한 성격이고요. 어쩌다 우린 사랑하고 만나게 되었을까요. 이해해야지 싶으면서도 나는 아픈데 그는 약속이 많은 걸 보면 서운합니다. 저는 그저 마냥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거 말곤 딱히 할 게 없거든요.
둘이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손 꼭 잡고 살고 싶은데..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골집에서 깨나 털고, 강아지 키우며 함께 눈감으면 좋겠는데 그건 꿈만 같거든요.
저는 제가 먼저 가게 될 거 같은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더 잘해주고 표현하려고 하는데 그이는 전혀 모릅니다.
제가 곁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숨이 떨어지고 있는지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