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이상하다. 물론 컨디션도 꿀꿀하지만 내적 갈등이 심각한 게 느껴진다. 아마 최근 일어난 사고의 베르테르 효과일 수도 있겠다. 나는 세상을 안 보려 했고 듣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애써 밀어내려 했다. 나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면 안 된다. 나라에 분노하고 뉴스를 보면 아프다. 나는 최대한 아무 생각 없이 살아야 하는 생명이 되어가고 있다. 나의 꺼져가는 촛불은 살랑이는 바람에도 휘청휘청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악성두통으로 온몸의 세포를 약으로 교체했다. 오늘 아침은 갑자기 발이 아프다. 발이 아프더니 발이 저린 거처럼 발바닥만 전기가 오는 느낌이다가 무릎까지 올라왔다. 이제는 얼굴이 몸살처럼 아프더니 살짝 안면마비 증상이 보인다.
헛웃음이 나온다. 참 고된 해이다. 1월부터 평탄함이 없이 시작되었다.
언니들이 이름을 바꿔보라고 한다.
"너는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을 다 겪고 지나가는 거 같아. 개명을 좀 해봐"
"응, 안 그래도 나도 고민하고 있었어"
이제는 진짜 개명을 해야 하나 싶다. 나도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니깐 이것저것 다해보는 거 같다. 큰언니는 법당에 나를 위한 초를 켜고 제사 대신 부모님을 절에 모셨다. 우리가 기독교라 제사를 못지내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 같다. 동생은 절에 가서 언니를 위해 기도하고 왔다는데 가족들에게 미안함만 커져간다. 난 종교에 차별이 없다. 종교는 다 선함을 추구하므로 뜻하는 바는 같을 거라 생각한다. 사이비만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는 기록이고 하나는 숨구멍이다. 글은 나의 속마음이지 현실에서의 얼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이가 내게 한약을 한제 더 먹어 보라고 한다. 아침부터 예쁘게도 말해서 고맙고 감사했다. 꺼져가는 내 삶에 꽃을 심는 건 어쩌면 내가 아니고 그이일지도 모르겠다.
내 속에선 나에게 늘 의문을 던지고 감정을 끌어내린다.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마음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우울증이 아닐 때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평온 속에서도 죽음이 떠 오른다. 행복한데 죽고 싶다는 말은 안 맞는 논리이지 않은가? 삶에 걱정이 없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뇌의 문제는 별개인가 보다. 물론 삶에 걱정이 많으면 스트레스로 더 악화되겠지만 걱정이 왔다 갔어도 나의 뇌는 몇 템포 느리게 인식하는 것 같다. 나같이 우울증으로 몸이 아픈 환자를 '신체화 장애'라고 한다.
신체화 장애는 브리케 신드롬(Briquet's syndrome)이라고도 불리었다. 신체화 증후군은 수년에 걸쳐서 다양한 신체 증상을 반복적으로 호소하지만 실제 내과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며 신체질환이 아닌 심리적 요인이나 갈등에 의하여 나타난 것으로 판단되는 증후군이라고 한다.
100명 중에 2명 정도의 발병률이라는데 내가 그 2명 중에 1명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신기한 건 꼼꼼하게도 아프다. 얼굴뼈 하나하나 눈, 어깨, 손, 발..
우울증에서 가장 힘든 건 희망고문이다. 증상이 없어지다가 다시 재발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우울증의 반복과 완치에 관해서 아침부터 찾아봤다. 완치란 개념보단 휴지기라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언제든 다시 발병할 수 있다고 하니 징글징글 징그라운 넘이다. 자기가 연어도 아니고 왜 자꾸 돌아오는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나와 같은 증상으로 16년째 살고 있다고 하고, 9년 차라는 사람 등등이 수두룩하다.
난 이제 3년 차인데, 저분들처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다리에 힘이 풀린다.
할 수만 있다면 애기 대학만이라도 보내고 갔으면 좋겠다. 혹여 그 이후에 삶도 허락된다면 여행도 다니고 공부나 쉴 컷 하면서 살면 좋겠다.
그 안에 무조건 건강해져야 하는데, 자꾸 용기가 없어진다. 울증이를 올해 12월에 끊어내서 나 죽을 때까지 휴가를 보내고 싶다. 해외여행도 좋고 아님 우주선을 태워 보내면 더 좋겠다. 지구에 얼씬도 못하고롬~